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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된 '논술능력'의 측정을
교육된 '논술능력'의 측정을
  • 김종철 편집기획위원
  • 승인 2006.11.18 02:5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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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철 서울대 교수 ⓒ 이재열
대학이 논술을 학생 선발 시험의 하나로 본격적으로 도입하면서 그 파장이 엄청나다. 누군가 ‘논술 광풍’이라 했는데, 그럴 만하다. 출판업계에서 웬만한 읽을거리는 모조리 논술과 연계시켜 내놓은 지 오래고, 사교육 시장도 논술을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주식 시장에서도 논술과 관련 있는 사교육 회사의 주식이 관심의 대상이 된 적이 있다. 여기에다 유력 일간지들이 다투어 특집으로 다루어 논술을 국민 모두의 관심사로 굳혔다. 그 결과 논술은 실체보다도 훨씬 거대한 존재로 그 몸집을 불리게 되었고, 대학 지원자들과 중등학교로서는 무슨 괴물과 맞서고 있는 느낌을 갖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물론 대학으로서도 부담스런 존재가 되었다.

사정이 이러하니 논술을 둘러싼 논의 또한 뜨겁다. 변형된 본고사 아닌가라는 의문에서부터, 공교육에서 감당할 수 없으므로 사교육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결국은 특정한 지역이나 학교에 유리한 시험이라는 주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장과 견해가 속출하고 있다. 그러나 누구도 딱 부러진 답을 내놓을 수 없는 형편인 것도 사실이다. 여기에는 우선 교육의 기회 균등과 대학의 자유와 같은 중요한 가치가 관여하고 있어서 어느 한쪽을 위해 다른 한쪽을 쉽사리 배제할 수 없다. 또 지원자들을 변별하기 위해 논술을 도입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과 그러한 논술을 제대로 교육하기에 힘이 부치는 중등학교의 현실이 상충하여 어느 쪽을 일방적으로 거들 수도 없는 상황이다. 아울러 대학이 길러내고자 하는 바, 미래 사회를 준비하는 데 필요한 인간 능력에 대해서도 다양한 견해가 있어서 통합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교육의 관점에서 논술을 인식하는 일이다. 만약 논술을 시험의 하나, 즉 검사 도구로만 여긴다면 대학 입시에서 논술의 도입은 결국 논란만 불러일으키고 실패할 것이다. 일간신문이나 학원가의 선전지에 늘 쓰이는 ‘논술 대비’라는 표현에서 감지할 수 있듯이 수험생에게는 어쩔 수 없이 통과해야 할 관문의 하나가 될 뿐, 명분으로 내세우는 공교육의 정상화는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공교육의 정상화를 구두선처럼 외워 온 수학능력시험이 결국은 공교육 정상화는커녕 변별력조차 상실해 검사 도구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는 점을 거울로 삼아야 한다.

따라서 논술은 수학능력시험 다음에 넘어야 할 또 하나의 관문이 아니라 중등교육과정에서 획득해야 할 능력으로 인식되어야 한다. 그것도 대학의 편의에 따라 수험생들에게 요구하는 능력이 아니라 중등학교의 정상적인 교과 과정에서 형성될 수 있는 능력으로 인식해야 한다. 특히 대학은 대학이라는 학문 공동체가 기본적으로 요구하는 사고력과 표현력만을 일방적으로 내세울 것이 아니라 중등학교 교육이 도달할 수 있는 사고력과 표현력을 기준으로 하여 대학 나름대로의 특성과 요구 조건을 적절히 더하는 선에서 논술 측정을 해야 한다.

우리 교육이 늘 그래왔듯이 명분은 그럴 듯하게 내세우고 실제로는 평가의 최종 칼자루를 누가 잡느냐를 다투고, 그 와중에 교육받은 만큼, 노력한 만큼 정당하게 평가받을 권리가 있는 학생들은 소외되고 마는 우(愚)를 이번의 논술 도입에서는 반복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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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잎새 2006-11-24 16:55:10
설령 논술고사가 대세이고, 앞으로 논술고사가 대입고사에 도입되어서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된다고 해 보자. 그렇다면, 학부모들이 논술의 정답을 공개하라고 할텐데...정말 대학은 자신있게 논술정답을 공개할 수 있나? 논술에 정답이 하나인가??? 정답이 분명히 있다고 하는 5지선다객관식에서도 오답시비가 쇄도하고 있는데..수학의 정답에도 시비를 거는 세상에... 이 치열한 교육경쟁의 나라에서...우리의 용감한 학부모들이 가만 있을까? 그럼 대학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결국 이들은 재판을 걸지 않겠나? 1점으로 학생들의 인생이 왔다갔다 하는 시대에..대학은 끝까지 답안공개를 하지 않고 버티던가, 아니면 공개하고 논쟁할 것인가? 하는 선택을 해야하는데, 어떻게 언제까지 답과 채점 결과를 공개하지 않을 수 있나? 논술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답을 공개하라는 학부모들의 예상되는 요구에 대한 대책은 전혀 없다. 이것이 딜레마다. 왜 이런 논쟁으로 시간을 보내는지... 물론 창의력, 논리력은 중요하다. 그러나 논술만이 이를 보장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