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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A ‘효율성·투명성·접근성’을 약탈의 근거로 보는 게 문제다
OA ‘효율성·투명성·접근성’을 약탈의 근거로 보는 게 문제다
  • 이성청
  • 승인 2024.03.12 08:4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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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액세스와 ‘MDPI 통째 논쟁’에 대한 의견
이성청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이성청 서울대 교수

역사 속에서 기술 문명의 혁신과 진보는 여러 모습으로 삶의 방식을 변화시켜 왔고, 특별히 계급 구조를 재편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예를 들어, 농사를 짓는 도구나 이와 관련된 시설 개발은 토지와 관계하는 인간의 생활 방식과 공동체 형성의 틀을 바꾸었다. 청동 기술은 고대 왕국 건설의 기반을 닦았고, 산업혁명은 도시화뿐 아니라, 생산수단 소유와 접근성을 축으로 사회 계급과 그 구조를 각각 전문화하고 정당화하게 했다.

특별히, 18세기 인쇄 기술과 현대의 디지털, 인터넷 기술은 정보 생산과 소통의 민주화 그리고 혼돈이라는 역설을 가져왔다. 당연히, 지식을 생산하는 학문·지식 공동체도 이 운명을 피할 수 없었고 우리는 현재 그 극적인 예를 다양한 형태로 경험하고 있다.

도제의 구두 전승이나, 파피러스나 흑판에 지식을 기록하고 보관했던 고대 도서관, 수도원을 통해 지식을 축적한 중세 대학, 그리고 펜으로 쓰고 종이로 출판하던 저널과 대면으로 소통했던 지식은 온라인 저널이나 데이터베이스, 소셜미디어, 줌, 웨비나 등의 혁신적인 기술과 증강된 학문적 네트워킹과 협업으로 공유되기 시작했다. 

지식 생산·공유 지배해 온 엘리트주의 시각의 히스테리

특별히, 오픈 액세스(Open Access)라는 새로운 지식 소통의 플랫폼은 지식 전달의 접근성과 스피드를 혁신했을 뿐 아니라 지식을 지식이라고 명명하는 권력관계와 구조에도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일단, 오픈 액세스는 구독이라는 장벽을 허물면서 연구물, 즉 지식에 대한 접근성과 전파 속도를 극적으로 향상시켰을 뿐 아니라, 독자와 대학이 감당했던 천문학적 재정 부담을 완화시켰다.

저자·연구자가 저작권을 누릴 수 있는 기회를 넓히는 혁혁한 공을 세웠지만, 아울러 (디지털 플랫폼의 생리로 인해) 연구물의 대량 생산이라는 기현상을 야기시키면서 학자들로 하여금 인지적 부조화·불편함을 느끼게 만들기도 했다.

지식의 전통적 공유·확산 모드는 엘리트적, 계급 관계를 전제한 것이었기에 “대량” “신속” “누구든/모두에게”라는 표현과 어울리기 쉽지 않았다. 예를 들어, 지식을 생산하는 주체는 전통-페이퍼 저널을 통해 학계를 지배 통제하는 지식 권력자, 구체적으로는 서구-영어권-학자(Anglophone scholars)들이었다. 이들이 구축한 논평자 집단의 피어-리뷰는 지식을 적법하게 만들어내고 그것에 도덕성까지 부여하는, 일종의 성스러운 의례가 되었다.

이들에게 있어, 지식은 발견되고 개발되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특정 방식, 형식으로 설득, 통제되고 승인 받는 것이기도 했다. 각 지식 공동체는 지식-생산자의 자격을 규정하고 이들이 검증하고 그리고 합의한 방식으로만 지식을 생산하고 유통하게 만들었다.  

오픈 액세스 모델은 이 전통적 패러다임의 축을 뒤흔들었고, 전통 모델에 익숙하거나 그것으로 자신의 지위와 권력을 쌓은 지식-생산자들 그리고 그 추앙자들을 도발했다. 물론, 그들에게 이 도발은 위협이나 위기라기보다 “이단적” 혹은 “못마땅함”이었다. 무엇보다, 오픈 액세스는 저자·기관으로 하여금, ①출판비를 요구하고, ②출판을 지나치게 빠르고 쉽게 하는(쉽게 보이는 것) 문제를 야기시켰는데, 이 모든 문제는 앞서 언급한 바로 그 엘리트주의를 건드렸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오픈 액세스 과학 학술지 출판사인 ‘다학제 디지털출판연구소’(MDPI)의 홈페이지 화면이다. 

행복이 성적순이 아닌 것처럼, 지식의 지식 됨 혹은 가치가, 그 유통 경로를 한우 등급 매기는 것처럼 이뤄져서는 안 될 일이다. 필자는 세계에서 가장 큰 오픈 액세스 과학 학술지 출판사인 ‘다학제 디지털출판연구소’(Multidisciplinary Digital Publishing Institute, 이하 MDPI) 논쟁이 이러한 문제를 상징적으로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MDPI 계열 저널들은 전통 인문학 저널에 없었던 출판비를 요구하고, 이제껏 경험해 보지 못한 빠른 속도로 피어-리뷰와 출판을 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보기에 문제는, 이 모든 “불편함”과 “이상함”은 앞서 언급한 지식 생산·공유 패러다임을 지배해온 계급적·엘리트주의적 시각이 오랫동안 주입한 심리적 강박관념이 야기시킨 히스테리로 느껴진다.

게재료인 APC(Article Processing Charge) 부과는, 대학 도서관 혹은 독자에게 지속-불가능하고 불합리한 구독료 문제를 해결한 것이라 이미 출판업계에선 표준이 되어버렸다. 오죽했으면 하버드대학이 “오픈 액세스 저널에 논문을 내고” 우리가 전통적으로 부여했던 “기존 저널의 권위와 힘을 오픈 액세스 저널로 옮기자”라고 호소했을까.  

학계에서 제기되고 있는 MDPI 출판사에 자체 혹은 통째에 대한 비판은 이처럼 OA에 대한 부족한 이해이거나 아니면 앞서 언급한 세력 다툼 현상으로 보인다. 필자는 수년간 MDPI 출판사의 유일한 A&HCI 등재 저널인 『Religions』의 편집위원으로 봉사하고 있고, 내부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출판사의 장·단점뿐 아니라 외부의 시선과 우려 또한 잘 인지하고 있다.

아이러니한 것은, MDPI 저널들이 보이는 특징적 장점인 신속한 피어-리뷰나 출판 과정은 학자·연구자들이 지극히 바랐던 것인데 오히려 의혹의 대상이 되어버렸다는 점이다. 당연히, MDPI 계열 저널들이 엄격하지 못한 피어-리뷰를 하고 있다는 주장은 내부 사정을 몰라서 하는 말이다.

특정 저널의 피어-리뷰에 대한 평가는 개인이 판단하거나 개별 사례로 고려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서 비판 자체가 위험하다. 즉, 수백 개의 각기 다른 분야의 저널들이 피어-리뷰 과정을 MDPI라는 출판사 이름으로 뭉뚱그려 평가하는 것은 불합리하고, 비윤리적이고, 심지어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MDPI 『Religions』 홈페이지 화면이다. 

400개 저널 출판사를 ‘MDPI’로 통째 깎아내리는 현상

그래서 우리는 저명 학술 데이터베이스의 등재 리스트를 신뢰하는 것 아닌가? 예를 들어, Web of Science Core Collection의 등재지 선정 및 평가 기준은 엄격하고, 일관적이고, 광범위하고, 깊고, 체계적이고, 전문적이고 그리고 공정하다. 물론 적어도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말이다.

특별히 필자가 속한 『Religions』 저널을 보면, 피어-리뷰가 항상 double-blind로 적절하게 이루어지고 있고, 때로는 분야별 저명 전통 저널보다 뛰어날 때가 있다. 어떤 때는 그 수위가 과해서 연구자들 간에 문제가 발생할 정도다. MDPI 『Religions』 저널은 종교학 분야에서 가장 광범위한 전문가 집단을 편집위원으로 모시고 있다. 종교사회학, 종교이론, 종교철학·신학, 불교 등 여러 분야에서 최고의 국제학자들이 논문을 기고하고 있다.

『Religions』는 SJR에서 종교학 분야 Q1저널이고 500여 개가 넘는 저명 저널 중 43위에 랭크하고 있다. 종교학 관련해서 이름만 대면 모두가 알 수 있을 학자들, 그리고 필자가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학자들, 대학 스승님, 훌륭한 동료 학자들이 멋진 연구물을 『Religions』지를 통해 공유해 왔다. 필자는 편집위원으로서 이를 항상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400여 개 다양한 분야의 저널을 보유한 출판사를 ‘MDPI’ 단일 이름으로 통째 깎아내리는 현상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필자가 봉사하고 있는 저널이 물론 완벽하지 않고 흠이 있다. 그런데 국내의 ‘MDPI 통째 논쟁’은 전문적이지도 과학적이지도 않고 그래서인지, 아주 고약하다. OA가 수반하는 효율성·투명성·접근성을 약탈의 근거로 단순 치환하는 것이 문제이다. 출판되어야 할 양질의 연구가 적절한 시기에 불필요한 어려움 없이 출판되는 것이 정상이고 단지 이를 불편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대한민국의 연구평가 문화나 체제(과하고 비현실적인 정량 평가, 연구 내용 자체보다 특정 등재 저널 선호)가 문제인 것이다.

오픈 액세스의 대표 격인 MDPI를 막연히 문제적 출판사 혹은 부실-약탈적 저널을 보유한 출판사라고 비판하는 연구자들에게 묻고 싶다. 2023년까지 총 26명의 노벨상 수상 학자들이 75편 이상의 연구물을 여러 MDPI 저널에 게재했다. 특별히 2023년에 분자생물학자 Katalin Karik, Drew Weissman, 그리고 물리학 Anne L'Huillier 교수가 대표적이다. 무엇이 약탈이고 누가 약탈적이고 그리고 그것을 평가할 수 있는 이가 대체 누구인가.

종교학 연구자로, 불합리하게 MDPI를 깎아내리는 이들로 인해 MDPI 『Religions』 저널과 이곳에서 옥고를 출간했던 연구자들이 피해를 보지 않았으면 한다. 또 이 저널에 투고를 고려하는 연구자들이 잘못된 비판에 망설이는 일은 없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편집위원으로서, 같은 연구자로서 작은 의견을 적어본다. 

이성청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MDPI 『Religions』 편집위원으로 활동해온 한편, 『Journal of Religion』(시카고대 출판부), 『Journal of Church & State』(옥스퍼드대 출판부) 등 전통적으로 종교학 분야에서 최고로 인정되는 학술지에도 논문을 게재해 왔다. 이런 점에서 최근의 오픈 액세스와 관련된 논쟁에 대해 공정한 견해를 제시할 수 있는 인문학자 중 한 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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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국 2024-03-13 17:06:54
MDPI의 문제점보다는 MDPI 에서 발행되고 있는 『Religions』에 대한 항변으로 들립니다.
보다 객관적이고 일반적인 측면에서 OA 저널은 문제점과 효용성을 논하였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