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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 추억 소환하는 촉매제…자유롭게 에세이로 풀어내다
‘김광석’ 추억 소환하는 촉매제…자유롭게 에세이로 풀어내다
  • 최승우
  • 승인 2024.01.30 17: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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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_『자유롭게 김광석 이야기』 김재호 지음 | 부크크(bookk) | 108쪽

필자의 사춘기 시절은 일종의 르네상스와도 같았다. 사상과 문화 예술이 총체적으로 응집된 시기였다. 삼켜도 삼켜도 허기진 아귀 지옥처럼 게걸스레 스펀지처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부친은 적어도 취향에서만큼은 김일성과 호메이니를 섞은 분이셨는데, 전방위적으로 억압하고 통제하려 드셨다. 르네상스가 귀족들의 후원으로 자유로이 화려하게 만개했다면 반대로 필자의 르네상스는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위협과 불안 속에서 성장해야 했다. 바람 앞의 촛불 같았다. 그러나 ‘어떤 악랄한 독재 정권도 머리속 생각마저 통제할 수는 없다’는 말처럼 부친이 귀에 박힌 리시버 속 음악까지 통제하실 수는 없었다. 때문에 소니 워크맨은 해방과 자유의 상징이었다. 개인적으로 소니사의 사장 모리타 아키오에게 감사한 마음이 듦과 동시에 일정 부분 정서적인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비틀즈·로이 부케넌·핑크 플로이드·도어즈·지미 핸드릭스·오아시스·닐 영·너바나·퀸·재니스 조플린·에릭 클랩튼 등 수많은 기라성 같은 고전적 거장들이 내 귀를 거쳤다. 필자의 ‘아비투스’의 기원은 책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소설가 장정일을 위시한 현대문학의 영향이었다. 혹여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또래들처럼 god와 핑클을 듣고 콘서트장에서 알록달록한 형광봉을 흔들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문화 예술 취향이 자체적으로 발아했다는 것은 굳이 역사로 따지자면 한국 천주교 사(史)와 비슷한 면이 있다. 기존 서구 가톨릭의 전파가 피지배국에 대한 식민 침탈과 궤를 같이 했지만, 한국의 천주교는 『천주실의』를 통해 한반도에서 자생했기 때문이다. 교황청이 한국 천주교를 기특해하며 편애하는 이유 중 하나다.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졌다. 어찌 됐건 ses나 핑클, god 같은 1세대 아이돌들이 대중음악을 종횡무진 지배하던 시절 자폐적 취향은 곧 고독을 예고하는 서막이었다. 같이 공유할 대상이 없어 음악을, 마치 난수표를 작성하는 무장공비마냥 오롯이 리시버를 끼고 홀로 들었던 기억이 난다. 

오롯이 빛나던 김광석

서구 음악을 오래 듣다 보니 어느 순간 자연스레 우리의 음악이 궁금해졌다. 필자가 발을 디디고 사는 이 땅의 음악가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떤 음악을 만들었는가 그제서야 자문하게 된 것이다. 관심을 외부에서 내부로 유턴한 계기였다. 첫 시작을 야심 차게 ‘신중현과 엽전들’로 끊었다. 그리고 한대수·산울림·들국화·김민기·신촌블루스를 거쳐 언니네 이발관을 위시한 1세대 인디밴드로 대단원의 막을 마무리했다. 청음을 했던 그 무수한 아티스트들 중에 오롯이 빛나던 김광석도 있었다. 

영원한 가객이라는 그의 음악을 같이 공유한 최초의 인물은 아마 전교조 출신 담임 선생님이었을 것이다. 그녀와 함께 있음으로써 최초의 소속감과 행복감을 느꼈던 것 같다. 아마 내 또래이기만 했었어도 어쩌면 사랑을 느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나만한 아이가 딸린 어머니뻘이었다. 

김광석 다시부르기 2집. 사진=위키백과

김광석을 생각하면 고색창연했던 모교의 풍경과 가을의 광화문이 떠오른다. 오래된 어쿠스틱 기타 같은 그의 음색은 서정적인 정서를 가져다준다. 「간장 두 종지」라는 글로 비웃음거리가 됐던 조선일보 한현우 논설위원은 “요새 아이들의 정서적 결핍은 일렉트로닉같은 전자음악의 영향이 크기 때문에 아날로그적인 록 음악을 듣는 것이 치유의 길”이라고 했다. 물론 논리적 비약에 가까운 농담이겠지만 비판 없이 그의 의견만을 묵묵히 따르자면 아마 ‘김광석’은 완벽한 치료제일 것이다. 그야말로 천연의 음악이기 때문이다. 하기사 모든 포크는 아날로그에 가깝다. 안온한 사색, 그리고 인간에 대한 연민까지 담겨있는 김광석은 필자에게 힘든 사춘기를 버티게 해준 ‘큰 삼촌’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너무 오래, 너무 많이 들었던 탓일까? 머지않아 물려 버렸다. 심장을 울리던 음색과 하모니카 소리는 어느새 밋밋한 구닥다리 같은 느낌마저 감돌게 했다. 그렇게 닫아두었고 까맣게 잊어버리게 됐다.

짧지만 알찬 내용들이 인상적

얼마나 흘렀을까. 어느 날, 우연히 과학저술가인 김재호 작가가 책 『자유롭게 김광석 이야기』를 출판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가 본업인 과학에서 벗어나 음악으로 외도를 했다니 작품이 몹시도 궁금했다. 그간 읽어왔던 저작들 대부분이 학술적 내용들이기 때문에 아카데믹한 색채가 옅어진 글은 어떨까 싶었다.  

책 분량은 대단히 얇고 여성용 핸드백에 들어갈 만큼 부담 없는 사이즈다.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김재호식(式) 글쓰기의 전형인, 짧지만 알찬 내용들이 인상적이다. 저자의 김광석에 대한 애정과 충실한 자료 분석들이 담겨있어 읽기에 부담이 없고 주의를 끈다. 필자 역시 오래전 묵혀뒀던 김광석에 대한 추억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일종의 촉매제처럼 느껴졌다. 김광석이 세상을 떴을 때, 본인은 초등학교 4학년이었다. 어떤 감흥을 느끼기에는 너무 어렸지만 이 책의 저자에게는 필시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느낌이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는 김광석과 동세대였기 때문이다. 또한 민중음악 동아리에서도 활동했던 전적이 있기에 그 충격은 대단했을 것이다.  

책의 내용은 별다른 막힘없이 수월하게 읽혔다. 다행스럽게도 인명 대부분이 일찍이 알던 인물들이었고 심지어 필자는 본문에서 인용된 음악 평론가 박준흠의 첫 저서이자 초판본인 『이 땅에서 음악을 한다는 것은』이라는 책을 소장하고 있기까지 하다. 색다른 느낌이나 거슬리는 부분 없이 마치 김광석의 노래처럼 편안하고 부드러운 문체라는 점에서 어쩌면 김광석의 정신을 이어받은 책이 아닐까란 생각도 들 정도였다. 저자는 작가와 음악평론가의 입을 빌어 김광석을 분석한다. 또한 김광석 거리와 그를 다룬 뮤지컬과 콘서트를 조망한다. 더불어 개인적 체험까지 덧붙여 전방위적인 김광석 그리기에 나선다.

커트 코베인과 제프 버클리 그리고 김광석

어느 시대라고 그러지 않겠냐만 1990년대 역시 격동의 시대였다. 근 70년을 지탱해오던, 영원할 것만 같던 구소련이 무너졌다. 우리나라 역시 군부정권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최초의 문민정부가 들어섰다. 마이클 잭슨의 광풍이 몰아치는 가운데 커트 코베인이 자살했다. 레너드 코헨의 원곡 ‘할렐루야’를 커버했던 제프 버클리가 자살했다. 그리고 끝내는 김광석도 저세상으로 떠났다. 유독 영웅들의 죽음이 많던 시대였다. 어쩌면 다른 의미의 세기말이었을지도 모른다. 

저자는 김광석 세대이지만 필자는 포스트 김광석 세대이다. 같은 대상을 두고 다른 시각이 존재할 터, 이는 마치 60년대에 비틀즈를 듣던 세대와 밀레니엄 세대가 듣는 비틀즈는 미묘하게 다른 느낌인 것과 비슷하다. 본인이 김광석을 접할 수 있었던 유일한 자료는 사후 영상뿐이다. 오래전 90년 대 초반 인디 가수가 오늘날의 오디션 프로그램에 비견되는 방송에 출연한 적이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곡 ‘오 왠지’로 유명한 정혜선이다. 독특한 음색이 담긴 열창에 당시 심사위원인 조영남은 조롱과 독설을 담긴 혹평을 내린다. 웃음거리로 만들길 주저하지 않았다. 반면 김광석은 아주 애정 어린 시선으로 “매력적이고 독특한 감성이 듣는 이를 매료시킨다”고 표현했다. 훗날 김광석의 판단이 정확히 옳았다는 것이 입증됐다. 정혜선은 인디 포크의 대모가 되었으며 현재까지 왕성하게 활동하는 현역 가수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시적 감수성이 풍부한 그의 인간애는 존경심마저 들게 한다. “참 따뜻한 사람이었구나. 그의 죽음이 너무도 안타깝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왠지 모르지만 김광석의 표정에는 처연함이 묻어난다. 필자는 쓸쓸함과 처연함이야말로 예술의 정수라고 생각하기에(누군가에게는 청승에 지나지 않을) 김광석 풍의 느낌은 가히 예술적이다. 처연함의 상징은 최백호인데, 김광석이 만약 살아있었다면 아마 그의 아성을 무너뜨리고도 남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유년기 추억 소환하는 김광석의 노래들

필자가 제일 좋아하는 김광석의 곡은 ‘이등병의 편지’나 ‘일어나’,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그녀가 처음 울던 날’이 아닌 노영심과 함께 협연했던 ‘너에게’다. 그 노래를 들으면 아름다웠던 유년기가 떠오른다. 부드러운 이불, 곰 인형의 냄새, 낡은 목조 2층 계단 같은 것들 말이다. 한때 젊디 젊었던 엄마와 함께 낮잠을 자던 어린 내가 생각난다. 동심의 세계를 유영하는 꿈나라의 중심에 김광석의 ‘너에게’가 있다. 마치 천국을 이끄는 맘씨 좋은 문지기 같다. 

‘김광석 다시 부르기’에 그려진 그의 얼굴은 웃는 것인지 우는 것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이처럼 역설적인 표정의 커버도 드물 것이다. 그는 대중들 앞에서 사랑을 노래했지만 내면은 고통과 절망으로 문드러져 썩어가는 중이었다. 항상 공연 말미에 “행복하세요.”라고 했던 저의엔 그 누구보다도 우울감과 불행이 도사려 있지 않았을까 추측할 뿐이다.

책 『자유롭게 김광석 이야기』에서의 자유는 중의적인 의미로 다가온다. ‘자유’로운 가객 김광석을, 저자가 ‘자유’롭게 에세이를 풀어냈다는 점에서 말이다. 필자는 이 책을 펼치며 근 20년 만에 김광석의 음악을 들었다. 그것은 김광석을 글과 음악으로 체화시키고자 하는 노력이었다. 후반부로 갈수록 감상이 극대화되며 안타까움 역시 밀려왔다. 그는 언제나 하모니카와 낡은 어쿠스틱 기타를 든 채 대중들과 호흡했다. 통렬하지만 애수어린 목소리로 심금을 울렸다. 난잡한 디지털 전자음이 덧칠된 요즘 음악에서는 도저히 찾아볼 수 없는 천연의 것이다. 이제는 너무 남발되어 의미를 잃은 ‘힐링’이라는 표현이 가장 어울리는 가수다.    

어쩌면 이 책은 ‘너무나 순수하고 아름다워, 아까웠던 인물에 대한 회고’적 성격이자 활자로 된 ‘헌정 앨범’이 아닐까 싶었다.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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