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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 이끄는 주인공 여성…양성평등은 여전히 멀어
서사 이끄는 주인공 여성…양성평등은 여전히 멀어
  • 김소임
  • 승인 2024.02.29 09: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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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말하다_『여성, 영화의 중심에 서다: 노예에서 AI까지―페미니즘으로 영화 읽기』 김소임 외 7인 | 304쪽 | 도서출판 동인

15편 영화, 시대·사회 속 페미니즘
다층적 지향점과 선구자의 비전 제시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이 높은 매일을 살아가고 있다. 페미니즘을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지만 사회·문화·경제·정치 등 삶의 전 영역에 있어서 양성평등을 지향하고, 성차별과 불평등을 종식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것에는 다 동의할 것이다. 이 책은 페미니즘이 갖는 다층적 지향점을 제시하고, 지난했던 발전 과정 및 혜안을 가졌던 선구자들의 비전을 나누고자 하는 마음에서 기획됐다. 이 광대한 작업에 대중매체인 영화가 큰 도움이 된다. 

영화를 페미니즘 시각으로 읽는 방법은 다양하다. 이론을 활용한 일부 필자도 있으나 이 책의 주된 목표는 영화를 통해서 시대와 사회 속에 나타난 페미니즘의 지향점과 의미를 더 잘 이해하도록 하는 것이다. 총 15편의 영화를 다루고 있는 이 책은 크게 영화를 ‘시대 속 페미니즘’과 ‘사회 속 페미니즘’으로 분류했다. 

‘시대 속 페미니즘’의 경우, 시대상을 설명하고 위대한 여성들이 시대 안에서 희생당하면서도 정면 도전해 혁신과 변혁을 성취해 가는 과정에 주목하였다. 더불어 영화 속 인물과 사건이 페미니즘 발전과정에서 갖는 의미를 들여다본다. 필자의 「해리엇」 분석은 미국의 탈출 노예, 해리엇의 영웅성이 영화에서 어떻게 표출되고 있는지를 분석한다. 이형숙 이화여대 교수(영어영문학부)가 쓴 「디 아워스」 분석은 1920∼1940년대 영국, 1950년대 미국의 소도시, 1990년대 뉴욕을 배경으로 가부장제에 갇힌 여성들에 주목하며 그 원인을 분석한다. 이형식 건국대학교 명예교수(현대영미희곡)이 쓴 「더 헬프」와 「히든 피겨스」 분석은 수학·과학 분야에서조차 억압과 차별을 경험한 흑인 여성들의 분투기를 시대 배경과 함께 분석한다.

이희원 서울과기대 명예교수(영미드라마·셰익스피어)의 「거룩한 분노」 분석은 1970년대까지도 참정권을 갖지 못했던 스위스 시골 마을의 여성들이 참정권뿐 아니라 삶과 성에 대한 주체성을 확보하는 이야기에 주목한다. 필자는 「빌리 진 킹: 세기의 대결」, 「세상을 바꾼 변호인」, 「아이 엠 우먼」을 통해 여성들이 법과 법조계, 스포츠, 예술문화에 남아있던 성차별과 맞서 싸우고 극복해 가는 과정을 추적한다.  

‘사회 속 페미니즘’에서는 영국·미국·한국·중국이라는 각기 다른 사회 안에서도 외양은 다르지만 여전히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는 남성 위주의 가치관과 법, 관습과 제도 안에서 존엄을 찾기 위한 여성들의 다양한 내적·외적 몸부림을 담고 있다. 

정혜진 경희대 교수(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의 「프라미싱 영 우먼」 분석은 미국 엘리트 집단에서도 남성의 성폭력에 대해 관용적 태도를 보이는 현상을 다각도로 조명하는 것에 주목한다. 이형식 명예교수가 쓴 「벌새」와 「세 자매」 분석은 1990년대 여중생과 가정폭력의 희생자인 세 자매의 가부장제 생존기를 가부장적 관습을 배경으로 분석한다. 최영희 서울과기대 교수(문예창작학과)의 「미씽: 사라진 여자」와 「너를 찾았다(找到你)」 분석은 한국과 중국에 동일하게 자리한 가부장제와 여성 연대를 탐색한다. 정문영 계명대 명예교수(영미희곡·영화평론가)의 「사랑 후의 두 여자」 분석이 가부장적 관계를 넘어선 새로운 인간관계의 가능성을 모색한다면, 김다산 서울대 강사(영어영문학과)는 영화 「그녀」를 통해 AI와 챗봇, 섹스돌과 더불어 살아가게 될 21세기 페미니즘의 방향성을 고민하게 한다.

대부분이 미국 중심의 서구 영화이지만 이 책에는 한국 영화 3편, 중국 영화 1편이 포함됐다. 이 4편의 영화를 통해서는 보편적으로 페미니즘이 지향하고 있는 비전에 대한 성찰뿐 아니라 아시아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여성의 상황, 갈등과 극복의 과정이 드러날 것이다. 

영화사 전반기에 주변부에 위치해서 남성을 돋보이게 하던 여성들이 이제는 영화의 중심이 되어 서사를 이끌어 가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여전히 여성의 현주소가 양성평등의 고지에 올라와 있지 않음을 보여준다. 이 책에 담긴 15편의 영화를 통해 생각하고, 느끼고, 공감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김소임
건국대 영어문화학과 교수·전 현대영미드라마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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