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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강의시간] 가르침에 대하여
[나의 강의시간] 가르침에 대하여
  • 정봉석 동아대
  • 승인 2006.12.18 19: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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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봉석 / 동아대·문예창작학과

모든 세계’를 뜻하는 대학에서, 그것도 대학생들을 가르친다는 것은 참으로 막연하고 두려운 일이다.

그렇게 주저하던 당시에 내게 큰 가르침으로써 편달하였던 스승은 칼 야스퍼스였다. 그의 명저 ‘대학의 이념’을 읽어보게 된 것은 지금 생각해도 참 다행이었다. 책을 읽으며 나눴던 그와의 대화는 수시로 해이해지는 마음을 반성하게 하면서, 대학의 강단에 첫 발을 내딛던 당시의 초심을 일깨워준다.

특히 ‘대학의 이념’ 제4장 ‘연구, 교육, 교수’ 대목은 언제 읽어도 금과옥조가 아닐 수 없다. 당시만 해도 콩나물시루를 연상시키는 강의실에서, 어떤 학생들을 대상으로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우선적인 고민거리였다.

이 물음을 놓고 야스퍼스 선생과 진지하게 대화를 나눈 결과 나는 나름대로 다음과 같은 지침을 얻게 되었다. 당신의 교탁 주위에 둘러앉아, 눈망울을 빛내며, 당신의 강의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라. 내가 얻은 이 지침에는 지금도 감당하기 벅찬 두 가지의 요구 조건이 새겨져 있다.

첫째는 교수의 강의를 추적하여 뛰어넘기 위하여 노력하는 학생들을 가르치라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대학은 고등학교와 달리 모든 학생들을 고루 가르칠 의무가 없다. 교수는 오직 소수의 유망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가르쳐야 한다.

유망한 학생이란 객관적 진리를 향한 억누를 수 없는 욕망으로 자기희생적인 질주를 하는 이들이다. 그들은 소수의 천재나 또는 보통의 평균적인 사람들이 아니라, 성장과 진취성의 가능성을 갖고 있으면서도 가르침을 필요로 하는 학도들인 것이다. 

둘째는 학생들이 노력하지 않으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훌륭한 강의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훌륭한 강의는 어느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특수한 요소를 지녀야 한다. 교수의 강의가 훌륭한 가치를 지니기 위해서는, 강의가 교수의 일생을 통한 참된 노력의 한 부분이 되어야 하며, 동시에 아무도 모방할 수 없을 정도로 그 시대의 지적 생활을 반영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고교 교사가 스승 사(師)자인 것에 비해, 대학 교수가 줄 수(授)자인 이유는 여기에 있다. 즉 교사는 모든 학생들에게 일반적인 진리를 가르치는 것에 비해, 교수는 소수의 유망한 학생들을 위하여 자신만이 이루어온 학자로서의 삶과 열정을 고스란히 물려주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현재의 대학은 어떠한가. 최종적인 목표를 취업에 두고 있는 학생들은 학점 취득을 위한 앵무새가 되어 있고, 교수들은 강의평가를 염두에 둔 팬서비스와 연구비를 타내기 위한 명목상의 과제 수행에 급급하다. 대학은 야스퍼스가 염려하였듯이, 통계적인 명확성으로써 만족스런 평균치를 달성하기 위한 고교로 변하고 있다. 이에 야스퍼스는 한마디를 보탠다. “이렇게 되면 대학은 붕괴하게 된다.”

이번 학기 도중 축제 기간에 학생들 일부가 휴강을 요구한 적이 있었다. 어느 선생인들 그러고 싶지 않을까마는, ‘최고의 명강은 휴강이요, 최악의 강의는 보강’이라는 말은 이제 옛말이 되고 말았으니…. 그리하여 나는 가혹하게도 칠판에 다음의 글귀를 새겨주었다. 단 한 사람이라도 해한다면 휴강하리라면서.

“子曰 不憤不啓 不不發 擧一隅 不以三隅反 則不復也.” 한편으로는 누군가 맞춰주길 은근히 기대했지만, 역시 무리는 무리였다.

“모르는 것에 번민하지 않고, 앎에 애써 표현하고자 않는 자는 계발하지(가르치지) 않겠노라. 한 귀퉁이를 들어 보일 때, 그로써 나머지 세 귀퉁이를 유추해내지 못하는 자는 다시 가르치지 않겠노라”는 공자의 강의를 풀이해주면서, 이래도 여러분들이 모르는 것에 비분치 않고 휴강을 원한다면 그렇게 하겠노라고 일침을 가했다.

이 지경에서 어느 학생이 감히 휴강을 외칠 수 있으리오. 그리하여 나는 진리를 향한 욕망으로 질주하고자 하는 학생들의 열의를 온몸으로 받으며 강의할 수 있었으니, 적어도 위의 첫째 조건은 갖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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