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7 01:05 (토)
‘진보담론’ 총체적 재구성…세계적 차원·제도 논의는 미흡
‘진보담론’ 총체적 재구성…세계적 차원·제도 논의는 미흡
  • 박명림/연세대 교수·정치학
  • 승인 2007.07.15 17: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평]_<다시 대한민국을 묻는다> 이병천 외 엮음 | 한울 | 2007

대한민국의 과거, 현재, 미래를 어떻게 볼 것인가? 이 물음은 안의 구성원들이나, 밖의 관찰자들에게 수많은 고민과 토론과 논쟁의 덩어리들을 양산하는 주제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고민과 논란의 원인이 한국의 실패의 결과가 아니라 성공의 산물이라는 점이다. 그것도 세계적 성공의 사례라는 점이다. 대한민국은, 긍정과 부정을 통틀어 20세기 세계변동의 표징의 하나임에 틀림없다. 대한민국의 성공이 논란의 원인이라는 점은 성립불능의 역설적 명제처럼 보인다. 그러나 누구의, 무엇을 위한, 어떤 성공이었는가를 물어야 하는 바로 이 지점이 한국의 진보가 딛고 있는 인식적 현실적 좌표라는 점 또한 분명하다. 우리사회의 대표적인 진보적 싱크탱크인 참여사회연구소가 펴낸 <다시 대한민국을 묻는다 - 역사와 좌표>는 대한민국의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조망을 위한 거시기획의 산물이다. 민주화와 탈냉전 이후 소멸하였던 진보적 거대담론의 부활을 추구한 기획인 것이다. 
이 책은 무엇보다 시야 자체가 역사적이며 구조적이다. 우선 미래로의 ‘전망적’ 비전과 과거에 대한 ‘성찰적’ 비판이 결합되어 있다. 미래를 위한 과거로의 여행, 즉 ‘역사적 미래’의 추구이다. 따라서 시간적 범위는 산업화나 민주화 이후가 아니라 멀리 초기 국가형성까지 올라간다. 두 번째는 수준의 다층성이다. 냉전ㆍ미국ㆍ세계화를 거쳐 분단과 북한문제까지 대한민국을 위요하고 있는 구조적 문제들이 폭넓게 다루어진다. 이 점은 대한민국의 역사와 좌표가 내부의 문제들만을 다룬다고 온전히 파악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인식의 반영이다. 셋째는 주제의 포괄성 전체성이다. 산업화, 민주화, 노동, 과거청산, 국가 정체성, 자유주의, 사회민주주의, 복지국가, 사회주의, 민족주의, 생태주의, 페미니즘, 보수주의, 신자유주의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문제들을 짚고 있다. 한마디로 사회의 총체적인 (재)구성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사회서비스 증가·생태주의 등 다양한 대안 제시
따라서 이 책은 “보수담론의 득세 속에 진보담론을 새롭게 세우려는 구상”을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저자들은 이를 ‘대한민국의 시민적 진보담론 구성’이라고 명명하며 거의 모든 주제를 다루고 있다. 먼저 대한민국의 형성은 분단국가형성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출발한다. 또 북한과의 관계에서 대한민국은 적대적 공생을 위한 상대적 존재로 파악된다. 냉전해체 이후 북한은 이제 공존과 관리의 대상으로 변전되었다. 결정적인 국제적 요인인 미국은 오늘날 민족의 통일과 자주, 평화체제를 가로막는 가장 막대한 장애로 존재한다. 경제는 국가-사회-시장 자본주의의 홉스적 협력의 틀이 동아시아 냉전반공체제와 연결되며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으나 이익은 재벌에게 돌아가고 말았다. 과거 국가주도 개발독재는 이제 신자유주의의 자본독재와 노동 없는 민주주의로 바뀌었다. 민주개혁과 민중의 사회경제적 삶 사이의 괴리도 더욱 커지고 있다. 따라서 한국의 발전은 다음의 위기를 잉태하는 위기동반형 발전으로 명명된다. 국가는 그동안 전체 시민을 위해 존재하는 진정한 공화국이 아니었으며, 민주주의 역시 절차적 민주주의를 넘어 실질적 민주주의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그런 진단 하에 이 책은 자유주의의 복권, 사회민주주의의 착근, 전통적 복지국가를 넘는 사회서비스 국가의 추구, 사회주의 지향의 참여계획경제의 수립, 평화민족주의, 페미니즘, 생태주의, 풀뿌리 민주주의 등과 같은 다양한 발전경로와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우리 학문과 사회에 실천적 시각을 견지하는 거대담론이 부활하는 것은 민주화 이후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들을 고려할 때, 또 현재의 담론과 현실정치지형을 고려할 때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특히 대안의 추구문제를 역사적이고 구조적으로 보려는 노력은 높이 평가받아야한다. 현실을 여러 차원에서 비판적으로 진단한 뒤 포괄적 다층적 대안을 제시하려 한 점도 그러하다. 그러나 이 책은 비록 편서라고 하더라도 몇 가지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단선 발전 사관은 극복해야
첫째 한국의 성공이 갖는 세계적 차원의 의미와 문제에 대한 인식이 소홀하다는 점이다. 한국의 많은 내부 문제는 국제적 ‘성공’요인과 직결되어 있다. 즉 특수하면서도 보편적이기에 특히 대안의 제시를 고민할 때 국제문제와 내부문제의 통합적 파악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국제-지역-남북-국내 사이의 연결고리는 거의 파악되지 않는다. 한국문제가 이미 고도로 세계화-지역화-남북(관계)화한 조건에서 어떤 대안의 추구도 이 연결고리를 포착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사회발전을 보는 기본시각의 문제이다. 이 책은 전통적 좌파나 진보처럼, 사회발전에 대한 단계적 선후적 발전사관 - 사실상의 단선발전 사관 - 을 깊이 반영하고 있다. 예컨대 절차적 정치적 민주주의의 실질적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로의 확산과 같은 테제의 수용이다. 문제는, 이러한 테제가 역사적 일반경로도 아닐 뿐만 아니라 - 예컨대 평등ㆍ복지ㆍ시민권 확산과 정치체제ㆍ민주주의와의 관계 - 이러한 단선적 이해로는 새로운 진보적 대안의 제시가 불가능할 것이라는 점이다. 한국에서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은, 선후가 아니라 둘의 ‘경쟁과 갈등’이 사회발전을 추동하였듯, 또 현재의 많은 사회경제적 문제가 절차적 제도적 차원의 민주주의 문제로 인해 생산되듯 중요한 것은 사회적 세력ㆍ비전ㆍ의제 사이의 관계동학(relational dynamics)이지 선후(sequences)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를테면 민주화-평화화-복지화의 맞물림과 선순환구조를 포착하고 추구하는 것이다. 
셋째는 제도에 대한 논의의 결락이다. 이 책은 한국의 민주화와 사회운동이 제도화로 연결되지 않은 한계를 지적하면서도 대안의 제시에서는 부문별 분야별 제도(화)에 대해서는 거의 논의하고 있지 않다. 큰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다. 추구해야 할 이념이나 주제를 언급했다고 해서 곧 대안체제나 제도를 제시한 것은 아니다. 제기한 문제들을 누가 어떻게 실현할 수 있을 것인지 주체의 형성문제도 빠져있다. 거대담론의 구체성으로의 발전이 필요한 것이다. EU를 포함한 유럽국가들이 보여주듯 대안의 논의는 오늘날 철저하게 헌법ㆍ체제ㆍ정당ㆍ교육을 포함한 제도에 대한 논의로 연결된다. 운동을 포함해 대안적 사회의 실현은 결국 대안적 제도를 통해 가능하다. 이 점이야말로 민주화 이전과 이후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진보가 대안적 비전과 구상을 구체적 제도와 정책으로 연결할 능력이 결여되어있다는 평가를 다시 반복해서는 안 될 것이다.

박명림/연세대 교수·정치학


 

필자는 고려대에서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저서로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 <한국 1950; 전쟁과 평화> 등이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