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이 논술을 학생 선발 시험의 하나로 본격적으로 도입하면서 그 파장이 엄청나다. 누군가 ‘논술 광풍’이라 했는데, 그럴 만하다. 출판업계에서 웬만한 읽을거리는 모조리 논술과 연계시켜 내놓은 지 오래고, 사교육 시장도 논술을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주식 시장에서도 논술과 관련 있는 사교육 회사의 주식이 관심의 대상이 된 적이 있다. 여기에다 유력 일간지들이 다투어 특집으로 다루어 논술을 국민 모두의 관심사로 굳혔다. 그 결과 논술은 실체보다도 훨씬 거대한 존재로 그 몸집을 불리게 되었고, 대학 지원자들과 중등학교로서는 무슨 괴물과 맞서고 있는 느낌을 갖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물론 대학으로서도 부담스런 존재가 되었다.
사정이 이러하니 논술을 둘러싼 논의 또한 뜨겁다. 변형된 본고사 아닌가라는 의문에서부터, 공교육에서 감당할 수 없으므로 사교육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결국은 특정한 지역이나 학교에 유리한 시험이라는 주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장과 견해가 속출하고 있다. 그러나 누구도 딱 부러진 답을 내놓을 수 없는 형편인 것도 사실이다. 여기에는 우선 교육의 기회 균등과 대학의 자유와 같은 중요한 가치가 관여하고 있어서 어느 한쪽을 위해 다른 한쪽을 쉽사리 배제할 수 없다. 또 지원자들을 변별하기 위해 논술을 도입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과 그러한 논술을 제대로 교육하기에 힘이 부치는 중등학교의 현실이 상충하여 어느 쪽을 일방적으로 거들 수도 없는 상황이다. 아울러 대학이 길러내고자 하는 바, 미래 사회를 준비하는 데 필요한 인간 능력에 대해서도 다양한 견해가 있어서 통합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교육의 관점에서 논술을 인식하는 일이다. 만약 논술을 시험의 하나, 즉 검사 도구로만 여긴다면 대학 입시에서 논술의 도입은 결국 논란만 불러일으키고 실패할 것이다. 일간신문이나 학원가의 선전지에 늘 쓰이는 ‘논술 대비’라는 표현에서 감지할 수 있듯이 수험생에게는 어쩔 수 없이 통과해야 할 관문의 하나가 될 뿐, 명분으로 내세우는 공교육의 정상화는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공교육의 정상화를 구두선처럼 외워 온 수학능력시험이 결국은 공교육 정상화는커녕 변별력조차 상실해 검사 도구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는 점을 거울로 삼아야 한다.
따라서 논술은 수학능력시험 다음에 넘어야 할 또 하나의 관문이 아니라 중등교육과정에서 획득해야 할 능력으로 인식되어야 한다. 그것도 대학의 편의에 따라 수험생들에게 요구하는 능력이 아니라 중등학교의 정상적인 교과 과정에서 형성될 수 있는 능력으로 인식해야 한다. 특히 대학은 대학이라는 학문 공동체가 기본적으로 요구하는 사고력과 표현력만을 일방적으로 내세울 것이 아니라 중등학교 교육이 도달할 수 있는 사고력과 표현력을 기준으로 하여 대학 나름대로의 특성과 요구 조건을 적절히 더하는 선에서 논술 측정을 해야 한다.
우리 교육이 늘 그래왔듯이 명분은 그럴 듯하게 내세우고 실제로는 평가의 최종 칼자루를 누가 잡느냐를 다투고, 그 와중에 교육받은 만큼, 노력한 만큼 정당하게 평가받을 권리가 있는 학생들은 소외되고 마는 우(愚)를 이번의 논술 도입에서는 반복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