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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와 위기’는 어디서 왔는가
‘성과와 위기’는 어디서 왔는가
  • 김혜진 기자
  • 승인 2007.10.01 09: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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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_ 80년대 미학을 넘어서] 사회과학계의 80년대 논쟁

미학은 현실의 상부에 자라는 꽃이다. ‘반영론’과 리얼리즘을 축으로한 
80년대의 미적 담론 곁에는 멀리는 1980년대 당대 한국사회를 뒤흔들었던
한국사회 성격논쟁, 이른바 사회구성체 논쟁이, 가까이는 절차적 민주화를 성취한
1987년의 강력한 내파력에 의해 형성된 ‘87년체제’를 적극적으로 넘어서자는
‘87년체제논쟁’이 샴쌍둥이처럼 서있다.
최근 각종 계간지와 심포지엄 등을 통해 쏟아지는 80년대에 관한 정치사회적 논의는
이 ‘87년 체제’로 집약되며, 그 내용은 형식적·절차적 민주주의가 구현된 가운데,
실질적 민주주의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에 대한 전망 모색에 있다. 여기서 실질적
민주주의는 정치적 차원의 통치원리임과 동시에, 사회적 양극화, 신빈곤 등 경제적 차원의
논의를 포함하고 있다. 주목할 만한 점은 87년 민주화 운동의 이론적 근간으로 짐작됐던
사구체 논쟁이 87년의 결과를 논하는 데 있어 제대로 고려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당시 사구체 논쟁은 ‘한국 자본주의의 미래’를 둘러싸고 민족모순을 말하는 측과
계급모순을 지적하는 쪽의 대립이었다고 단순화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87년의 성과가 권위주의의 극복과 민주주의의 진일보에만 모아지는 점은
사구체논쟁이 87년의 변화 동인에 적절하게 투영되지 못했다는 것으로 읽힌다.
사구체논쟁의 의미망이  이토록 협애화된 것은 무엇 때문일까. “사구체 논쟁의 한계
가운데 하나는 운동 진영의 실천과 학계의 이론이 분리됐다는 점”이라는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사회학)의 말처럼, 당시 사구체 논쟁은 현실에 뿌리내리지 못한 ‘관념의 잔치’로
평가될 수 있는 측면이 이런 비판을 초래한다고 볼 수 있다. 박구용 전남대 교수(철학)도
“한국근현대사에서 자생적으로 형성된 최대의 논쟁이었던 한국사회구성체 담론에서
승리한 쪽은 없었으며, 엄밀한 의미에서 담론 자체가 실패한 것”이라고 평가하는데,
역시 같은 맥락의 진단으로 볼 수 있다. 때문에 사회과학계가 기억하는 80년대는
‘87년 체제’라는 개념에 함축돼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진단하는 데 있어 무엇보다 87년이 형성한 질서 즉,  정치·사회·경제적 토대가 반성의
대상이자, 극복의 대상으로 맨 앞에 놓여있다.
87년체제논쟁은 그 개념 판단부터 민주주의에 대한 기여에 이르기까지 만만치 않다.
우선 조희연 교수는 『비정상성에 대한 저항에서 정상성에 대한 저항으로』(아르케, 2004)를
통해 87년 체제의 전환적 성격을 제기했다. 조 교수는 “한편에서 민주개혁이 시대적·국민적 과제가 돼 있는 체제이고 다른 한편에서는 구 체제의 프레임이 일정하게 구속력을 가진
형태로 작용하면서 민주개혁의 철저한 전개를 제약하는 체제”로 87년의 양가적 성격을
규정했다. 그러나 손호철 서강대 교수(정치학)는 현재의 성과와 위기가
87년에서 비롯된다는 주장에 반기를 든다. 지금의 위기가 87년 체제의 문제로부터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신자유주의 경제정책과 보수연합을 두 축으로 하는
‘97년 체제’로부터 찾아야 한다는 진단이다. 이는 ‘87년 극복’에서 “경제와 정치의
조응관계에 입각해야 한다”고 주장한 김호기 연세대 교수(사회학)와도 중첩된다.
“87년 이후 오히려 한국사회의 민주주의가 나빠졌다”며 민주화 이후의 실패를 역설하는
최장집 고려대 교수(정치학)의 지적도 비슷한 맥락에 놓인다.
최 교수는 “한국사회의 모든 문제를 87년 체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민주주의의 발전을 저해한다”고 지적한다. 학계의 87년 체제 진단은 결국 현재의 민주주의
문제로 이어지는 현재형인 셈이다. 87년체제의 개념화와 진단이 이렇게 분분한 만큼
극복의 시각차도 다양하다. 예컨대  김정훈 성공회대 연구교수(사회학)가 87년 체제를 두고 실질적 민주주의의 실현으로 이어지지 못했다고 진단하면서, 이의 극복을 위해
“새로운 이념과 정책으로 무장한 새로운 민주정당의 형성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면,
조희연 교수는 “제도정치로 수렴해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사회를 구성하는
대중 자체를 급진화하도록 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상반된
극복책을 제시하고 있다.
80년대는 여전히 논쟁의
한가운데 있다.
 김혜진 기자 khj@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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