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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공통장
예술과 공통장
  • 김재호
  • 승인 2024.03.27 09: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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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범철 지음 | 갈무리 | 400쪽

우리는 임금 노동이 숙명처럼 부여된 삶을 살아간다. 우리는 임금 없이 잘 곳도 먹을 것도 입을 것도 구할 수 없다. 하지만 임금에 의존하는 삶은 우리를 일의 늪에 빠뜨린다. 우리는 매일매일 아침부터 밤까지, 삶의 거의 모든 시간을 일하는 데 바치며 어떤 의미에서 삶을 포기한다. 이 책은 노동에 속박된 삶에서 벗어나 조금 더 자유롭고 자율적인 삶을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는가를 모색하기 위해 쓰였다.

이를 위해서는 임금에만 의존하는 삶에서 벗어나 기댈 수 있는 다른 무언가를 만들어내야 한다. 그 다른 무언가가 이 책에서 공통장(commons)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렇다면 가용할 수 있는 물질 자원이 거의 없는 도시에서도 삶의 기반이 될 수 있는 공통장을 찾을 수 있을까?

이 책에서 살피는 도시 공통장은 예술가들이 점거한 공간, 스쾃(squat)이다. 예술가 공동체는 스쾃을 통해 공동의 터전을 새롭게 만들어 내고(공간의 공통화), 예술을 모두의 것으로 만들었으며(예술의 공통화), 상호부조하는 관계를 형성했다(네트워크의 공통화). 예술가들은 이를 통해 스스로를 재생산하고, 지역 사회에서 공유되는 문화적 환경을 형성한다는 점에서 공통의 부를 생산한다. 다른 한편 도시 경쟁력 향상을 위해 예술을 차용하는 도시 정부가 있다. 문제는 창조도시 전략으로 대표되는 그 과정에서 예술가의 활동이 도시 정부에 의해 왜곡되거나 흡수된다는 점이다. 다른 삶을 위한 욕망으로 시작했던 스쾃-공통장은 이제 도시를 ‘문화적으로’ 치장하는 투어리즘의 명소가 되거나 젠트리피케이션의 동력이 된다.

이처럼 이 책은 다른 삶의 기반으로서 공통장이 지닌 의의에 주목하면서, 그것이 ‘자본의 공통장’이 될 위험에 빠져 있음을 함께 지적한다. 집 안에서 비임금 노동을 통해 남성 노동자의 노동력을 생산하는 여성들처럼, 예술가들은 도시에서 ‘문화적 풍경’을 생산하는 비임금 노동자가 된다. 이 책은 이러한 인식을 기초로 공통장이 대안 담론으로 부상하는 오늘날 그것이 처한 위험에도 주목할 것을 요청하며, 공통장을 기초로 한 대안적 삶을 꾸릴 방안을 새롭게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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