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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 양성 또는 상품 생산
인재 양성 또는 상품 생산
  • 안상준
  • 승인 2024.01.23 09: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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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_ 안상준 논설위원 / 국립안동대 사학과 교수

 

안상준 논설위원

무전공·무학과 선발이 대학가의 화두로 떠올랐다. “미래사회에 필요한 역량을 갖춘 미래 융합형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학과 간의 벽을 허무는 혁신”이 필요하다는 진단에 따라 교육부가 직접 입학제도의 변화를 강요하고 나섰다.

시안에 따르면 수도권대와 국립대는 의무적으로 일정 비율(20~30%)의 학생을 무전공으로 선발해야 하고, 지역사회와 산업 수요 등을 고려한 학과와 계열의 설치를 확대해야 한다. 재정 지원의 인센티브가 당근이다.

교육부는 유연한 학사 운영을 뒷받침하는 학내 지원과 제도 개선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예를 들어 전공 선택 학생 수를 고려하여 교원·재정·공간 등의 요소를 주기적으로 재조정하고, 학과와 상관없이 교수를 선발하여 배치하며 융합전공에 참여한 교원에게는 인센티브를 제공하거나 연봉과 연계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언론은 관련 기사를 쏟아내면서 한결같이 실패한 자유전공학부와 차별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전철을 밟지 않을 대안을 제시하라고 권고한다. 그러한 의문과 권고의 저변에는 불신이 깔려 있다. 자유전공학부 도입 당시 대학들은 “미래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융합 학문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설명했었다. 그런데 왜 실패했던가? 

융합 학문의 교육은 사기극과 다름없었고 학부생들은 인기학과로 몰려갔다. 법학전문대학원 진학은 제도상의 변화로 이해한다고 치더라도, 대부분의 학생은 경영학과와 컴퓨터공학과 등 인기학과로 진급했다. 오죽하면 당시에 ‘경영예과’라는 비아냥이 나왔겠는가. 중앙대는 도입 이듬해에 바로 모집 중단에 들어갔고, 연세대는 5~6년 운영하다가 국제학부로 흡수했다.

심지어 단지 교육부의 지원을 받기 위해 무리하게 다른 학과의 정원 30%를 갈취하여 ‘창의융합학부’라는 정체불명의 학부를 설치했으나 신입생 충원율 저하로 불과 몇 년 만에 해체를 결정한 대학도 있다.

나아가 무전공·무학과 입학은 대학에 대한 지극히 반교육적이고 비현실적인 인식에 기초한다. 학생이 몰리는 전공과 학과에 대학의 재원을 집중적으로 투자해야 한다? 예를 들어 반도체학과의 진급생이 전년 대비 해마다 50% 넘게 증가한다고 가정하자. 교수 충원, 공간 확장, 실습 시설 확충 등 교육여건이 충분히 충족될 수 있을까? 현재의 급여 수준으로 반도체 인재를 대학으로 유인하기는 거의 불가능하고, 다른 학과와 공존하는 대학의 속성상 공간의 확장도 결코 만만한 문제가 아니다. 인재 양성이 상품 생산과 다른 이유이다. 

게다가 이른바 비인기 기초학문은 어찌해야 하는가? 필자의 대학은 자연과학대학의 해산을 결정했고 철학과가 사라졌다. 혹자는 ‘아직도 지방대학에 물리학과와 화학과가 남아 있었어?’라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국립대 프리미엄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국립대마저 철학·물리학·화학 등 인문학과 기초과학을 포기할 때 과연 우리나라의 대학에 미래가 있을까? 너무 한가한 한탄인가? 그렇다면 인문학의 기초 없이 K-인문, 정신문화의 수도 나아가 한류의 진흥이 가능할까? 기초과학의 토대 없이 첨단·융합 과학에서 꾸준한 성과를 거둘 수 있을까?

교육부의 ‘자율적 혁신’은 허구다. 강요를 자율로 포장하고, 통제를 혁신으로 왜곡하며 대한민국의 미래를 갉아먹는다. 대학생을 가르쳐 본 경험이 없고 대학의 근본과 사명에 대해 본질적으로 그릇된 인식을 지닌 것으로 보이는 교육부 장관은 부디 교육의 시장화와 도구화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대학의 근간을 무너뜨릴 수 있는 정책에 신중을 기하길 바란다.

안상준 논설위원
국립안동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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