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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사회공헌 활성화·사적이익 ‘충돌’ 균형있게 봐야
기업 사회공헌 활성화·사적이익 ‘충돌’ 균형있게 봐야
  • 홍덕률/대구대 교수·사회학과
  • 승인 2007.07.15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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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_<21세기 한국의 기업과 시민사회> 조대엽 외 지음 | 굿인포메이션 | 2007

최근 우리 사회의 변화를 민감하게 쫓아가는 이들에게 특별히 눈에 띄는 변화가 하나 있다. 바로 ‘기업 세계의 변화’다. 기업이 부쩍 자주 뉴스메이커로 등장하고 있으며,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기업에 쏠리는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공무원들이 기업 연수원에서 교육을 받는 것, 서울의 유명 사립대학에 전경련 상근부회장이 총장으로 초빙되어 간 것, 기업체 사장 출신이 CEO 대통령을 외치면서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것, 대학들마다 산학일체를 외치며 기업의 요구를 받아 적기에 정신이 없는 것, 재벌기업 임직원들이 재해 현장을 찾아 긴급구호에 나서는 것 등이 그것이다. 하나하나가 가볍게 볼 수 없는 매우 유의미한 변화가 아닐 수 없다.

국가-기업-시민사회 간 관계 변화
물론 기업세계만 변화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조대엽 교수(1장)와 윤상철 교수(2장), 이택면ㆍ박길성 교수(3장), 이선미 교수(5장) 등이 공통적으로 주목하고 있듯이, 기업세계의 변화와 맞물려 국가와 기업(시장)과 시민사회간의 관계구조에도 심상치 않은 변화가 감지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업세계의 변화는 우리 사회 전체의 구조적 전환의 한 단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조대엽 교수와 이택면ㆍ박길성 교수의 표현대로 ‘세계화’의 결과든, 윤상철교수의 분석대로 ‘민주화’의 결과든, 아니면 이선미 교수의 주장처럼 복지국가의 위기에 대한 신자유주의적 대응의 결과든, 국가와 기업과 시민사회는 지금 거대한 조정과 재구성의 과정을 거치고 있는 것이다. 그 가운데서도 이 책의 11명 저자들이 특별히 주목하고 있는 것은 ‘기업과 시민사회의 새로운 관계 맺기’이다.
김경희 교수는 한국여성재단과 기업의 파트너십을, 이선미교수는 SK와 삼성의 사회공헌활동 사례를, 이덕로 교수는 유한킴벌리의 NGO와의 파트너십 사례를 분석하였으며, 한도현, 문순영ㆍ김욱, 김원동 교수는 ‘지역’ 기업들의 사회공헌활동과 ‘지역’ 시민사회와의 관계맺기를 실증적으로 분석하면서 정책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그들의 연구 모두가 변화하고 있는 기업세계와 기업-시민사회의 새로운 관계 모색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혀 주고 있지만, 아무래도 눈이 가는 연구는 이 책의 1부에 실린 조대엽교수와 윤상철 교수, 그리고 이택면ㆍ박길성 교수의 이론적 분석이다. 그들이 각각 제시하고 있는 세 편의 논문들은 우리 사회의 변화, 특히 기업과 시민사회의 관계구조 변화의 원인과 의미를 해독해 내고 앞으로의 방향을 설계하는데 중요한 시사점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 사회공헌활동의 본질과 방향
이 글에서는 저자들의 야심찬 기획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말끔하게 정리되지 못한 채 남겨진 몇 가지 숙제들을 추려 제시함으로써, 저자들의 아니 실은 우리 사회과학계의 보다 정치한 후속 연구를 촉구하고자 한다. 
첫째는, 기업의 사회공헌활동(CSR)의 본질과 방향은 과연 무엇인가와 관련된 질문이다. 이택면ㆍ박길성교수가 제시한 대로 기업지배구조의 재구축, 즉 시민사회의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기업의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것까지를 기업 사회공헌활동의 궁극적인 지향점으로 설정하는데 다른 저자들이 동의할 것인가, 아니면 조대엽교수와 윤상철교수가 주로 주목하고 있듯이 그동안 국가의 영역으로 인식되었던 공공성의 기능을 기업이 감당하고 나서는 것을 가리키는 개념으로 제한할 것인가? 즉, 시민사회와 공공성을 기업의 의사결정 내부로 포섭하는 데까지 나아갈 것인가, 아니면 여전히 기업 밖의 대상으로 둘 것인가의 문제가 중요한 쟁점으로 남겨져 있는 것이다. 그것은 기업의 사회공헌활동의 개념정의 및 범위와 관련하여, 그리고 기업의 사회공헌활동의 궁극적 의미 및 본질과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차이를 낳게 될 것이다.
둘째는 기업의 사회공헌활동, 조대엽교수의 표현을 따르면 기업의 시민사회화, 시민사회의 기업화, 혹은 기업의 사회적 공공성 추구는 사적 이익 추구라는 기업의 존재 목적에 종속하는 것인가, 아니면 그것과 병렬적으로 대등하게 존재하는 것인가?
기업의 사회공헌활동은 기업의 사적 이익 추구를 위한 ‘전략적 행위’인가, 아니면 이선미 교수가 지적하듯이 ‘시민 기업(civil corporation)’을 구성하는 본질적 요소인가의 문제이다. 이는 기업이 추구하는 공공성의 성격과 본질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로부터 출발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기업의 본질에 대한 서로 다른 해석으로 이어질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쟁점이라고 할 수 있다.
셋째, 기업의 사회공헌활동을 기업의 시민성(corporate citizenship)으로 적극 평가하는 저자들은 작년 말에 김동춘 교수(『1997년 이후 한국사회의 전환』)가 제기한 ‘기업사회론’, 혹은 그 이전부터 유력한 패러다임으로 논의되어 온 ‘기업독재론’, ‘재벌독재론’, ‘재벌공화국론’, 혹은 일각의 ‘삼성독재론-삼성공화국론’ 등에 어떻게 답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즉,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대기업, 재벌, 특히 삼성)이 공적 기능을 담당하는 정부, 대학, 연구소, 언론 및 그 외의 다양한 시민사회 조직들의 규준을 정해 주고, 사람들의 인식과 가치관에까지 심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기업사회, 재벌독재의 사회, 삼성공화국’ 현상을, 이 책의 저자들처럼 기업의 공공성 확장으로 환영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점이다.

대기업 관련 사건들 외면해선 안돼
조대엽교수가 서문에서 지적한 것처럼 ‘학술적 영역에서조차 지나친 규범적 기대를 갖고 가치의 편향성을 갖는 것은 경계해야’겠지만, 자칫 우리 사회의 엄연한 현실을 구성하고 있는 대기업(재벌) 관련 굵직굵직한 사건들, 예컨대 삼성의 X-파일사건, 김승연 회장의 (폭행사건과는 별개의) 전방위 로비 사건, 시사저널 사건 등을 외면하거나 우연적 사건으로 치부하는 것도 역시 문제가 아닌가?
바람직한 자세는 이 책의 저자들이 주목하고 있는 기업의 사회공헌활동 활성화, 즉 기업이 국가와 시민사회의 공공 영역으로 확장해 들어가는 것과, 아쉽게도 이 책의 저자들이 주목해 보지 않고 있는 또 다른 현실들, 즉 기업이 사적 이익을 위해 국가와 정치와 시민사회 영역을 무차별적으로 식민지화해 들어가면서 빚어내는 온갖 사건들을 ‘함께’ 균형있게 바라보는 것이지 않나 하는 점이다.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그러한 주문은 저자들뿐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과학계에 던지는 것이다. 기업의 사회공헌활동 활성화라고 하는 기업세계의 변화를 경영학이나 경제학계에만 맡기지 않고, 거시 사회변동의 맥락에서 해독해 내고 그것의 사회학적 함의를 추적하고자 한 저자들의 시도는 아무리 높이 평가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남겨진 숙제들과 관련해서도 이어진 성과를 기대해 본다.

홍덕률/대구대 교수·사회학과


필자는 서울대에서 ‘한국 대자본가의 조직화와 계급실천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한국사회의 구조론적 이해> 등이 있으며 대구사회연구소 부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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