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7 15:55 (토)
어떻게 지내고 계세요? 
어떻게 지내고 계세요? 
  • 신희선
  • 승인 2024.03.04 11:4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딸깍발이_ 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신희선 숙명여대 교수

“특별법 거부권, 거부한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유가족은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삭발을 하고 규탄집회를 열었다. 같은 장소에서 신자유연대는 대통령을 지지한다며 태극기를 흔들며 맞불집회를 개최했다. 지난 1월, 대통령은 ‘10.29 이태원참사 진상규명과 재발방지 및 피해자 권리보장을 위한 특별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특조위의 편파적 조사”로 국가 예산이 낭비되고 정치적으로 이용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이태원 참사에 대한 윤석열 정부의 대응은 여러 이유를 들더라도, 측은지심의 부족이다. 특조위 조사는 이태원 참사로 인해 평온한 일상이 무너진 “시민들과 유가족들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 우리 사회가 함께 노력했다는 것을 확인하는 과정”이라는 호소에 귀를 기울이게 되는 요즘이다.

정치가 우리를 갈라놓고, 모욕하고, 타락시키고, 서로를 적으로 만들고 있다. 대립 양상이 극심해지고 있다. 현 정부의 편가르기식 행태와 권력에 속박된 미디어의 초점 없는 보도에 한국 정치가 타락하고 있다. 자신과 다른 진영과는 합리적인 대화가 작동하지 않고 있는 것이 현재 한국 정치의 현실이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인간이 있다고 했다. 고통받는 사람을 보면서 내게도 저런 일이 일어날 수 있어, 생각하는 사람과 내게는 절대 저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거야, 생각하는 사람. 첫 번째 유형의 사람들 덕분에 우리는 견디며 살고, 두 번째 유형의 사람들은 삶을 지옥으로 만든다.” 『어떻게 지내요』라는 시그리드 누네즈의 책을 읽으며 이 구절이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타자의 고통을 외면하며 사회적 문제에 무관심한 우리의 부끄러운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어떻게 지내요?(What are you going through)” 라는 말이 프랑스어로는 “무엇으로 고통받고 있나요?(Quel est ton tourment)”는 의미라고 한다. ‘어떻게 지내요?’ 간단히 안부를 묻는 이 인사 안에 이웃의 고통에 염려의 시선과 관심을 전하는 진정한 사랑이 있다며, ‘위대한 질문’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나와 다른 이들을 향한 온갖 혐오가 넘쳐나는 한국 사회에서 다들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앞으로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 묻게 된다. 한국 정치가 상대의 힘든 처지와 마음을 헤아리는 원초적인 공감능력이 부재한 것은 아닌지, 국민을 위하는 정치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새삼 질문을 던진다.

“함께 먹을 때 더 단단해진다.” 영화 「나의 올드 오크(The Old Oak)」에서 켄 로치 감독이 강조한 메시지다. 영국의 폐광촌에서 ‘올드 오크’ 라는 펍을 운영하는 ‘TJ’와 시리아 난민인 ‘야라’가족의 관계를 통해 마을 공동체가 분열되고 연민을 통해 화해하는 과정을 사실적인 서사로 보여준 이 영화에서, 개인적으로 특히 인상 깊었던 장면은 ‘TJ’가 버려진 공간을 개방해 공동 밥상을 차리고 음식을 나누어 먹는 모습이었다. 팍팍한 현실에 상처받은 약자들이 서로를 보듬고 위로하며 공동체성을 회복하라는, 울림처럼 느껴졌다.

서울 한 복판에서 할로윈 축제를 즐기던 이들의 참사를 제대로 규명하라는 사회적 목소리를 외면한 공권력에 대한 시민들의 용기와 저항, 연대를 생각해 본다. 한국사고와표현학회에서 올해 시작한 책모임 목요책방에서 ‘2월의 책’으로 함께 읽은『어떻게 지내요』를 통해 서로의 안부를 묻고 일상에서 나누는 인사말의 의미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에게 안부 인사를 드리고 싶은 요즘이다. “어떻게 지내고 계세요?”

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