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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신입생 강의 소감
[딸깍발이]신입생 강의 소감
  • 배영자[편집기획위원· 건국대]
  • 승인 2007.05.14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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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에 따라 개인차가 있겠지만 나는 신입생을 대상으로 한 강의를 가장 어렵다고 느낀다. 신입생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는 대개 OOO개론, OOO입문, 교양강의 등이 대부분이다. 해당 학문에서 다루는 다양한 내용들을 핵심적으로 압축하되 쉽게 흥미를 유발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 강의 내용을 짜는 것도 쉽지 않지만 그보다 더 어려운 것은 내용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데 있다. 대학원에서는 자신의 연구 분야와 관련된 좁은 영역의 지식을 밀도 있게 다루면서 함께 공부한다는 기분으로 강의하면 되지만 신입생 강의는 강의 내용 자체에 대한 지식보다는 별도의 강의테크닉이 필요한 것 같다.
신입생들이 기다리고 있는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그 곳은 진정으로 배움을 갈망하는 젊음의 열기로 가득하여…라고 말하고 싶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십중팔구 강의실은 매우 소란하고 산만하다. 고학년들은 교수가 강의실 앞에 서면 조용히 집중하지만 신입생들은 앞 출석번호 세네 명 쯤 불러야 비로소 조용해진다. 강의가 재미없어지면 여지없이 마음 놓고 조는 학생들이 많이 눈에 띄는 것도 신입생 강의다. 어차피 모두 다 처음 보는 모르는 교수라 미안한 척 체면을 차릴 필요도 없다. 대학입시 치느라 힘들었고, 합격증 받은 이후 이제까지 오리엔테이션이다, 환영회다, 동아리 모임이다 불려 다니느라 매우 피곤한 몸이신 것이다. 아마 어제도 모임에서 늦도록 선배들과 어떻게 하면 성공적으로 대학생활을 꾸려 갈 수 있는지 이야기와 술을 나누었을 것이다. 알찬 대학생활을 위해 강의실에서 절대 졸면 안 된다고 이야기한 선배는 없었다.
이들은 중학생이 된 이후 학교수업 7~8교시는 물론 연중무휴로 운영되는 사설학원에서 3~5시간 이상씩 공부해낸 대단한 사람들이다. 머릿속에는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만들어낸 온갖 지식들이 시험 준비 버전으로 들어가 있다. 그렇게 많이 공부하고도 과연 대학에서 새로 배울게 남아 있는지 궁금하다. 신입생을 가르치는 교수들이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들이 고교 졸업과 대학 입학이라는 시간 사이에 ‘망각의 강’을 건넌다는 사실이다. 이 기간동안 이들의 뇌는 리포맷 되는 것이 틀림없다고 나는 믿는다. 그렇지 않다면 이익집단의 예를 들어보라는 교수의 질문에 어떻게 기업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모든 기업은 이익을 추구하기 때문이라는 이유와 함께).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개별 기업이 추구하는 이익은 이해(interest)가 아니라 이윤(profit)이라고 정정해 주지만 속으로는 그만 꽤 충격을 받고 만다.  
올해도 충격은 중간고사 답안 채점과정으로 이어졌다. 수업시간에 몇 번이나 강조하면서 언급했던 개념에 대해 핵심을 피해가며 횡설수설한 답안지가 많이 보인다. 나의 강의가 면대면 의사소통이라는 믿음이 독백이었다는 배신감으로 돌아온다. 일부러 이름도 기억해가면서 질문을 던지고 유머도 몇 개 찾아 외우고 강의시간에 쓰는 파워 포인트에 사진과 그림도 많이 넣고 소설과 영화도 이야기하고, 딱딱한 이론과 개념을 현실적인 사례와 함께 설명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건만…….
내가 문제인지 아이들이 문제인지 잘 모르겠다. 다행히 학년이 높아질수록 비교적 강의시간 중 교감이 잘 이루어지고 답안지들도 나와 내 자신의 문제만은 아니라고 스스로를 위로해 본다. 문득 나에게도 대학 신입생 때 들었던 강의 중 기억에 남아 있는 게 없다는 걸 생각해 본다. 강의라는 정적인 활동에 몰두하기에는 발산해야 내야 할 동적 에너지가 너무나 넘쳐서 그러는 걸까. 사정이 이렇다 보니 때로는 고학년이나 대학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쉬운(?) 전공 강의만 하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그러나 인문사회과학에서 신입생과 비전공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양 및 입문 강의는 전공 강의만큼이나 중요해지고 있다. 비약해서 말하자면

준비 안 된 신입생들을 사로잡을 수 있는 강의를 매주 할 수 있다면 인문사회과학의 위기를 극복할 빛을 찾았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어쨌든 당분간은 신입생 강의를 열심히 해 볼 생각이다.

배영자 / 편집기획위원· 건국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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