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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로 뒤처졌지만 ‘현대화’ 몸부림
‘규제’로 뒤처졌지만 ‘현대화’ 몸부림
  • 교수신문
  • 승인 2007.04.30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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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외동향 : 프랑스의 대학정책(1) 자율성 확대 논의

프랑스의 소르본느대. 프랑스에서도 대학 개혁 논의가 한창이다.
프랑스의 대학제도는 대학을 도덕적 인성과 교육적, 과학적, 행정적, 재정적 자율을 향유하는 기관으로 정의한 1984년의 사바리(Savary)법에 기초한다. 그러나 여기에 명시된 자율은 전적으로 상대적인 것이며 실질적인 의미의 자율은 아니다. 모두 국립인 프랑스의 종합대학(université)들은 대학운영의 자유가 없으며, 입학전형에서의 선별불가능 원칙에 따라 학생선발권이 없다. 학부과정에서의 학생선발권은 Sciences-Po, ENS, Ecole polytechnique 등 전문교육기관이나 그랑제꼴에 국한된다.

또한 대학들의 교육적 자율은 학위, 과정, 연구, 시험 등에 있어서 국가차원의 규제로 제한된다. 행정적으로는 교직원 채용을 자유롭게 할 수 없으며 업무방식과 그에 대한 임금을 정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 대학들이 자유롭게 등록금을 정할 수 없다.

하지만 ‘자율’과 ‘경쟁’, ‘세계화’ 등을 내세우는 전 지구적인 신자유주의의 확산은 대학정책에도 많은 변화를 요구해 왔고, 프랑스 역시 그 요구의 흐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프랑스에서는 대학교육과 관련해 크게 두 가지 차원의 문제들이 자주 지적되어 왔다. 우선 프랑스는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대학교육에 투자를 적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GDP의 1.1%, OECD 평균은 1.7%). 학생 수에 비추어본다면 이 뒤처짐은 더욱 명백해지는데, 1년 동안 대학생 한 명에게 투자되는 비용이 OECD 평균 9천유로가 넘고 미국이 2만 유로에 이르는데 비해 프랑스는 8천유로를 조금 넘기는데 그친다. 이러한 프랑스 대학교육의 재원 부족은 초등, 중고등 교육을 보다 중시하는 프랑스 교육전통에 기인한다. 예컨대, 프랑스는 선진국 중에서 유일하게 대학생보다 고등학생에게 더 많은 비용을 지출한다.

유럽학생들도 미국으로 유학

다음으로 프랑스는 우수한 교수, 연구자, 학생들을 유치하기 위한 세계적인 경쟁에서 뒤처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 20년간 대학생들의 국제적인 이동은 두 배로 늘어났지만 그 수혜자는 주로 미국, 영국, 호주의 대학들이었다. 해외유학을 떠나는 아시아 학생들의 4분의 3이 앵글로색슨 국가를 선택하고, 유럽의 젊은이들 역시 점점 더 미국으로 떠나고 있다. 매년 유럽학생들의 10%가 미국대학의 학위를 받고 있으며, 그들 중 4분의 3이 학업을 마치고 나서도 유럽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이러한 문제제기에 대해 주로 우파진영에서 제시하는 일반적인 대안은 84년 사바리 법을 수정하여 새로운 대학 모델을 확립하는 것이다. 그것은 국내외적 경쟁에 맞서고 다른 교육적 파트너들과 통합시키는, 하나의 기업으로 여겨지는 대학을 의미한다. 이는 대부분의 교육을 국가가 담당하는 것으로 집중되어 있는 프랑스의 특수한 상황에서 대학의 ‘자율성’이라는 주제로의 회귀로 나타났다.

2002년 선거에서 대통령과 의회를 모두 장악한 우파 대중운동연합(UMP)의 철학교수 출신 교육부장관 뤽 페리는 2003년 5월 ‘대학의 현대화 법안’이라는 이름의 개혁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대학의 자율성을 확대하는 이 개혁안은 대학생과 교수들의 강한 반발에 부딪쳐 결국 무산되었다. 따라서 최근 수년간 프랑스 대학제도의 유일한 큰 변화는 유럽 내에서 각기 다른 학위들을 조화시키고 대학들 간에 학점교류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 유럽연합 차원에서 추진된 이른바 LMD(학부 3년, 석사 2년, 박사 3년으로 통일)라고 부르는 대학과정 개혁뿐이다. 

그렇다면 2003년 ‘현대화’ 법안의 구체적인 내용은 무엇일까? 이 개혁안은 아직 국무회의에 계류 중일 뿐 언제든지 의회에 상정될 수 있으며, 이미 무산된 법안이라도 차후 새로운 정치적·사회적 환경에서 다소간의 수정을 거쳐 다시 상정되어 결국 관철되기도 하는 장기적인 프랑스 법개정 과정을 고려한다면, 이 개혁안의 내용을 살펴보는 것은 프랑스 대학개혁 논의를 파악하는데 여전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

프랑스, ‘대학의 현대화 법안’ 제시

이 법안은 세 가지 축으로 구성되어 있다. 개혁안의 가장 주된 목표는 대학들에게 더 많은 자율을, 대학총장들에게 더 많은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다. 그리고 대학자문위원회들로 구성되는 결의기구의 역할을 축소하면서 대학총장을 경영자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현재까지도 프랑스 대학들의 예산은 의회 표결에 의한 엄격한 제한에 종속되지만, 이 개혁안에서 최고예산은 여전히 의회에서 표결하되 각 대학에 할당된 총액은 대학들의 다양한 지출항목에 자유롭게 운용할 수 있도록 했다. 대학 총장들은 그들을 선출한 위원회로부터 보다 독립적으로 새로운 권한들을 부여 받는다. 그들은 자문위원들의 배서를 거치지 않고 자신의 집행부를 구성할 수 있으며, 대학들은 더 이상 고등교육을 담당하는 장관의 동의가 아니라 연구위원회의 자문을 받아 규정상의 의결과정에 따라 새로운 학부(UFR)를 새로 만들거나 폐지할 수 있다. 결국 이 법안이 적용되면 대학총장들은 미국의 유명 사립대학들의 총장들처럼 그 지위가 올라가게 되며, 그들의 역할 역시 경영자적 측면이 확대되고 자체적인 재원마련을 위한 비즈니스 활동이 늘어나게 된다. 그러나 문제는 그에 따라 대학에 고용된 행정직, 노동자, 기술자들이 임시직화 될 수 있고, 대학기업의 임금노동이 ‘효율성’의 추구에 따라 유연화 될 것이라는 점이다. 즉 대학이 더 이상 의무적으로 공공서비스의 역할을 담당하지 않아도 되게 된다. 더구나 대학들은 교육부 재산인 그들의 고유한 시설들을 소유하게 되는데, 이것은 곧 대학의 민영화를 의미한다.

개혁안의 두 번째 목표는 대학운영을 개방하여 지역단체들과 대학 경영자들의 보호 하에 두는 것이다. 대학들은 해당지역 단체들과 협력과 동반에 관한 ‘협약’을 맺어야 한다. 또한 개혁안은 모든 고등교육기관에 일반적인 정책과 대학의 계획과 계약 작성에 대해 의견을 제시하는 새로운 ‘전략적 진로 위원회(Conseil d'Orientation Stratégique)’를 설치하도록 했는데, 이 위원회는 지역단체, 재계, 학계, 시민사회를 대표하는 대학외부 인사들로 구성된다. 여기서 학생, 교수, 연구자들은 소수가 될 것이며, 따라서 대학은 학생들의 요구가 아니라 지역 경영자의 이해에 보다 쉽게 복무할 수 있게 된다.

개혁안의 마지막 축은 경쟁을 통한 공립·사립 고등교육기관들의 재통합이다. 이는 서로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서 ‘작은’ 대학들은 생존할 수 없다는 신자유주의 논리에 부응하고자 하는 것으로 작은 대학들 간의 접근을 유도하여 하나의 교육기관 설립으로 나아가도록 하는 것이다. 문제는 공립과 사립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결국 국가학위를 수여하는 유료 사립대학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이다.

결국 대학의 자율성과 재원확보의 중요성에 대한 강조는 더 많은 기업의 참여뿐 아니라 프랑스에서 오랫동안 금기였던 등록금 상승을 인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변화는 좌파뿐 아니라 프랑스 공화주의 원칙에도 포함된 무상교육과 고등교육에 접근할 수 있는 평등의 원칙(학생선발권의 거부)과 충돌한다. 더구나 자율화와 대학들의 경쟁 확대는 등록금을 정하는데 있어서 ‘불평등한 자유’를 가진 대학기관들 간의 격차와 서열화를 우려하게 한다.

따라서 대학들을 위한 재정수단을 더 찾아야 한다는 필요성에 대한 일반적인 합의에도 불구하고, 프랑스는 교육에 대한 신자유주의적 해결책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지난 22일 대선에서 결선에 오른 대중운동연합의 니콜라 사르코지가 대학들의 실질적인 자율성과 우수한 교수와 연구자들의 유치를 강조하고 있지만 사회당의 세골렌 루아얄은 여전히 고등교육에 대한 접근성과 과정의 민주화를 더욱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듯이 말이다.

이기라 / 프랑스통신원·파리4대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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