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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 母國語, 최후의 堡壘
[딸깍발이] 母國語, 최후의 堡壘
  • 남기탁 편집기획위원
  • 승인 2006.11.27 12: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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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고려대에서 발생한 일련의 사건은 오늘날 우리 대학이 직면한 현실과 관련하여 示唆하는 바가 적지 않다. 지난 9월, 고려대 문과대 교수 들은 ‘인문학의 위기’를 선언한 바 있고, 이후 전국 대학의 인문대 학장들과 출판업에 종사하는 문화인들이 이 위기 선언에 동참했다.

그리고 얼마 전, 어윤대 총장이 차기총장 예비선거에서 탈락했다는 발표가 나왔다. 대표적인 CEO형 리더로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해온 어윤대 총장의 탈락은 문과대를 중심으로 한 교수들의 반대 때문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고려대 사태의 推移는, 오늘날의 대학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市場主義와 無限 競爭의 요구에 대한 내부의 저항과 갈등 양상을 그대로 드러내주고 있다.

그렇다면 교수들은 시대와 현실의 요구에 충실하고자 했던 총장을 어째서 신임하지 못한 것일까. 총장의 생각과 이에 대해 비판적인 교수들의 입장 사이에는 과연 어떤 障壁이 가로놓여 있는 것인가.

여기서 특히, 갈등의 중요한 소지를 제공한 영어강의 확대 정책은 다시 한 번 심각하게 검토될 필요가 있다. 어윤대 총장은 취임 이후 영어강의 확대를 학내의 최우선 과제로 설정하고 이를 강도 높게 추진해왔지만 많은 교수들의 반대에 부딪히고 말았다. 고려대를 비롯하여 영어강의 확대 정책에 반대하는 다수 교수들의 목소리는 현실적 여건과 교육적 효과 등 여러 가지 문제점을 고려한 결과라고 볼 수 있는데, 이 문제와 관련하여 내가 이 자리에서 다시 확인하고 거듭 강조해두고자 하는 것은 모국어의 존재 의미이다.

去頭截尾하고 결론부터 미리 말하자면, 언어의 본질적 의미는 단순한 도구의 차원에 머무르지 않는다. 얼마 전, 영어강의 확대와 관련된 문제의 是是非非를 가리는 TV토론 프로그램에서 영어강의의 필요성을 열심히 주장하는 한 대학 교수의 말을 듣고 錯雜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분의 주장은 자신의 전공분야에서 영어강의는 필요한 지식을 더 정확하게 전달함으로써 학습의 효과를 높이는 데 기여한다는 것이다. 그 분의 말씀은 자신의 맥락 내에서는 매우 지당한 것이지만, 언어를 단순한 수단으로만 생각하고 있다는 점에서 분명한 한계를 가지고 있다. 만약, 그 교수님의 생각처럼 언어가 어떤 대상을 지시하는 단순한 기호적 수단, 중립적인 그 무엇이라면 대학에서 영어강의의 확대는 문제될 것이 없다. 그러나 진실은 그것과 거리가 멀다.

언어는 현실의 대상을 단순하게 지시하는 수단일 뿐만 아니라 현실 그 자체를 구성해내는 창조력의 바탕이다. 한 개인의 특정 언어는 그 사람의 사고와 인간됨, 나아가 삶 자체를 형성하는 틀로써 작용한다. 그리고 언어는 특정한 공동체의 산물이라는 사실 또한 기억해야만 한다.

모든 언어는 그 자신이 속해있는 특정 공동체와 그 정신체계의 표현이다. 언어란 한 개인과 집단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근원적 요소이자 창조적 사고의 근원이라는 사실을 다시 떠올릴 때, 대학에서 영어강의의 확대 현상은 결코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창조적으로 살고 사유하기 위해 우리 말과 글을 사용하는 일이 권리이자 감당해야 할 의무가 되어버렸다. 특히, 오늘날의 대학에서 모국어를 사용하는 것은 우리 시대 최후의 보루를 지키는 일과도 같다.

남기탁 / 편집기획위원·강원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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