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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왕
대마왕
  • 최승우
  • 승인 2024.02.06 15: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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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규동 지음 | 새움출판사 | 224쪽

“검색이라도 해볼까? 팔기는 하는지, 얼마에 파는지”

    나는 돼지에게 맥주를 건넨 후 그의 옆에 앉았어.
    “야, 그럼 우리 대학은 왜 다녔냐?”
    “이렇게 안 살려고. 경제적으로 자유롭고 주말에는 출근 안 해도 되는.”
    “하긴. 나도 9시에 출근해서 6시에 퇴근하는 삶이 꿈이야.” 

이 소설은 대학 졸업을 앞둔 한 청년이 취업에 실패하며 우연히 접한 대마의 세계에 빠져드는 이야기이다. 주인공인 ‘나’와 절친한 친구인 ‘돼지’는 금수저 친구인 ‘아티스트’의 방에서 우연히 대마를 접한다. 나와 돼지는 신세계를 경험한 뒤 그 황홀한 세계에 탐닉하다가, 공짜로 피울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하고, 결국 막대한 이익을 남기는 범죄 사업에까지 손을 뻗는다.

소설은 그들이 어떻게 대마의 늪에 빠져드는지, 왜 그토록 탐닉하는지, 왜 멈출 수 없었는지, 그들의 내면과 상황이 생생하고 조마조마하게 펼쳐진다. 
소설을 읽다 보면 마치 내가 직접 대마를 피워보는 것 같은 독한 경험을 하게 될 수도 있고, 이래서 사람들이 그 세계에 빠지는구나, 짐작할 수 있다.

또한 20대 청년들의 고통도 절실하게 다가온다. 
주인공인 ‘나’와 ‘돼지’는 수많은 면접을 보지만 늘 거부당한다. “아직 앉으라고 말 안 했는데요?” “왜 서빙하는 사람을 자신보다 낮은 계급의 생물체로 인식하는 거지?” 등, 스펙 없는 청춘들을 무시하는 면접관들이나 존중 없는 아르바이트 현장에 대한 장면들은 마음을 아프게 한다. 또한 무엇을 하며 살고 싶은지조차 생각하지 못하는, 아니 아예 포기한 그들이 안타까워진다.

9시에 출근해서 6시에 퇴근하는 꿈이 그렇게 과한 것이었을까. "시작은 무더운 여름이었어"로 출발한 나의 선택은 어디로 흐르게 될까. 마지막 장인 ‘내 삶의 마지막 파도에 대한 이야기’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반전이 일어난다.
감각적이고 무심한 듯한 문장, 빠른 전개는, 한 번 이 책을 들면 절대로 빠져나올 수 없는 매력이다.
   

     9시에 출근해서 6시에 퇴근하는 게 꿈이었던 삶
     그는 왜 대마에 손을 대게 되었을까?

사람들은 보통 마약이나 약물에 중독된 사람들은 특별한 사람들일 거라고 생각한다.
뭔가 결핍되었거나, 아니면 어느 부분에서 넘치는 사람들일 거라고. 어떤 면에서는 맞는 말이다. 적어도 대마나 마약, 중독성 약물들이 세상에 널려 있기 전에는 말이다.
그런데 이제, “요새는 피자 한 판 값으로도 구할 수 있는 약들이 많아요”라는 소설 속 대목처럼 널린 게 약물이다. 그만큼 누구나 손만 뻗으면 그 세계를 쉽게 접할 수 있고 빠져들 수 있다.

소설 속 인물들은 말 그대로 평범한 청년들이었다. 주인공인 ‘나’와 그의 절친인 ‘돼지’가 대마에 빠져든 계기는 우연이고, 호기심이었다. 그 다음은 경제적인 이유이며, 결국에는 브레이크를 밟을 수 없는 욕망이었다.

    청년실업과 마약에 관한 이야기들이 자주 신문에 오르내린다. 가끔 기사를 읽으며 생각에        잠긴다. 아직도 생에 대해 불꽃 같은 희망을 품은 청춘들이 있기는 한걸까?

    그래프와 통계들은 마약에 빠진 청춘들을 숫자로 보여주었다. 아무래도 숫자와 그래프는 공감      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중독된 그들의 이야기 속으로 직접 들어가보기로 했다.
    왜 사람들이 그 세계에 탐닉하는지 말이다.   _ 작가의 말 중에서

    
“시작은 무더운 여름”이었던 그들의 호기심 어린 선택, 그리고 경제적인 자립을 꿈꾸기 어려운 현실 도피로 시작된 대마 흡연은 상상도 못한 곳으로 그들을 몰고 간다.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들이지만, 그것은 결국 사람과 돈을 바꾼 결과였다.
가장 소중한 것들은 ‘쓰임’이라는 편리하고 하잘 것 없는 이유 아래 모두 제거된다.
결국 약에 취해 거울 속에서 문득 본 ‘괴물’ 같은 자신만이 남았을 뿐이다.

수많은 인터뷰에 기반한 이 소설은 ‘약물이 오고 가는 어두운 세계’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또한 괴물처럼 변해가는 청년의 모습은 욕망과 탐욕을 멈추기 어려운, 갈등하는 현대인의 얼굴이기도 하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책 속으로 

자취방을 소유한 친구의 별명은 돼지였어. 나와는 고등학교 때부터 친했지. 
나와 같이 졸업을 앞둔 4학년이었어. 돼지 또한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다는 것. 
그는 이탈리안 식당에서 접시를 나르는 일을 하고 있었어. 

하루는 아주 열 받은 채로 집의 현관을 열고 들어왔어.
“아 진짜 이 짓거리 그냥 때려치울까?”
“왜? 무슨 일 있었어? 때려치우면 월세랑 등록금은?”
“내가 식당에 앞치마를 두르고 돌아다니는 이유는 돈 벌기 위해서가 다잖아. 
그 새끼들 식탁에 음식을 전달하는 이유는 그것뿐이잖아?”
“그렇지. 그게 전부지.”
“그런데 왜 이 나라의 손님들은 서빙을 하는 사람을 
자신보다 낮은 계급의 생물체로 인식하는 거지? 십새끼들이야 정말.”  - 10쪽

아티스트라고 놀림 받는 금수저 친구는 우리를 위해 피자를 주문했다고 말했어. 
나는 피자가 올 때까지 집 안을 구경했지. 주방의 선반에는 어떤 약초가 가득 담긴 병이 있었어. 
나는 예술가한테 물었지.
“이건 뭐야?”
“그거? 대마초. 여기선 합법이야. 다들 해. 술보다 훨씬 많이 하지, 사람들이.”
호기심이 가장 먼저 생겼어. 다시 침대로 돌아온 나의 앞에는 컴퓨터가 놓인 테이블이 있었어. 예술가는 그곳에 앉아 무언가를 만들기 시작했지. 
병에서 약초를 꺼내 그것들을 갈기 시작했어.  -  20쪽

“쟤네한테 10만 원만 받아도 우리는 우리가 피우는 걸 무료로 사는 거라니까?” 
“그러면 한 번 살 때 20그램씩 사자고?”
“응. 우리는 매번 공짜로 피우니까 좋고, 쟤네들은 평소보다 싼 가격으로 피우니까 
좋은 거지.” -   61쪽

그의 방식은 앤디와 같았어. 텔레그램을 통해 연락했고 비트코인을 이용해 송금했지. 
그러나 앤디와 다른 부분이 있었지. 그는 던지기 수법을 이용했어. 
그는 우리가 있는 지역을 지나는 시간을 알려주더군. 마치 24시간 
다른 동네들을 순찰하듯 계속해서 돌아다녔어. 
그가 말한 장소에 9시 15분에 도착했을 때, 그곳엔 아무것도 없더군. 
사기를 당한 거지. - 77쪽

나는 창고의 뒤편 드럼통 옆에 있는 밧줄을 발견했어. 그동안 쌓인 분노가 폭발하는 것을 
느꼈어. 마음속 나의 분노를 담은 그릇에 금이 가고 있었지. 나를 무시했던 면접관들, 
나를 체포하고 나에게 망신을 준 형사, 나를 바보 취급하던 전 직장의 상사들, 
나의 연락을 늘 무시하는 윤아, 나에게 아무런 관심도 없던 학교의 교수들, 부모. 
모르겠어. 모든 분노가 스쳐 지나갔어.- 81쪽

“그분이 지금 필리핀에 계시거든요. 근데 대마만 관리하는 게 아니에요. 
모든 아편류 계열 약들을 다 한국으로 보내죠. 저하고 딜을 했어요. 대마는 당신한테 다 주고 나머지 뽕이든 뭐든 그쪽은 제가 다 수입하는 거로.”
“메스암페타민이나 코카인 분야는 진상들이 많을 텐데 괜찮아요?”
“세상이 변하고 있어요. 당신이 파는 대마가 금값이죠? 그런데 요새는 피자 한 판 값으로도 구할 수 있는 약들이 많아요.” -  101쪽

나는 그들에게 사회에서 나라는 존재를 완전히 사라지게 할 수 있냐는 질문을 했어. 
직원은 나에게 말했지.
“요즘 그런 의뢰가 존나 많이 들어와요. 사회적으로 자살하는 거죠. 
요새는 본인 자신을 없애달라는 의뢰가 더 많이 들어와요.”  - 161쪽

나는 이야기를 이어가던 중 그의 눈 옆의 상처를 바라보았어. 그의 상처는 
그것만이 아니었겠지. 나는 그에게 말했어.
“당신이 겪어온 것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죠.”
“당신보다 더 슬픈 사람이 있다고 해서 당신이 슬플 자격이 없는 건 아니죠. 
게다가 누가 알아요. 술에 취한 아버지에게 폭력을 당한 당신의 눈물이 
총소리에 귀를 막는 나의 눈물보다 더욱 진했을지요.”  - 209쪽

저자 소개

박규동

세상이 괴물 같다. 괴물 같은 인간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
왜 사람들은 괴물이 되어가는 것일까?
그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뉴스 면을 도배하는 우리 시대 청년 실업문제와 마약문제,
그 이야기를 숫자와 그래프가 아닌, 실제 사람 이야기로 들려주고 싶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도 다녀보았지만 내가 괴물이 되어가는 것 같아 
모든 걸 접고 이 땅을 떠나보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그래도 내가 발 딛고 살 땅은 이곳이라는 생각에 
돌아와 글을 쓰고 있다. 아니, 글만 쓰고 있다. 
내가 괴물이 되지 않기 위해, 나의 친구들이 괴물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최승우 기자 kantmani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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