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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 해설 : 서울대, 교수정년보장제 포기하는가
쟁점 해설 : 서울대, 교수정년보장제 포기하는가
  • 안길찬 기자
  • 승인 2001.09.1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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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9-12 17:28:39
“정년보장을 포기하십시오. 파격적인 물적 보상과 혜택이 주어집니다.” 서울대가 파격적인 대우를 내걸고 정년보장을 받은 교수에게도 계약·연봉제를 적용하겠다고 밝혀 파문이 일고 있다.

이기준 서울대 총장은 지난달 30일, 총장공관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내년부터 도입예정인 계약제를 기본적으로는 신임교수들을 적용대상으로 하되, 부교수 이상의 전임교수 중에서도 연구업적이 뛰어난 경우에 한해 당사자가 희망하면 정년보장을 포기하는 조건으로 계약제 및 연봉제를 적용, 파격적으로 대우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서울대의 이 방침은 단서조항을 달긴 했지만 사실상 모든 교수를 계약제와 연봉제 적용대상에 포함시키겠다는 뜻으로 풀이되고 있다. 해석하기에 따라선 금전 대가를 앞세워, 교수신분 보장의 마지막 보루인 정년보장제를 허물 수 있다는 점에서 교수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교수의 신분적 특성을 감안해 교육부조차도 두 제도 시행을 추진하면서 정년보장제는 논외로 삼았다. 정년보장제는 학문적 능력이 검증된 교수에 대해 연구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신분보호의 의미가 크기 때문이다.

대학측이 설명하는 계약·연봉제 확대적용 의도는 의외로 단순하다. 능력에 따라 교수에 대한 보상과 처우를 달리해 경직된 교수사회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것. 이를 통해 교육과 연구의 질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서울대의 한 관계자는 “노력한 만큼 교수를 대우하는 인사관리정책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정년보장을 받은 교수도 계약제와 연봉제 시행에 있어 예외가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서울대 의도두고 해석 분분

대학의 이 같은 방침이 알려지자 서울대 교수간에도 설왕설래가 오가고 있다. 이·공학계 교수들은 대체로 긍정적 반응을 보이면서도, 정년보장 포기의 대가라는 점에서 실익를 잘 따져봐야 한다는 의견이다. 한민구 교수(전기·컴퓨터공학부)는 “고가의 실험실습 장비를 필요로 하는 공학분야의 경우 젊은 교수들 사이에서 일부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면서 “지금으로서는 뭐라 단언하기 어렵다. 중요한 것은 본인의 선택이 아니겠냐”고 밝혔다. 최재천 교수(생명과학부)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정년보장 포기를 전제로 한 지원이라는 점에서 부작용이 클 수도 있다”며 “개인적으로 고민스러운 것이 사실이다”고 털어 놓았다.

반면 인문·사회계 교수들은 터무니없는 발상이라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유평근 교수(불어불문학과)는 “대학이 교수의 정년보장의 의미를 잘못 해석하고 있는 것 같다. 정년보장은 학문적 능력이 검증된 교수의 신분을 보장해 교육·연구의 자율성을 공공히 하기 위한 제도이다. 이를 포기하게 만드는 것은 그 가치를 스스로 부정하는 꼴로 앞뒤가 맞지 않는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최갑수 교수(서양사학과)도 “대가를 내걸어 정년보장 교수의 신분까지 위협하며 계약제·연봉제를 강행하는 것은 모든 교수를 비정규직화 하겠다는 발상으로 밖에 볼수 없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거액 연구비 지원방식 가능성 커

서울대 밖의 여론은 당연히 곱지않다. 계약제·연봉제 추진을 저지하기 위해 힘을 쓰고 교수단체로서는 서울대의 이 같은 움직임이 못마땅할 수밖에 없다. 교수노조 준비위는 지난 4일 성명을 통해 “이기준 총장의 발언은 절차를 무시한 독단적 행태이며, 모든 대학에 두 제도를 실시하려는 교육부의 의사를 대변하는 행태”라고 질타했다. 고홍석 국교협 회장(전북대 교수회장)은 “신임교수부터 적용하는 것도 문제인데, 서울대가 정년보장교수까지 확대하겠다는 것은 극히 이기적인 행동으로 밖에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교수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는 부분은 정년보장 포기의 대가로 대학이 어느 정도의 ‘보상’을 고려중인가이다. 구체적인 내용이 드러나고 있지 않지만 정년보장 포기를 조건으로 한 대가이기 때문에 예상을 뛰어넘는 ‘상당한’ 금액이 될 것이란 관측이다. 문제는 이를 이떻게 지원하고, 재원을 어디서 마련할 것인가 하는 절차와 방법. 국립대 교수의 급여는 정부가 관리하고 있고, 다른 국립대와의 형평성을 고려해야 함으로 서울대가 단독으로 고액연봉제를 강행하기는 사실상 힘들다.

이 점을 감안한다면 보상방식은 연구비 지원방식이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정년보장을 포기한 교수를 계약제로 임용하면서 근무기간 동안의 연구성과를 약정하는 조건으로 거액의 연구비를 제시하는 방식이 유력하다. 서울대 관계자는 “교육공무원 신분인 교수의 성격상, 대학이 급여체계를 완전히 무시하기는 어렵다. 추진한다면 연구비를 통해 보상하는 형식이 될 것이다”고 밝혔다.

특히 서울대 교수들은 이 계획이 별도의 여론수렴과정 없이 대학의 일방적인 의사에 의해 강행되고 있는데 반감을 나타내고 있다. 김신일 교수(교육학과)는 “경직된 교수 정년제를 유연하게 할 필요는 있지만, 전적으로 공론화 과정을 거쳐야 할 일”이라고 지적했다.
안길찬 기자 chan1218@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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