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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思]‘실퍼해서는’ 결코 안 될 정보교육
[學而思]‘실퍼해서는’ 결코 안 될 정보교육
  • 조정원/제주대·컴퓨터교육
  • 승인 2007.05.21 10:4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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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 내려온 지도 이제 3년이 돼간다. 극히 일부분이겠으나 제주 방언과 그 억양도 조금씩 몸에 베어가고 있다. 모처럼 만의 육지 나들이에서 친구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다보면 “이제 너 아무렇지도 않게 육지, 육지 하는구나!”라는 얘기를 들으며, 제주에 처음 내려와 육지라는 말을 그렇게나 낯설어 하던 나를 떠올려본다.
제주 방언 하니까 생각나는 얘기가 하나 있다. 직접 경험한건 아니고 학과 교수님으로부터 전해들은 얘기다. 어느 날의 강의시간. 과제물을 제출하지 않은 아이들에게 훈계를 하시다가 학생 개개인에게 왜 제출하지 않았는지를 물으셨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는 학생들 사이에 한 학생이 굳은 얼굴로 교수님께 조용한 목소리로 과제물을 제출하지 않은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교수님, 지난주 내내 너무 실퍼서 못했습니다.” 아이들은 그 말을 듣고 동요하고, 교수님은 슬프다는 학생의 말에 당황하기 시작하셨다. ‘학생한테 안 좋은 일이 있나보군. 얼마나 슬픈 일이기에….’ 더 이상의 질책대신 상황을 급히 정리하시고는 그날의 강의를 진행하셨다. 강의가 끝나고 강의시간 동안 있었던 그 얘길 다른 교수님께 꺼내셨는데 ‘실프다’라는 제주 방언에 대한 설명을 들으시고는 황당한 웃음을 지으셨다고 한다. ‘실프다(또는 실푸다)’라는 말은 보통 하기 싫고 귀찮은 그런 상황에서 쓰는 말이다. 고로 그 실프다던 학생은 슬픈 일이 있어서가 아니라 귀찮고 하기 싫어서 과제물을 제출하지 않았다는 얘기인 것이다. 물론, 그 학생은 교수님께 그 일로 많이 혼났단다. 내가 학과에 오기 전에는 ‘스승의날’ 행사로 학생들이 교수님들을 대상으로 제주 방언 퀴즈대회를 열기도 했었다. 제주 방언은 그렇게 내 생활 속의 일부가 되어가고 있다.
또 하나의 내 생활의 일부. 제주 방언처럼 시나브로 내게 녹아들고 있는 것이 컴퓨터교육에 대한 사랑과 열정이다. 컴퓨터를 잘 하려면, 컴퓨터교육을 잘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학생들로부터 그리고 학부모들로부터 참 많이 듣는 질문이다. 난 비교적 간단히 대답한다. “컴퓨터를 사랑하세요!” 여기서의 컴퓨터는 하드웨어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컴퓨터과학을 포함한 ‘정보’를 일컬어 얘기하고 있다. 좋아하는 선생님의 교과 성적이 더 우수할 가능성이 높듯이 무엇보다 정보에 대한 흥미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생활 속에 이미 깊숙이 침투해있고 앞으로 더욱 중요성이 커질 것이 자명한 것이 정보라 한다면, 향후의 유비쿼터스 세상에서는 몇 가지 응용프로그램을 잘 다룰 줄 안다거나, 타이핑 속도가 빠른 것 등등의 단순한 일면보다는 ‘정보’의 이해를 바탕으로 주어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정보를 통한 문제 해결력’이 필수적으로 요구될 것이다. 이러한 요구에 부합할 수 있는 초중등에서의 정보교육은 개개인의 미래 사회에 대한 적응성을 향상시킴과 동시에 우수한 정보인재를 양성하여 우리나라 IT 산업이 세계 중심에 우뚝 설 수 있는 밑거름이 될 것은 자명하다. 세종대왕이 집현전을 만들었던 바로 그 마음으로 우리의 후속 세대에게 참다운 정보교육을 할 수 있는 ‘정보교육기본법’의 입법화가 공론화되고 적극 추진되어야 할 시점이다. 이를 위해 ‘정보교육국민연합’이라는 일반시민단체가 결성되고 ‘정보교육기본법’의 제정 등 정보교육에 관한 건설적인 논의가 진행되고 있음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라 하겠다.
부모의 길은 아직도 잘 모르겠으나, 스승의 길만큼은 이제 어느 정도 알겠다는 한 은사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3년여 전 제주대학교 사범대학 컴퓨터교육과에 부임을 앞둔 즈음에 당신의 생각을 이렇게 말씀하셨다. “모든 제자를 내 자식처럼만 대할 수 있다면 그것이 최선의 스승의 길이 아니겠느냐!”
나는 앞서 말한 대로 컴퓨터교육을 사랑한다. 그러나 컴퓨터교육과에 소속되었다는 그 사랑만으로 정보교

육의 중요성을 얘기하고 싶지는 않다. 내 아들과 딸이 마치 숟가락질을 배우는 것 마냥 당연히 다가올 미래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정보교육을 받아야 할 것이며, 그 속에서 남다른 재능을 보인다면 우리나라 IT 산업의 역군이 되길 바라는 부모의 바로 그 마음으로 정보교육을 말하고 싶다. 그렇게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내 자식의 정보교육을 담당할 선생님을 길러낸다는 사명감과 함께, 미래의 정보 교사를 내 자식을 대하듯 키워나갈 것임을 다시 한번 스스로 다짐해본다.

조정원/제주대·컴퓨터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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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규 2007-05-22 16:15:13
훌륭한 문학가나 음악가가 되기 위해서는 소질을 타고나야 한다고 알고 있다. 문학작품의 구성이나 음의 구조화를 통한 작곡이나 연주는 한 치의 오차도 없는 논리적 사고력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다. 일부 계층의 소유물이 었던 정보가 만인의 공유물이 되었듯, 논리적 사고력을 향상시켜주는 정보처리 과정은 타고나지 못한 소질을 후천적으로 제공한다. 교육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배우는 것이라는 당연한 사실이 실현되는 것이다. '실프지' 않은 재미있는 정보교육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