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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思] 陽明學의 길
[學而思] 陽明學의 길
  • 최재목 영남대
  • 승인 2006.11.27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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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양명학에 관심을 갖고 대학원에 진학하여 본격적으로 연구를 시작한 것은 1985년. 돌이켜보니 어느덧 20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무렵 국내의 양명학 연구 상황은 타학문에 비해 부진한 편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론, 그만큼 새로운 개척의 가능성은 컸던 셈이다. 당시에 내가 가졌던 문제의식은 ‘한국양명학의 특질을 규명해내고 그것을 동아시아 양명학사에 어떻게 제대로 위치시킬 것인가’였다. 연구주제는 명료했지만, 동아시아 양명학이라는 참으로 방대한 내용을 대상으로 하는 무모한 시도를 했다는 생각도 든다.

사실 이것을 완수하려면 근세 및 근대에 이르는 한국 및 중국, 일본 세 지역의 양명학 전개를 섭렵하고, 이들을 비교, 대조할 방법과 안목을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도 제대로 못하면서 여럿을 아우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젊음과 열정만을 믿고 겁 없이 망망대해에 뛰어들었다.

그럭저럭 가닥을 잡고, 1991년 봄 ‘동아시아에서 양명학의 전개’라는 제목으로 드디어 박사논문을 완성하였다. 여기서는 주로 동아시아 양명학을 ‘근세’라는 시기에 국한하여 각 지역에서 왕양명의 주요학설이 어떻게 수용, 전개되는가를 비교론적으로 정리하였다.

한편 ‘근대’ 부분은 고스란히 과제로 남아 있었다. 최근 몇 년간 나는 박사논문을 수정?보완해왔다. 마침내 이것을 금년 12월초 일본의 동양학 전문출판사인 페리칸사(ぺりかん社)에서 ‘東アジア陽明學の展開(동아시아 양명학의 전개)’라는 제목으로 출판을 하게 된다. 근대 이전의 동아시아 양명학을 세련되지는 못하지만 일단 정리를 하여 국내외의 학계에 선을 보이고 나면 다음 과제는 ‘근대’ 양명학이 될 것이다. 

강단에 선 뒤, 내가 줄곧 해온 작업은 주로 국내의 학술 상황과 맞물려 양명학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내는 일이거나, 박사학위 논문에서 문제를 제기했지만 논의가 불충분했던 사항들을 보다 세부적으로 논의해가며 동아시아 양명학에 대한 지식의 폭을 넓히는 일이었다. 이 가운데, 보람 있는 일은, 세 번에 걸친 중국 답사를 통해 3년 전 ‘왕양명의 삶과 사상’이라는 일종의 왕양명 평전을 출간한 일. 그리고 국내의 모 출판사에서 10년 전에 간행된 ‘동아시아의 양명학’(이것은 박사학위논문과 다른 내용임)이 중국 절강성사회과학원의 國際陽明學硏究中心에서 ‘해외양명학시리즈’의 하나로 중국어 번역되어 내년에 소개된다는 것.

앞으로 내가 해야 할 일은 ‘동아시아 근대 양명학’의 정리이다. 일본에서 造語(=日本漢語)된 ‘陽明學’이란 말이 무자각적으로 한국-중국으로 유포되는 근대라는 시공간은 나에게, 식민지콤플렉스를 넘어서서, 학술적으로 매우 매력적인 영역으로 자리해가고 있다. 끊임없이 퍼내어도 자꾸 솟아나는 샘물처럼, 동아시아 근대 양명학은 매력덩어리이다.

서세동점과 일본제국의 아시아침략, 이와 맞물린 식민지 領內의 양명학적 知-개념, 텍스트, 청년계몽론의 유포와 그 동아시아적 차원의 네트워크 형성. 이로 인한 독자적인 근대 양명학 및 학술지식 면역력 형성. 이런 일련의 상황을 사실고증으로 현실감 있게 복원해내는 일은, 사실 철학?사상만의 영역을 훨씬 넘어선, 문학?역사 등과 복잡하게 맞물린 通장르적-超域的 연구 능력을 요구한다. 그런데, 이 관문을 통과하지 않고서는 ‘동아시아 근대 양명학’은 제대로 복원될 수 없을 것이다.

최재목 / 영남대·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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