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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올로기에 묻혀버린 ‘386세대의 의미’
이데올로기에 묻혀버린 ‘386세대의 의미’
  • 곽숙희 / 한국여성정책연구원
  • 승인 2007.06.25 14: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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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_<상징에서 동원으로_1980년대 민주화운동의 문화적 동학> 정철희 외 7인 지음 | 이학사 | 2007

민주화의 파고를 몸소 체험한 386세대의 한사람으로 386세대의 의미를 가끔 물어 보게 된다. 386세대이기를 자처하고 싶은가, 혹은 386세대이기를 회피하고 싶은가. 이러한 물음은 원하든 원치 않았든 386세대가 겪어야 했던 과거의 기억에 대한 상처와 잔상이 진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때로는 상처와 기억을 없애고 싶은, 그래서 감히 밖으로 조차 표현하기 어려운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럼에도 1980년대의 독재와 민주화를 진하게 경험하였던 사실 자체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며, 이러한 경험은 소중하게 기록되고 평가되어야 한다. 개인을 위해서도, 사회를 위해서도.

386세대, 이젠 사회의 중진으로
386 세대의 젊은 시절은 그래서 거리에서, 지하 서클에서, 혹은 감옥에서 그 많은 시간이 흘러갔고, 민주주의다, 민중이다, 자주다, 주체다 논쟁하고 행동하면서, 젊음을 젊음으로 느껴보지도 못한 채 그렇게 훌쩍 흘러가 버렸다. 이제는 그 386세대가 사회의 중진이 되었다. 때로는 “386은 상품적 가치”를 갖게 되어, 소위 영향력 있는 정치계나 권력 틈에서 득세할 수 있기도 하였다. 이와는 달리 아픈 기억과 자유롭게 의사소통할 수 없는 세상에 적응할 수 없어 아예 세상사와는 거리를 두고 속세를 떠나 출가하거나, 명상의 길을 선택한 경우도 없지 않았다. 커가는 자녀와 가족들을 부양한다는 이유로 생존의 현장에 뛰어들어 이전의 세대들이 그렇게 하듯, 일상의 현실을 그저 꾸려가야 하는 한 집안의 가장이 되는 선택을 하게 되고, 그래도 마음 한구석이 늘 편치 않음을 경험하는 것이 바로 386세대이다.
1980년대 당시 386세대가 직접적으로 민주화를 위해 행동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고민하고 좌절하던 젊은 날의 이상과 이념은 한국이 민주화되었다는 변화 앞에서 한국사람 모두에게도, 또한 386세대 자신들에게도 이제는 아련한 낡은 기억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젊은 날의 기억과 경험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 바로 386세대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증상이 아닐까 한다. 도대체 386세대가 겪은 경험은 무엇이며,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이었기에, 현재의 삶에도 여전히 영향을 미치고 있고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인가? 한국사회는 민주화되었고, 더 이상 군사독재의 시절은 아니라고 하지만, 무엇인가 성취하지 못한 아쉬움을 갖고 사는 것이 386세대가 갖는 공통점일 것이다.
도대체 1980년 대 민주화를 통해서 무엇이 변화되었으며, 무엇이 우리의 기억 속에 남아서 아쉬움을 남게 하는 것일까? 아직도 우리를 386세대라 부를 만큼 당시의 이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게 붙들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사회가 민주화되었다고 간단히 표현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당시의 잔상과 기억들이 386세대를 누르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상징에서 동원으로-1980년대 민주화운동의 문화적 동학’은 386세대가 겪은 시대의 아픔, 특히 정치적, 사회적 민주화라는 거창한 단어로 일축하여 담기에는 미진한 거대한 이데올로기 속에서 묻혀버린 그 시대에 활동하고 고민하던 사람들의 이야기들, 개인의 체험과 기억을 다시 생생한 기록으로 담아내고 있다는 데서 의미가 있다. 종종 거대 이념 속에서는 개인이 사장된다. 또한 많은 이론적 논쟁을 통해서, 행위하는 실체는 자취를 감추게 된다. 1980년대가 그랬다.
아마도 386세대 아픔 중의 하나가 거대 체제의 변화를 위해서 헌신하였으나, 개인은 묻혀 버리는 것에 있지 않은가 생각된다.
어느 날 눈을 떠보니, 이념은 간 데 없고, 동지 역시 간 데 없고, 세상에 그저 질퍽거리고 있는 초라한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단지 386세대는 일부 여론이나 대중매체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는 “거리에서 투쟁하여 전문성이 없는” 그저 몇몇 정치권이나, 시민사회의 권력 지향적인 명망가의 모습으로 압축되어 버리고, 민주화를 위해서 일한 이름 없는 수많은 개인들은 그저 사장되어 버리고 마는 것에 있지 않은가 한다.

‘민주화’에 가려 개인들은 존재감 없어
민주화 역시 인간들의 조직이 모여서 이루어 내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민주화과정에 참여하고 있는 인간들이나 조직이 항상 민주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민주화의 과정에서 형성되는 여러 동학들, 이념과 분파에 따른 조직의 형성과 해체, 국내외적인 정세에 따른 이념의 확대와 몰락, 민주화 행위의 주체로서의 개인들의 민주화 운동 참여과정과 이후의 삶의 역사 등의 기억은 더 이상 희미해지기 전에 기록해야 한다.
공교롭게도 1980년대의 민주화과정에 대한 연구조차도 정치적, 구조적인 연구에 집중하고, 이러한 개인들의 삶의 기록들이나 문화적인 측면들은 소홀했던 것이 사실이다.
역사적 기록에서도, 역사적인 기억 속에서도 민주화라는 깃발은 있지만, 행위했던 개인은 존재하지 않았다. 민주화와 개인의 관계, 이론과 행위의 관계를 통해서 행위주체와 민주화의 관계에 대한 연구가 부진했다. 민주화와 행위주체, 이념과 조직, 조직과 개인, 사회와 개인의 관계 등 민주화과정에 대한 쌍방적 방향의 연구를 통해서 민주화의 과정에서 행위하며 존재했던 구체적인 인간을 다시 살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상징에서 동원으로’라는 책은 학문적으로도 역사적으로 또한 개인적으로도 우리에게 시사하고 있는 바가 크다.

곽숙희 / 한국여성정책연구원


필자는 독일 프라이부르크대에서 ‘아시아사회의 맥락에서 본 현대화: 여성주의적 반성’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유네스코 아시아태평양 국제이해교육원 교육연수팀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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