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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연구자에게 불행히도 아기 낳기 좋은 시기는 없다”
“여성 연구자에게 불행히도 아기 낳기 좋은 시기는 없다”
  • 서나래
  • 승인 2024.03.06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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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 연구자로 가까스로 살아남기 ① 연구자의 생애주기와 출산1

지역의 중소도시를 시작으로, 서울에서 거리가 먼 순서대로 대학은 사라질 것이다. 흔히 이야기하는 “벚꽃이 피는 순서대로”다. 대학에서 교원을 꿈꾸고 있는 신진 연구자는 이런 미래에 좌절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신진 연구자들이 나부터 일상에서 인구절벽을 막아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아이를 낳아서 키울 수 있는 환경일까? 역설적이게도 전혀 그렇지 못하다. 오히려 신진 연구자일수록 불안한 미래와 연구 부담 때문에 결혼을 포기하거나 결혼을 했더라도 출산을 포기하고 있다. 불안한 미래는 남성 연구자나 여성 연구자에게 똑같이 주어진 현실이다. 하지만 출산을 선택한 여성 연구자에게는 더더욱 가혹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다.

이번 연재에서 나는 두 가지 이야기를 나눠보려고 한다. 하나는 왜 여성 연구자들이 출산이나 육아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지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지역의 대학은 현재 어떤 문제에 봉착하고 있는지에 관한 것이다. ‘아줌마 연구자로 가까스로 살아남기’라는 연재 제목은 양육과 연구로 저글링하며 살아가는 나의 이야기다.

지역의 많은 연구자들이 특히 여성 연구자들이 현실의 벽에 부딪혀 연구를 접고 있다. 이 연재를 통해 고군분투하는 신진 연구자의 생활을 생생하게 그려내는 한편, 익명의 신진 연구자들에게 진한 동지애를 전달하고 싶다. “우리, 살아서, 만나요.”

“힘들텐데 굳이…”라는 선배의 말이 자꾸 떠오르며
“굳이…”의 의미를 곱씹었다. 
이러니 여성 연구자 중에서 
비혼이나 딩크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 
과연 연구와 어린 아기 양육은 양립할 수 있는 것일까?  

바야흐로 대한민국 인구절벽 시대라고들 하는데 그 구체적인 모습은 우리 가까이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 동네에는 국·공립 유치원 2024학년도 원아모집 현수막이 여기저기 붙어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국·공립 유치원은 별도의 원아모집 홍보를 하지 않았다. 5년 전만 하더라도 국·공립 유치원에 당첨되어 아이를 입학시킨 학부모는 “대학 합격이 이런 느낌인가?”하며 좋아했었다.

국·공립 유치원 당첨이란 몇 년치 운을 한꺼번에 쏟아부을 만큼의 행운이라고 했는데, 요새는 그렇지 않다. 우리 동네 국·공립 유치원은 사실상 미달이라 유치원 선생님은 아는 학부모에게 유치원 좀 홍보해달라고 난리다.

한편, 내가 다닌 대학원 역시 신입학하려는 대학원생이 거의 없다고 한다. 이제 상당수의 대학이 문을 닫을 것이 자명한데, 학문을 계속하겠다고 인문사회 대학원에 입학하는 것은 꽤나 큰 부담이다. 대학원을 지원해놓고 떨어질까 조마조마 결과를 기다렸던 나로서는 그 시절이 아주 오래된 과거처럼 느껴졌다.

유치원과 대학원 미달 사태. 아이를 키우며 대학원을 다녔던 나는 유치원 원아가 부족한 현실도, 대학원생이 없는 현실도 모두 수긍이 간다. 그러면서 약 10년 전 대학원생 시절 나의 고민을 떠올리게 되었다. 

여성 연구자에게 임신과 출산, 양육은 언제나 걸림돌이 되었다. 이 그림은 인공지능으로 가공한 이미지다. 이미지=DALL·E3

양육과 연구는 양립할 수 있을까

아이 양육과 연구는 대체 양립할 수 있는 일인가? 나는 직장을 다니다가 대학원과 학계의 실상을 잘 몰랐기 때문에 무식하게(?) 박사과정을 시작했다.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이른바 잘 나가는 여성 연구자는 대개 비혼이거나 돌싱이거나 아니면 혼인은 했지만 아이를 갖지 않는 소위 딩크였다. 

박사과정을 진학하는 시기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만 대체로는 20대 중후반에서 30대 초중반 정도다. 박사과정을 진학한 여성이 임신과 출산을 결심했다면 그 시기 역시 비슷할 것이다. 내가 기혼인 상태로 대학원을 진학하자 많은 선배 연구자들이 나를 보며 출산을 할 계획이 있냐, 그렇다면 언제 할 것인지 물었다.

처음에는 이 질문이 매우 불쾌하게 느껴졌다. 남의 사생활에 왜 참견을 하고 난리야. 남이 애를 낳든 말든, 뭔 상관이야. 이런 생각에 짜증이 올라왔는데 몇 달이 지나지 않아서 이것은 ‘전략’이 필요한 영역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박사과정 수료부터 박사학위 취득, 그리고 취업까지 갈 길이 구 만리인데 여성 연구자에게 임신과 출산과 양육은 언제나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었다. 그 걸림돌을 기어이 떠안을 것이라면 가장 덜 성가신 방향으로 미리 조정해놓아야 한다.

메리 앤 메이슨 외 2인이 쓴 『아이는 얼마나 중요한가』라는 책은 연구와 육아의 양립을 염두하는 여성 연구자를 위해 이러한 결론을 내놓고 말았다. “불행히도 아이를 낳기 좋은 시기는 없다.” 아이를 낳기 좋은 시기는 없지만 가장 나쁜 시기는 피해야했다. 물론 풀타임 베이비시터를 고용할 수 있을만큼 경제적으로 풍족하거나 아이의 양육을 헌신적으로 맡아줄 보조 양육자, 즉 친정어머니 등이 있는 경우는 좀 예외일 수 있겠다. 

‘아이는 언제 낳는 게 좋은지’ 물어보고 다녔다

십수 년 전에는 20대 여성이 출산과 양육을 모두 마친 경우도 있었으나 이제 그 시절은 도시 전설처럼 남았다. 최근 추세로는 배우자가 있는 여성은 30대 시기에 출산과 육아를 동시에 하는데, 이는 박사과정 혹은 신규 박사로 활동하는 시기와 겹치게 되는 것이다. 한번 사는 인생, 아이는 낳아보기로 결심한 나는 여자 선배들에게 “아이는 언제 낳는 것이 좋은지” 물어보고 다녔다. 지난 번에 선배들이 아이를 낳을 생각이 있는지 물을 때마다 매우 귀찮은 표정을 짓고는 했는데 이제는 상황이 바뀐 것이다.

박사과정 중에 아이를 낳는 것이 나은지, 박사학위를 받은 후에 아이를 낳는 것이 나은지 도통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아이는 하늘이 점지해준 선물이라는 순진한 믿음을 받아들이기에는 우리 삶이 너무나 팍팍했다. 우리나라의 산업화가 한참일 때 가족계획은 몇 명을 낳을 것인가가 문제였다면, 현재 박사과정생의 가족계획은 언제 낳을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그때마다 선배들은 “아이를 돌봐줄 어머니가 계신지”부터 되물었다. 아이를 봐주실 수 있는 분이 아무도 없다고 하자 “힘들텐데 굳이…”라며 말끝을 흐리는 선배도 있었다. “굳이”라는 말은 많은 내용을 함축하고 있었다. 현재 박사과정만 해도 험난한데 왜 또 고생을 자처하냐는 소리이기도 했고, 꼭 아이가 있어야할까 하는 말이기도 했다. 누군가에게는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일을 가지고 나는 욕심 맞게 다 하려고 왜 이러고 있는가, 자책감에 휩싸이기도 했다.

“힘들텐데 굳이…” 선배의 말이 계속 떠올랐다

여러 선배들의 조언을 종합한 결과, 하나의 결론에 도달하였다. 신생아와 박사학위 모두 상당한 시간적 투자와 심정적 헌신, 그리고 밤샘노동을 요하는데 결코 동시에 하지 말 것. 특히 박사학위 후 2~3년 간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논문을 많이 써야할 시기인데 이때, 갓난 아기를 등에 업고 논문을 쓰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다.

이번 생은 처음인데, 초보 엄마와 초보 박사에 부과되는 업무를 동시에 해낼 자신이 없었다. 초인적인 인내력으로 이 두 가지를 동시에 해내는 경우도 간혹 있지만, 몇 년 내에 번아웃이나 중병을 얻을 확률이 높으니 되도록이면 피하라는 소리마저 들었다.   

그렇다면 박사과정 코스웍을 수료하고나서 박사논문을 쓰기 직전, 그 기간 중에 출산을 하는 편이 가장 나아보였다. 나는 가정경제는 전혀 계획적으로 꾸리지 못하는 사람이지만, 앞으로의 커리어(?)를 위해 계획적으로 출산을 했다.

그러나 아기를 낳고보니, 이것은 또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출산 전에는 부부가 동등한 육아를 한다고 했지만 정작 아기를 낳고 보니 생각보다 엄마에게 부과된 일들이 많았다. 출산보다 양육은 더더욱 어려웠으며 갓난 아기를 돌보는 일은 논문 쓰기보다 훨씬 고통스러웠다. “힘들텐데 굳이…”라는 선배의 말이 자꾸 떠오르며 “굳이…”의 의미를 곱씹었다. 이러니 여성 연구자 중에서 비혼이나 딩크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 과연 연구와 어린 아기 양육은 양립할 수 있는 것일까?  

서나래 한국교원대 한국근대교육사연구센터 전임연구원
대학에서 역사와 문학을 전공했다. 잠시 중등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한 적 있다. 연세대 대학원 교육학과에서 「교실 속 이방인들: 주한 미 평화봉사단의 교육 활동과 그 영향(1966~1981)」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세아라는 필명으로 한국 거주 외국인들의 이야기를 글자로 옮겨 책을 두어권 낸 바 있다. 현재 사범대학에서 교사를 꿈꾸는 학생을 대상으로 ‘교육철학 및 교육사’라는 교직 과목을 가르치며 한국 현대교육사를 연구하는 공부 노동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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