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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프리뷰]『직접행동 : 21세기 민주주의, 거인과 싸우다 』
[신간 프리뷰]『직접행동 : 21세기 민주주의, 거인과 싸우다 』
  • 김종엽/ 한신대· 사회학
  • 승인 2007.10.01 10: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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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프릴 카터 지음 ┃ 조효제 옮김 ┃ 교양인 ┃ 2007

87년 민주화 20주년을 맞아 지난 20년간 우리 사회의 민주화 과정에 대한 논의가 활발했다. 올해 대선과 맞물려 꽤 진지한 논쟁도 벌어졌고, 내 자신도 그런 논쟁에 글을 보태기도 했다. 그런데 조효제 교수가 번역한 에이프릴 카터의 『직접 행동』을 읽자 부끄럼이 밀려들었다. 조 교수는 나 같은 사람이 설익은 성찰의 글을 내밀고 있을 때 끈기 있는 번역 작업으로 87년 민주화 20주년을 기념했다.
짐작컨대 그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우리의 사유를 더 깊게 해줄 열쇠 개념이라고 판단한 것 같다. 그리고 ‘직접행동 민주주의’가 그런 개념일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난삽하지 않지만 꽤 두툼하고 제법 사전지식을 요구하는 이 책을 읽는 느낌은 조 교수의 판단이 날카롭고 정확하다는 것이었다.
우리 사회에서 민주화에 대한 표준적인 사회과학적 논의는 민주화 이행과 이행 이후 민주주의의 제도화와 공고화 개념 주위를 선회해왔다. 이런 논의가 해명한 것들이 적지 않지만 거기엔 몇 가지 한계가 있다. 이런 논의는 은연중에 민주주의를 제도적 실천으로 환원하는 경향을 가진다.
그런 시각에서는 시민들이 자신의 권리를 요구하며 직접 행동에 나서는 것은 민주주의가 제도화되기 이전의 행동이며 일단 민주주의가 제도화되면 그런 행동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제시된다. 그리고 민주화 이행 이후에도 시민들이 직접 행동에 나서면 그것은 민주적 제도가 정착하지 못했고 제도를 떠받치는
정치문화가 미숙해서 그런 것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표준적 논의가 흔히 전제하는 자유민주주의 혹은 대의민주주의가 완숙하게 자리 잡는다고 해서 민주주의의 규범적 내용, 즉 사회성원들의 집합적 자기결정이 충실히 구현되는 것은 아니다. 제도화된 민주주의는 종종 부패로 물들고 금권, 엘리트 혹은 전문가 지배로 전락한다. 또한 사회문화적 변동이
야기하게 마련인 새로운 불만과 갈등에 반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며 설령 반응이 있다 해도 부족하거나 상당한 시차를 갖는 것이 일반적이다.
거기에 더해 대체로 국민국가라는 경계선을 따라 제도화된 민주주의는 국제관계 영역 그리고 다양한 영역에 걸쳐서 발생하고 있는 지구화 경향에 대해 실질적인 통제력을 가진 것도 아니다. 요컨대 현존하는 민주적 제도는 언제나 결손(deficit)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주의가 생동하는 힘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비명과 웅얼거림에 머무르고 있는 불만과 고통을 공적 발언과 행위로 승화시키는 ‘직접 행동’이 항상 요구된다.
제도화된 민주주의의 결손을 치유하는 것은 제도의 자기 혁신과 교정의 능력이 아니라 제도에 항의하고 도전하며 변화를 요구하는 시민(그리고 아직 정치적 성원권을 갖지 않은 거주자)의 목소리와 행동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직접행동 민주주의는 민주적 제도 자체, 시민의 민주적 자력화(democratic empowerment),
민주적 편익(democratic benefit) 모두의 근원적 출처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직접행동에 초점을 맞추면 맥도날드 반대운동이나 대인지뢰 반대운동에서부터 무토지농민운동이나 사파티스타에 이르는 방대한 영역의 행동들을 민주주의의 소재지로서 새롭게 인식할 수 있거니와, 
같은 종류의 경험이 우리 주변에도 산재한다. 정치적 항의 양식으로서 1인 시위, 총선연대의 활동, 양심적 병역 거부, 효순과 미선의 죽음에 항의하는 촛불시위, 소액주주운동, 지율스님의 단식, 부안 핵폐기장 반대 운동, 새만금 간척사업에 반대하는 삼보일배 행진, 대추리 미군기지 이전 반대운동, 한미 FTA반대 시위,
해고된 이랜드 노동자들의  매장점거 등 목록은 길게 이어질 것이다.
이런 직접행동들은 반응성 없는 의회, 무능한 정당, 자기이익 추구적인 관료제, 대기업의 횡포에 도전하는 힘인 동시에 오늘날 민주주의에 대한 근본적 도전이 되고 있는 지구화의 여러 경향에 대항하기 위한 지레의 힘점이라고 할 수 있다.
오래전 막스 베버가 말했듯이 민주주의는 양떼처럼 지배당하지는 않으려는 인민 없이는 존립할 수 없다. 직접행동 민주주의는 우리가 양떼가 아니라 존엄한 존재임을 확언하는 동시에 존엄한 존재 자체가 되는 경로이다.

김종엽/ 한신대· 사회학


 

필자는 서울대에서 ‘에밀 뒤르켐의 현대성 비판’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 저서로 『연대와 열광』, 『시대유감』, 『에밀 뒤르켐을 위하여』 등이 있다. <창작과 비평>, <동향과 전망>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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