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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쟁 서평]_<작은 정부論> 정정길 외 4인 지음 | 부키 | 2007
[ 논쟁 서평]_<작은 정부論> 정정길 외 4인 지음 | 부키 | 2007
  • 교수신문
  • 승인 2007.07.22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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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無오류 인간 이성’ 전제 큰 정부, 성장잠재력 훼손시킬 뿐

국부의 원천은 무엇인가? 부존자원과 기후조건을 떠올릴 수
있지만 해답은 아니다. ‘자원의 역설’은 부존자원이 풍부한 국가가 도리어 가난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의 원천은 사회 구성원의
잠재적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게끔 하는 그 무엇이다. 이는
종국적으로 ‘제도’의 문제로 귀착되며, 제도는 ‘가치와 이념’에
기초하고 있다.
영국 식민지와 스페인 식민지의 현재를 비교한 노스(1991)의 분석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과거 영국 식민지였던 미국, 캐나다, 호주의 생활수준은 스페인 식민지였던 대부분의 중남미 국가들보다 훨씬 높다. 노스는 이 차이를
국가가 시민들의 자유와 재산권을 잘 지켜주었는지의 여부에서 찾고 있다. 영국은 전통적으로 왕권이 약했고 법치주의가 잘 지켜졌지만 스페인은 왕권이 강했다.
따라서 영국에서는 시민의 자유와 재산이 잘 보호되었지만 스페인에서는 그렇지
못했다. 제도적 차이가 식민지에 그대로 이어져왔다는 것이다.
영국의 산업혁명은 뛰어난 과학기술만으로 이뤄진 것은 아니다. 그 이면에는 철저하게
보장된 재산권과 경제적 자유가 있었다. 경제자유가 보장된 국가는 효율을 추구하게 되고,

경제자유가 통제된 국가에서는 통제로 인해 발생한 지대를 추구하게 되어 비효율이
쌓이게 된다. 경제발전은 장기적으로 경제제도가 ‘발전 친화적’인지 여부에 의존한다.
발전 친화적이기 위해서는 경제제도에 유인과 경쟁, 성과에 따른 보상, 자기책임,
차별화 등을 담아낼 수 있어야 한다. 근대적 국민국가에서 경제운영의 기본 틀은 정부가
짜기 때문에, 부의 축적과 발전은 정부의 역할이 발전 친화적 관점에서 그 시대 상황에
적절했는지에 의해 결정된다고 볼 수 있다.
최근 프랑스에서 우풍(右風)이 불고 있다. 진원지는 사르코지다. 그는 대통령 취임과
동시에 ‘프랑스 개조’에 착수했다. 더 일하는 사람이 높은 소득을 누릴 수 있도록 유인
(誘引)을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자조(自助)하는 개인을 국가가 돕겠다는 것이다. 그의
국정철학 기저에는 ‘작은정부’와 ‘경쟁촉진’이 깔려 있다. 사르코지는 각료회의에
참석하는 31개 장관급 자리를 15개로 줄였다. 또 국가 재정지출 증가율을 동결하고
퇴직공무원의 절반을 충원하지 않음으로써 공무원을 한해 3만~4만명씩 줄여
나가겠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노동시장 보호, 국가개입 확대 등을 통한 고용 등 프랑스의 전통적

가치가 훼손되는 것에 대해 깊은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이에 작은정부론자들은
국가의 적극개입을 골자로 하는 프랑스식 처방에 대해, “그 많은 예산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라고 묻고 있다. 국가 개입주의 좌파적 이념의 원조인 프랑스의 이러한 상황은
아직도 ‘큰 정부론’에 목을 매고 있는 한국의 현실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작은 정부론>은 서평자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서평자가 과문(寡聞)한 탓인지
모르지만, 행정학을 전공하는 교수들은 통상적으로 큰정부론을 옹호하거나 정부의 크기를 주어진

여건으로 보는 ‘가치중립적’ 입장을 취하는 것으로 알아왔기 때문이다.
저자들은 ‘작은 정부’의 개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개혁이
정부부문의 구조조정을 반영하는 공직 축소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작은 정부의 개념에는 정부의 권력남용 억제, 지방정부로의 권한 이양을 통한 중앙정부의 영향력

축소 등과 같은 다양한 의미가 포함되어 있음을 밝히고 있다. 또 작은 정부에 대한 가치판단을

최대한 자제하고 객관적인 사실 판단에 입각해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물론
책의 기저에는 작은 정부에 대한 철학적 확신이 깔려 있는 것은 사실이다. 저자들은
독자들에게 ‘왜 작은 정부이어야 하는가’를 인내를 갖고 설득하고 있다. 
저자들은 경제적 접근, 관리론적 접근, 권력적 접근 및 지방분권적 접근 등 각기 다른
시각에서 작은 정부를 정리했다. 그리고 각 접근의 토대가 되고 있는 사상적 계보를
천착해 각 시각에서의 이론적 바탕을 공고히 하고 있다. 상당히 인내를 갖고 정독해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어 영국, 미국, 독일, 일본 등의 작은 정부를 향한 최근의
움직임을 소개함으로써,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세계적 흐름을 체계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서평자의 전공은 경제학이기 때문에 경제적 측면 이외의 부분에 대한 이해가 온전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경제적 측면에서 시장의 역할이 더 커져야 한다는 저자들의 견해에
동의한다. 한 가지 첨언한다면 인간의 이성이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자유가 허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전지전능한 인간이 있다면 그의 지시를 따르면 된다. 하이에크는 자유는

우리 모두의 무지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고 설파했다. 시장 경쟁과정에서의 선별과정을 통해

인간의 ‘제한된 합리성’은 그만큼 완화된다. 무오류의 인간 이성과 지고지선한 지도자를

전제로 한 ‘큰 정부-작은 시장-거미줄 규제’ 조합은 민간부문의 활력을 저상시켜 성장잠재력을

훼손시킬 뿐이다.

조동근/명지대 교수·경제학과 


필자는 미국 신시내티대에서 ‘고정환율제도 하 소규모개방경제에서의 재정동학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시장경제제도연구소 이사장을 맡고 있으며 저서로 <IMF개혁정책의 평가와 한국경제의 신(新)파라다임> 등이 있다.

#2.
‘경제적 효율성만 강조' 과연 작은 정부가 최선인가
얼마만큼 작아야 ‘작은 정부’일까? 작은 정부는 바람직한 정부인가? 예컨대
박정희 시대의 정부는 참여정부보다 권력적인 측면에서 더 막강한 정부였던
반면, 정부 재정의 규모에서는 더 적은 정부였다. 그러면 박정희 정부는
노무현 정부보다 더 큰 정부인가? 아니면 더 적은 정부인가?
<작은정부론>은 이에 대해 신자유주의적인 관점에서 정부 규모의
기준과 작은 정부의 정당성을 제시하고 있다. 또 이러한 관점에서 전두환 정부 이후 노무현 
정부까지를 비교 평가하고 있다. 이는
그 동안 제기되어 왔던 작은 정부론에 대하여 철학적 기초와
국가간 비교연구를 바탕으로 5대 정부를 평가하고 있다는 점에서 큰
이론적 업적이다. 그러나 작은 정부론을 규범적으로 정당화한다는 점에서는
정부 역할에 대한 일면적 접근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이 책은 기존의 한국을 중상주의 국가 혹은 발전국가로 보고 있는데, 이 발전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국익이다. 이런 국가모델은 박정희 체제가 전형적이며 전두환 정권 역시
이 범주에 속한다. 반면 87년 6월 항쟁 이후에 등장한 정부들은 더 이상 국익을 위해
개인이나 공동체가 일방적으로 희생을 강요받아서는 안된다는 국민적 합의를 기초로
가진다. 발전국가에 대한 이 정부들의 개혁 방법에는 자유와 개인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 방식과 공동체와 연대를 강조하는 사민주의적 방식이 있을 수 있다. 이 책의
작은정부론은 기본적으로 신자유주의적 방법에 기초해 있다.
이 책은 신자유주의적 작은 정부를 평가하는 지표를 △경제적 △관리론적 △권력적
△지방분권적 시각 등 4가지 시각에서 제시하고 있다. 경제적 시각으로는 국가-시장
관계에서 애덤 스미스나 하이에크, 오이겐 등의 자유방임주의와 최소정부를 기준으로
삼는다. 구체적으로는 공기업 민영화, 규제완화, 정부산하기관 개혁, 기금개혁을 대상으로 
한다. 관리론적 시각 역시 효율성 관점으로 자유주의적 토대 위에서 절약, 경쟁, 분권화,
책임성 확보를 대상으로 한다. 저자들에 따르면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작은 정부를 향한 신자유주의적 개혁이 진행되어 오다가 노무현
정부에 이르러 작은 정부의 흐름이 끊어지거나 역전되었다.
우선 제기될 수 있는 비판은 과연 다른 정부와 달리 노무현 정부에서 작은 정부에 대한
관심이 더 이상 지속되지 않았느냐 하는 것이다. 논자나 실증분석근거에 따라 여기에
대한 반론이 만만찮을 것이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작은 정부론이 내포하고 있는 철학적
정당성의 일면성이다. 백번 양보해서 작은정부론에 의한 역대 정부의 평가가 정당한
것이라고 할지라도 국민 전체의 입장에서 작은정부론이 가지고 있는 철학적 정당성과
이에 따른 정부 규모와 정책들이 규범적으로 바람직한가 하는 문제이다.
앞서 제기한 것처럼 발전국가의 국가주의를 개혁하는 방식은 자유주의적인 방식과
공동체를 강조하는 방식이 있을 수 있다. 먼저 고전적 자유주의 방식에서 존 로크의 ‘법
앞의 평등’이 작은 정부론에 어떻게 투영되어 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국가주의
체제에서 불평등한 각종 지대에 의해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던 특권층들에 대한 개혁이
지난 정부들에서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사회경제적 관점에서 가장
핵심적인 쟁점이다. 권력의 재량적인 사용과 이에 따른 독점적 지대추구를 방지하는
제도적 장치가 어떻게 마련되어 실질적인 공정성이 확보되었는지에 관한 논의가
필요하다. 작은 정부론에는 이와 같은 실질적 법치주의에 관한 논의가 결여되어 있다.
신자유주의적 방식이 하나의 대안이라고 한다면 한편에서는 사회연대 원리에 기초한
개혁방식이 중요하다. 수정자본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현대 국가는 자본주의적 경쟁의
탈락자들에게 ‘국가적 최소한’을 보장하고 패자부활의 기회를 부여하여 체제의
지속가능성을 가진다. 이 때 국가는 시장에 부차적이거나 필요악, 혹은 필요최소한이
아니다. 국가는 시장, 가족와 함께 사회를 떠받치는 3가지 기둥의 하나다. 한국은 OECD 
평균에 비해 낮은 복지지출, 미미한 공공부문, 공사역할 분담에서 과도한 민간부분 비율, 
열악한 사회적 안정성 등이 지적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작은 정부론은
최소정부의 경제적 효율성만 강조하는, 국가를 바라보는 일면적인 고찰이다.
작은 정부론은 80년대 이후 국가개혁의 가장 핵심적인 담론으로 위력을 발휘해 왔다.
정부규모 축소, 민영화, 권력이양, 시장의 우월성 강조는 우리사회의 당연명제로
받아들여지는 경향이 있다. <작은정부론> 역시 이런 경향에 기대어 있다. 그러나 발전국가 
시기에도 국익의 이름으로 희생을 강요받고 신자유주의적 개혁에 의해서도 사각지대에
방치되고 있는 서민과 중산층을 위한 정책적 요구 역시 간과되어서는
안된다. 작은 정부론이 효율성의 관점에서 강조되고 있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작은 정부가 
과연 누구를 향한 작은 정부인지를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임채원/서울대 한국행정연구소 연구원

필자는 서울대 국사학과에서 ‘일제의 면제 실시와 촌락재편정책’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주요 저서로 <식민지의 회색지대>, <지배와 자치-식민지기 촌락의 3국면구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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