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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서울에 의한, 지방을 위한
서울의, 서울에 의한, 지방을 위한
  • 손화철
  • 승인 2024.02.07 09: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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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_ 손화철 논설위원 / 한동대 글로벌리더십학부 교수·기술철학

 

손화철 논설위원

우리나라 대학 정책의 결정자나 대학 총장의 주소지는 어디일까? 알아낼 방법은 없지만, 절반 이상이 서울이나 경기도의 부자 지역일 것이다. 그들의 자녀는 어디에서 대학을 다녔거나, 다니거나, 다니게 될까? 그 대답에 미국을 더하면 된다. 지방 대학의 교수와 그 자녀도 상당수는 서울을 주요 거주지로 두고 있을 것이다.

거주 이전의 자유가 있고 교통이 발달한 민주 국가에서 어디 사는지는 중요하지 않고, 비난할 일은 더더욱 아니다. 그러나 지방 소멸과 지방 대학의 위기를 책상 위가 아닌 자신의 몸으로 체험하는 이가 생각만큼 많지 않다는 것은 좀 서글프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정책의 칼자루를 쥐고 흔드는 사람이나 칼날을 붙들고 떨고 있는 사람이나 결국 그 문제의 장소를 심리적으로 떠나 있는 셈이니 말이다.

정책 수립자가 지방과 지방 대학의 문제를 이런저런 통계 수치와 상상력을 동원해서 파악하다보면 현실을 실감하기는 힘들다. 본인이나 자신의 자녀가 그곳에 가서 살고 싶다는 생각도 그럴 가능성도 없으니 대책이 막연한 건 당연하다.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다지만, 가서 들리는 건 변명과 아쉬운 소리고, 사실 그마저도 잘 안 들린다. ‘지방’과 ‘무능력’ 사이의 오묘한 연관성이 언제나 사고의 기저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지역마다 맥락과 상황이 다르다는 것은 당연히 논외다. 대한민국엔 서울과 지방이 있을 뿐이다.

지방 대학의 교수와 학생이 지역에 뿌리 내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현실이다. 많은 지방 대학 캠퍼스가 금요일이 되면 텅텅 비고 대신 KTX가 꽉꽉 찬다. 주중에 지역에 체류하는 것도 학생은 졸업할 때까지, 교수는 퇴직할 때까지만이다. 대학을 중심으로 지역을 살리겠다는 복안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지만, 지방 대학이 타지역 출신, 아니 아예 실질적으로 타지역에 사는 사람이 가장 많은 조직이라는 사실을 고려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장관님, 지방 대학 교수는 지방에 살라는 법을 만들라는 게 아닙니다!)

전국 대학이 서열화된 상황에서 대다수 지방의 시민은 지역의 대학에 관심이나 애정이 크지 않다. 학생이 드나들며 방값, 밥값, 술값을 내니 없어지면 섭섭하겠지만, 교수는 나의 이웃이 아니고 내 자식도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가길 원하니 내 지역의 대학은 일종의 필요악이다.

지역과 대학이 피차에 기대도 애정도 없는 상황에서 지역의 발전과 지방 대학의 위기를 한 주머니에 넣고 해결하려는 시도가 과연 현실적인가? 혁신 아이템을 찾지 못해 지역이 쇠락하고 지방대학이 망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면서 무작정 지방정부와 대학이 뭔가를 함께 해보라는 요구는 게으르고 피상적이다.

‘지방을 위한’ 일을 ‘서울의’ 힘과 ‘서울에 의한’ 기획을 하는 게 문제다. 지방정부, 지역민과 대학이 서울의 지시를 받드는 대신 서로의 성공을 자기의 일로 기뻐하고 서로 도울 궁리를 하도록 유도할 방법은 없을까.

예를 들어 교수가 한국연구재단의 연구비를 수주하면 대학에 간접비를 따로 배정하듯이, 대학이 정부 지원을 받으면 지역에 혜택을 주고 지역이 사업에 선정되거나 투자를 유치하면 대학을 지원하는 방식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지역 상생을 강요하기 전에 그런 노력이 좀 더 자발적이고 자율적이 되도록 할 고민이 필요하다. 

손화철 논설위원
한동대 글로벌리더십학부 교수·기술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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