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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적인 지원·기반 뒷받침돼야 생산성 향상
종합적인 지원·기반 뒷받침돼야 생산성 향상
  • 장경섭 / 서울대`사회학과
  • 승인 2007.06.11 11: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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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_<사회주의, 탈사회주의, 그리고 농업 : 동유럽과 아시아에서의 농업의 탈집단화> 진승권 지음 | 이화여대 출판부 | 2006

21세기 지구상에는 자본주의권, 사회주의권, 제3세계에 덧붙여 사회주의로부터 다양한 경로와 속도로 자본주의적 변화를 겪고 있는 탈사회주의 체제전환권이 있다. 여전히 정치체제상 사회주의권으로 분류되는 중국, 베트남 등 아시아 국가들도 점진적이나마 경제 전반에 걸친 시장지향적 변화를 추구해 왔다.
이처럼 사회주의의 전 지구적 퇴조에도 불구하고 해당 국가들의 사회주의에 대한 역사적 경험과 유산은 이들의 현재와 미래를 비사회주의권 국가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르게 만들고 있다. 또한 이들 체제전환 및 체제개혁 과정의 사회들은 변화의 배경, 과정, 결과가 매우 다양하거나 상이하여 흔히 회자되는 ‘탈사회주의’는 사실상 공통된 변화와는 거리가 멀다.

농업의 탈사회주의 변화 연구 집대성
진승권 교수의 역저 <사회주의, 탈사회주의, 그리고 농업: 동유럽과 아시아에서의 농업의 탈집단화>는 농업부문에서 이러한 탈사회주의 변화의 역사적 특수성과 내부적 다양성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제시하고 있다. 동유럽에서는 러시아와 헝가리, 아시아에서는 중국과 베트남을 대상으로 이들 농업체제의 변화 배경, 과정, 결과를 비교적 객관적으로 기술하였다.
아울러 북한 농업의 변화와 실태를 자세히 덧붙였다. 이러한 방대한 작업을 위해 다양한 형태로 출판ㆍ발표된 수많은 국내외 연구문헌에 대한 검토를 수행함으로써 농업의 탈사회주의 변화에 관한 분산된 연구결과들을 종합적으로 정리하는 성과도 거두었다.
농업의 탈사회주의 변화에 관한 본서의 비교검토는 다음의 몇 가지 중대한 결론을 도출한다. 첫째, 농업의 탈사회주의화가 결코 집단농장의 자동 해체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다. 집단농장의 해체 및 가족단위 사영농의 보편화는 공산당 정치권력이 지속된 중국과 베트남에서 나타난 변화인데, 다만 농지의 공유제는 두 나라 모두에서 유지되었다.
반면, 공산당 독재가 종식되고 비공산당계 정치세력에 의해 적극적 자본주의화가 추진된 러시아와 헝가리에는 농지의 사유화에도 불구하고 대규모 집단농장들 및 이들이 전환된 농기업들이 농업의 핵심적 구성요소로 존재한다. 가족농체제의 부활이나 신설은 모든 (구)사회주의권 농민들의 희망사항이 아니며, 각 사회의 농업역사, 생태조건, 국가정책 등에 의해 민감하게 영향을 받는다는 점이 본서에서 체계적으로 적시되었다.

생산성 결정요인은 정책 합리성·안정성
둘째, 장기적으로 볼 때 농업 생산성의 최대 결정요인은 농업조직의 (사회주의적 혹은 자본주의적) 성격이라기보다는 농업의 국가경제적 역할을 둘러싼 국가정책의 합리성과 안정성임이 드러난다. 중국과 베트남에서는 농업조직의 탈사회주의적 변화 즉 사영농화가 국가의 적극적 농업지원을 배경으로 일시적이나마 괄목한만한 생산성 향상을 가져왔는데, 불행히 국가가 농업지원 축소로 돌아서자마자 농업 생산성은 다시 정체상태로 빠졌다. 러시아와 헝가리에서는 농지의 사유화, 농업조직의 개편이 추진되는 과정에서 농업에 대한 국가지원이 축소되고 국가경제 전체가 불안정해졌는데, 이 와중에서 (특히 러시아의) 농업생산과 농민소득이 심각하게 저하되었다. 아시아 및 동구에서 공통적으로 확인되는 점은 국가의 농업에 대한 거시적 산업정책이 비우호적인 상황에서는 농업생산성이 결코 지속적으로 향상될 수 없다는 점이다.
셋째, 사회주의 경제체제의 전환이나 개혁은 산업화의 정도와 수준에 의해 그 초점이 달라지며 농업의 운명도 궁극적으로는 도시-농촌, 공업-농업 관계의 구조적 변화에 의해 근본적으로 달라짐을 알 수 있다. 이미 고도의 (사회주의적) 산업화를 달성한 러시아, 헝가리와는 달리 중국과 베트남은 여전히 (인구분포상) 농업중심국인 상태에서 개혁을 시작했으며, 초기 개혁의 초점은 농업에 있었다. 두 나라에서 농업은 사회주의 산업화를 위해 희생적 역할을 기대 받았었는데, 이제 농업개혁은 장기간의 희생에 대한 보상조처를 수반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아가 농업개혁은 농민에 대한 보상을 넘어 범국가경제적 차원에서의 새로운 성장동력 개발이라는 새로운 기대까지 안게 되었다. 특히 중국에서는 농업조직 개혁이 궁극적으로 농촌 비농업(상공업) 부문의 폭발적 발전으로 이어짐으로써 중국경제 전체의 급속한 성장세가 귀결되었다.

북한, 적극적 체제 전환 노력 없어
동구와 아시아의 이러한 농업의 탈사회주의 변화가 북한에 대해 갖는 함의는 무엇인가? 본서에서 검토된 바로는 북한은 아직 동구 각국이나 중국, 베트남에서 이루어진 적극적 체제 전환ㆍ개혁의 노력을 시작하지 않았으며, 농업부문에서 이루어진 일부 조직ㆍ경영상의 변화도 부분적 보완의 수준을 넘지 못한다.
더욱이 농업개혁의 성공사례로 꼽을 수 있는 중국, 베트남과는 달리 북한은 고도의 산업경제로서 농업개혁의 초기 조건이 오히려 러시아나 헝가리와 가까운 면도 크다. 북한이 농업에 대한 종합적 지원정책 및 기반시설의 대대적 확충 없이 단순히 농업조직만 사영화시킨다고 즉각적 생산성 향상을 기대할 수 없음을 본서의 비교분석에서 추론할 수 있다.

장경섭 / 서울대`사회학과


필자는 미국 브라운대에서 ‘가족과 발전적 사회주의-현대 중국의 농민계급 공동생활을 중심으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현대중국사회의 이해> <언론권력과 의제동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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