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6 14:55 (금)
조선 문화를 품은 ‘땅’을 찾아서
조선 문화를 품은 ‘땅’을 찾아서
  • 박수진 기자
  • 승인 2006.11.02 15: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책 산책]『조선의 문화공간(전4권)』(이종묵 지음, 휴머니스트)

“아름다움은 절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 인하여 드러난다”는 조선후기 시인 張混의 말처럼 당대를 풍미했던 인물의 삶, 그들이 남긴 글을 통해 잊혀진 조선의 산과 땅과 천이 책 속에서 살아난다.

조선시대 87명의 정치가·문인·예술가들이 남긴 고서 속 글들을 좇으며 그들이 지은 집과, 살던 풍경과 발자취를 재현해 계간 ‘문헌과 해석’에 연재한 이종묵 서울대 교수가 연재글을 고치고 보태 네 권의 책으로 펴냈다. ‘조선시대 문인의 땅과 삶에 대한 문화사’라는 부제처럼 우리가 ‘땅’으로부터 어떻게 당대의 역사에 다다랐는지를 살필 수 있다.

조선 개국부터 사화로 사림이 유배를 떠나는 시기까지를 1권에, 선조대에서 광해군까지를 2권에, 광해군부터 인조때까지 17세기 사상계와 문화계를 호령한 명인들이 살던 땅을 3권에, 조선 후기 문화인들의 이야기를 4권에 담았다.

15세기 최고문벌 成任처럼 산수유람을 즐겨 집 안에 石假山을 세우고 못을 만드는 등 집안으로 혹은 도성 안으로 자연을 끌어들인 조선시대 선비들의 풍류가 드러나기도 하며, 유배로 혹은 세상에 지쳐 강호로 산으로 들어간 이들이 吟風弄月을 즐겼던 곳들이 소개된다. 이현보의 분천, 송순의 면앙정, 양사언의 감호 등이 그런 곳이다. 이황의 덕을 닮은 청량산과 태산벽립의 기상을 자랑하는 조식의 상징이 된 지리산도 다시 보인다.

풍경은 선인들의 글로 되살아난다. 충주시 이류면 토계리의 칼처럼 날카로이 솟아있는 바위산 劍巖은 기묘사화 이후 빈한해져 강호를 떠돌던 李  생의 마지막을 보내며 지은 글들로 예사롭지 않은 풍경이 되며, 여주시 금사면 이포 앞의 강은 김안국이 지은 ‘梨湖十六景’으로 달밤에 떠 있는 배, 안개 낀 나무, 도롱이를 입은 사람, 목동들이 부는 피리소리와 함께 완상하게 된다.

지금은 사라진 옛 정취에 대한 헛헛함도 느끼게 된다. 안견의 ‘몽유도원도’의 현실공간인 인왕산이 상명대와 도로와 집들이 가로지르는 오늘의 인왕산 아래 풍경과 겹쳐지며, 정선 그림에서 보이는 한강을 내려다보는 압구정의 한가로운 모습이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72동과 74동 사이 어드메임을 알게 된다. 비행기가 오르내리는 인천국제공항 자리는 조선시대에는 제비들이 둥지를 틀어 시인과 묵객들을 부르던 섬이었다.

저자는 산수화를 걸어놓고 상상으로 산수유람을 즐겼던 옛 사람들처럼 “아름다운 우리 땅에 대한 기억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10여년 작업한 결실이다”라며 책을 내놓는다. 책장 곳곳에 시원하게 펼쳐져 있는 작가 권태균의 사진이 읽는 맛을 더한다. 
 박수진 기자 namu@kyosu.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