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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의지에 넘치는 가짜들이 만드는 곳”...최유안 작가의 ‘먼 빛들’
“세상은 의지에 넘치는 가짜들이 만드는 곳”...최유안 작가의 ‘먼 빛들’
  • 김재호
  • 승인 2024.01.19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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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_『먼 빛들』(최유안 지음 | &(앤드) | 224쪽)

최근 서울의 한 사립대 대학원생이 자살에 충격을 안겨준 사건이 있었다. 지도교수의 폭언에 힘들어하던 여학우는 끝내 삶의 희망에 대한 끈을 놓고 말았다. 최유안 작가의 연작소설 『먼 빛들』은 이 사건과 비슷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대학원 사회에서 학과장 교수와 엮인 한 여학우의 고충은 현실을 투영하는 듯하다. 

『먼 빛들』은 ‘여은경’, ‘최민선’, ‘표초희’가 각각 한 챕터를 구성하고 있다. 세 명의 커리어우먼이 한국사회에서 겪는 일상은 매우 촘촘하게 드러난다. 학과장(여은경), 장관(최민선), 이사장(표초희)는 모두 남자다. 그래서 이 소설은 여성 대 남성의 구도로 읽힐 수 있다. 하지만 『먼 빛들』은 그 층위를 훌쩍 뛰어넘는다. 단지 여자라서 경험하게 되는 일이라고 치부하기에 세상은 좀 더 복잡하고, 관계 지향적이다. 

여은경은 미국에서 테뉴어(정년)까지 보장받았지만 한국으로 귀국해 교수 생활을 이어간다. “은경에게 캠퍼스는 그 도시와 국가의 앞날을 보여 주는 예언서 같았다.”, “미국에 있는 잘 알지도 못하는 대학에서 일하는 것보다는 한국에서 그래도 어디에 붙어 있는지 모두 아는 대학이 우리한테 더 좋은 면이 있다는 거야.” 몸이 좋지 않은 어머니가 신경 쓰여 계속 미국에만 머무를 수 없었다. 

그런데 여은경 교수는 한 여학우 대학원생을 만나면서 일상이 뒤흔들린다. 편안할 것만 같았던 한국에서의 교수생활은 롤러코스터를 탄다. 미국에서 온, 젊은 여교수는 자신도 겪은 바 있는 대학원에서의 불안한 삶에 대해 공감하고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분주히 노력한다. “저희 학생들(대학원생들), 다들 웃고 있어도, 마음속에는 시꺼멓게 타고 남은 재가 들어 있을걸요.” 하지만 기존 교수들의 암묵적 카르텔은 견고하기만 하다. 여은경 교수는 또 다른 나이(경험) 많은 여교수를 만나 문제를 상의해 보기도 한다. 그러다 결국 문제는 급격히 전환되고 마는데...

최유안 작가는 세 명의 커리어우먼에 침잠해 있는 불안과 기대, 현실과 현실 너머를 마치 줄타기를 하듯 심리적으로 묘사한다. 한마디로 아슬아슬하다. 이러다 큰일 나는 게 아닐까 할 정도다. 그건 마치 빛과 같다. 먼 빛들은 분명 보이지만 잡히지 않는다. 

그런데도 희한하게 일상은 잘 흘러만 간다. 불안이 우울을 몰고 와도, 현실이 균열이 일어나도 사는 사람은 산다. 그 이유는 ‘표초희’ 편에서 작가는 이렇게 표현한다. “역시 세상은 의지에 넘치는 가짜들이 만드는 곳.” 진짜가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가짜가 많은 건 맞다. 

추천의 말을 쓴 범유진 작가는 “한 박자 늦게 웅덩이 안으로 들어온 누군가의 발끝과 끝이 닿을 때, 빛은 각자의 것이자 모두의 것이 된다”라며 “『먼 빛들』을 읽는 것은, 멀지만 사라지지 않는 빛을 손톱 끝에 새기게 되는 일이다”라고 평했다. 우리가 몰랐던 빛들은 이무 우리 손톱 끝이나 무의식 속에 들어와 있는지 모르겠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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