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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여정이다”…디지털 인문학이 풀어낸 은유
“인생은 여정이다”…디지털 인문학이 풀어낸 은유
  • 이창수
  • 승인 2024.03.14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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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말하다_『라이프 레슨』 이창수 지음 | 사람in | 264쪽

개념적 은유는 인지언어학의 주요 주제
40가지 표현과 엮인 다양한 영어 인생담

“인생은 여정이다(Life is a journey)”는 『삶으로서의 은유』 공저자인 래코프와 존슨(Lakoff & Johson)의 ‘개념적 은유(conceptual metaphor)’를 설명할 때 가장 많이 인용되는 은유다. 우리 주변에는 ‘인생’이란 개념을 ‘여정’이란 개념에 빗대어 묘사한 언어 표현들이 많다.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을 ‘갈림길’로 묘사하고, 언행이 안 좋은 학생은 ‘탈선했다’고 한다. 어떤 계획이 무산되었을 때는 ‘좌초했다’고 한다. 이 표현들은 인생을 각각 도보 여행·기차 여행·선박 여행에 비유한 표현들이다. 래코프와 존슨의 연구 이전에는 이런 비유 표현은 언어적 유희 차원에서 다뤄졌다. 언어적 은유 표현은 문학에서는 쓰이는 장식 언어로 치부됐다. 그런데 래코프와 존슨은 이런 전통적 관점을 뒤집고 언어적 은유 표현은 일상 언어의 핵심 요소로 언어소통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언어적 은유 표현의 기저에는 그 표현들을 하나로 묶어 주는 개념적 차원의 은유가 존재하며, 언어적 은유 표현은 개념적 은유의 언어적 표상이라고 주장했다. 그런 개념적 은유에는 “인생은 여정이다” 외에도 “시간은 돈이다(Time is money)”, “사랑은 전쟁이다(Love is war)”, “질병은 적이다(Diseases are enemies)” 등 수많은 종류가 있다. 개념적 은유는 인지언어학에서 다루는 주요 주제 중 하나이다.

이 책은 그동안 학문적 영역에서만 논의되던 개념적 은유를 대중문학에 연결시켜 일반 독자들이 쉽게 읽을 수 있는 수필집으로 엮어 냈다는데 그 의의가 있다. 영어에는 인생을 여정으로 보는 관점을 반영한 표현들이 매우 많다. 그리고 래코프와 존슨이 주장한 대로 이런 표현들은 영미인의 일상적 대화나 글에 빈번하게 등장한다. 가령, 부부간의 갈등 관계있는 사람은 “결혼 생활이 암초에 부딪혔다(My marriage is on the rocks)”라고 한다. “우리는 지금 갈등 관계에 있어”라고 하는 것보다 “암초에 부딪혔다”라고 하면 의미가 더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다가온다. 결혼 생활이란 배가 큰 암초에 얹혀 있는 장면이 떠오른다. 

일상 언어에서 은유 표현이 하는 역할이 바로 그런 것이다. 추상적이고 어려운 의미를 우리가 일상적으로 겪는 경험에 빗대어 구체적이고 쉬운 의미로 이해하게 도와준다. 그런 표현이 일상적으로 빈번하게 사용된다는 것은 해당 경험이 일반적이란 뜻이다. 따라서 영어에서 많이 사용되는 “인생은 여정이다”와 관련된 언어적 은유 표현은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겪는 다양한 경험을 반영한다. 뒤집어서 그런 언어적 은유 표현을 추적해 분석하면 우리가 인생에서 흔히 겪는 경험을 밝혀 낼 수 있다. 이런 배경에서 저자는 개념적 은유에 관한 연구 도서와 논문에서 “인생은 여정이다”와 관련돼 소개된 은유 표현을 수집했다.

미국의 언어학자인 조지 래코프이다. 사진=위키피디아

이 책의 또 다른 특징은 1천 권 이상의 영어 회고록과 자서전을 분석 자료(코퍼스)로 사용해 파이선 프로그램에 탑재해서 수집한 언어적 은유 표현을 식별하고 빈도를 분석해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40가지 “인생은 여정이다”와 관련된 은유 표현을 선별해냈다는 점이다. 이를 다시 1천 권의 코퍼스에서 검색하고 회고록과 자서전 저자들이 해당 표현을 사용한 맥락을 추적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1천 권의 코퍼스 안에 “인생은 여정이다”와 관련된 은유 표현이 어떻게 분포돼 있으며 어떤 표현들이 가장 빈번하게 사용되는지 그리고 그 맥락은 어떤 것인지를 분석할 수 있었다. 

이런 자료를 기반으로 40가지 표현과 관련된 다양한 인생담을 소개하며 그런 이야기에서 얻을 수 있는 인생 교훈을 정리한 에세이를 집필했다. 이처럼 다량의 문학작품을 디지털화해서 경향·특징·패턴·주제·시류 등을 분석하는 것을 디지털 인문학이라고 한다. 따라서 이 책은 우리나라 최초의 디지털 인문학 에세이라고 할 수 있다. 딱딱한 학문적 이론을 일반 독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에세이로 풀어 학문과 대중문학의 간극을 좁히려 시도했다는 점에서 궁극적 가치를 발견한다.

 

 

 

이창수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한영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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