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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로 나간 젊은 지성의 분노
거리로 나간 젊은 지성의 분노
  • 교수신문
  • 승인 2001.10.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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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학생문화: 68운동과 반항정신. 이기언 / 연세대 강사·불문과
68운동은 1789년의 프랑스 대혁명과 1898년의 드레퓌스 사건의 명맥을 잇는 역사적 사건이다. 그런데 프랑스 대혁명의 주체가 부르주아 시민들이었고, 드레퓌스 사건의 주체가 지성인들이었던 데 반해서, 68운동은 학생들이 주체였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다. 68운동의 발단은 순전히 학내 문제였다. 대학생 수가 1950년에 14만명이던 것이 1967년에는 57만명으로 거의 4배가 불어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학생수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교육시설과 교수진은 여전히 열악한 상태에 머물러 있었다. 말하자면 대학이 과포화 상태에 이르러서, 지도교수를 면담하기가 1년에 한 번 가능할까 말까 하는 지경에 이르렀고, 강의실은 콩나물 시루를 방불케 하던 상황이었다. 이에 학생들이 국가의 교육정책과 교육환경에 대한 불만은 폭발직전이었고, 이러한 불만이 낭테르 대학의 시위를 촉매제로 한꺼번에 표출되는 사태가 벌어지게 된 것이었다.

2차 대전 후 베이비 붐 시대에 태어난, 소위 ‘신세대’ 젊은이들은 전통을 존중하는 기성사회의 질서와 가치들을 거부하기 시작했고, 무엇보다도 기성세대와는 다른 양식으로 자기들의 삶을 개척하려는 ‘다름에의 권리’를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한 마디로, 이들은 가정과 사회가 강요하는 전통적인 틀을 더 이상 받아들이지 않고, 더 많은 자유와 ‘다양성’을 부르짖으면서 기존의 권위를 파괴하는 소위 ‘부친 살해자들’이었다. 그래서 학생들은 프랑스 대학의 권위를 상징하는 소르본느대를 점거했고, 일부 지성인들을 제외하고는 출입 자체를 통제할 만큼 그들의 적은 바로 기성 세대였다. 예를 들어, “바르트 왈 : 구조는 거리로 나서지 않는다. 우리 왈 : 바르트 또한.”이라는 대자보가 나붙기도 했는데, 이것은 구조주의 열풍이 절정에 올랐던 당시에 구조주의 4인방의 하나인 롤랑 바르트를 공격함으로써 구조주의 전체를 겨냥하는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었다.

다름에의 권리주장

하지만, 모리스 블랑쇼, 장 쥬네, 나탈리 사로트 등 몇몇 지성인들은 학생들의 시위에 직접 참여했고, 장 뒤비그노는 학생들 앞에서 “구조주의의 사망”을 외쳐댔고, “현실주의자가 됩시다. 그리고는 불가능을 요구합시다”라는 68운동 당시 가장 유명했던 구호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특히 사르트르의 경우, 학생들이 점거하고 있던 소르본느내 대강당에 입장이 허용되어 학생들과 난상토론을 벌였던 유일한 거물 지성인이었는데, 성난 학생들로부터 적나라한 야유를 받는 곤욕을 치르기도 했지만, “여러분들이 반항하는 것은 정당하다”라고 선언함으로써, 학생들의 열렬한 박수 갈채를 받기도 했다.

또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서 “권위를 부정하고 자율권을 요구하는 젊은이들과의 대화를 거부하는 사회에서 이들이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은 오지 폭력밖에 없다”고 학생들을 적극 지지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사르트르는 모리스 블랑쇼, 피에르 클로소브스키, 자크 라캉, 앙리 르페브르, 모리스 나도, 마르그리트 뒤라스, 나탈리 사로트, 프랑수아 샤틀레 등과 더불어 5월 10일자 『르 몽드』지에 “모든 제도권과 정치집단 그리고 언론기관들이 학생운동을 가로막으려 하고 그 의미를 변질시키고자 하는 시도에 맞서서 우리는 학생들 편에 있음을 선포한다”라는 요지의 지지 성명서를 내기도 했다. 파리가 완전히 봉쇄되기 바로 전날 발표된 이 지성인들의 선언은 학생들을 전폭적으로 지지한 거의 유일한 성명서였다.

반항한다 고로 존재한다

68운동 당시 각 대학은 그야말로 대자보 천국이었는데, 다음의 몇몇 구호들을 통해서 학생들의 의식을 엿볼 수 있다. “나를 해방시키려고 하지 말라. 내 스스로가 책임진다.” “사회는 모든 이기주의의 거세 위에 기초되어야 한다.” “돈을 사랑하다니. 얼마나 슬픈 일인고!” 이러한 구호들에서도 알 수 있듯이, 몇몇 주동자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학생들은 특정 이데올로기를 주창했던 것이 아니라, 단지 기존의 권위를 타파하고 제도적인 구속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성의 해방을 요구하고 자본주의의 폐혜를 지적하는 단순하지만 의미 있는 ‘반항’을 실천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서, 학생들은 체제 전복을 위한 혁명이나 반란이 아니라, 자기들의 가장 현실적인 문제 해결을 요구하면서, 기성체제에 대한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반항을 실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카뮈가 『반항인』에서 주장했던 “나는 반항한다. 고로 우리는 존재한다”라는 명제의 반항정신이다.

프랑스의 학생운동을 언급하면서, 우리 나라의 학생운동과 비교해 보지 않을 수 없는데, 그 차이는 매우 심각한 것 같다. 가령, 80년대 학생운동이 서구에서는 50년대 중반에 이미 폐기처분된 맑시즘이라는 허상을 좇는 우를 범했고, 오늘날의 통일 이데올로기도 꼭두각시 놀음에 놀아나는 꼴이 될 가능성이 크다. 장 뒤비그노의 구호를 변형해서 말해 본다면, “이상주의자가 됩시다. 그리고는 가장 현실적인 것을 요구합시다”라는 말을 한 번쯤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또한, 소위 ‘신세대’라고 자처하는 오늘의 젊은이들도 과연 신세대 문화라는 게 무엇인지, 그 정체성을 뒷받침하는 철학이 무엇인지, 아니면 정체불명의 문화인지 한 번쯤 자문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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