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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D 예산 논란이 남긴 것
R&D 예산 논란이 남긴 것
  • 이강재
  • 승인 2024.01.08 09: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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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_ 이강재 논설위원 /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이강재 논설위원

새해가 밝았다. 희망이 넘쳐나는 때이다. 과학기술계는 그렇지 않을 듯하다. 새해가 되었어도 줄어든 연구비로 한숨만 늘어나고 있다. 지난 연말의 국회 심의를 거쳐 정부 R&D 예산이 전년 대비 14.7%(4조6천억 원) 줄어든 것으로 최종 확정되었다.

원래의 정부안 대비 6천억 원이 증액되었다고는 하지만, “언 발에 오줌 누기”에 불과하다. 예산은 일단 정부안이 국회에 상정되고 나면 증액이 정말 어렵다. 처음의 정부안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이다.

R&D 예산과 관련된 논란이 남긴 후유증을 생각해 본다. 

첫째, R&D 예산에 대한 예측 가능성이 사라졌다. 연구 개발은 단기적인 투자도 필요하고 장기적인 투자도 필요하다. 예산의 예측 가능성은 곧바로 연구의 지속성과 관련된다. 미래를 이끌어갈 인력 양성까지 생각한다면 갑작스러운 변화는 큰 문제를 남긴다. 그동안 R&D 예산 편성 과정이 중장기적 계획에 의해 나름의 체계가 있었던 이유이다.

둘째, 과학기술계 원로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다. 이번 사태에 대해 아주 소수의 원로를 제외하고 대부분 침묵하였다. 후학들이 어려울 때 원로들이 침묵하면, 후학들은 선배들을 믿고 따라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 침묵의 원인은 다양할 것이다. 반대의 목소리를 냈을 경우 닥쳐올 연구비의 단절을 우려했을 수 있다. 대다수 과학기술인이 자신의 연구에 몰두할 뿐 연구비 관련 정책에 대해 목소리를 낼 준비가 안 되어 있는 것도 원인일 것이다.

과학기술 정책과 관련되어 중요한 역할을 해온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이나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이 행정부의 외곽조직에 불과하다면, 결국 앞으로 과학기술인의 목소리를 누가 대변할 것인지가 향후의 과제가 되었다.

셋째, 과학기술 연구에 대한 국제적인 신인도의 하락이다. 과학기술에 대한 국가적 중시는 국가의 미래에 대한 기대를 높여준다. 이 때문에 과학기술을 대하는 정부의 태도는 국제적 신뢰와 관련이 깊다. 국제협력에서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지속성인데, 예산의 변동성은 국제협력의 장애요인이다. 국제협력 명목의 예산이 늘어난다고 당장 국제협력이 활성화되는 것이 아니다.

상대는 우리에게 무엇을 기대할지 생각해야 한다. 일시적이지 않고 장기적인 교류를 통해 상호 발전하기를 원한다. 그래서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하다는 믿음이 필요하며, 예산의 변동성은 이러한 믿음을 훼손한다.

넷째, 과학기술인이 되려는 인재가 줄어들 것이다. 최종 예산에서 젊은 과학기술인을 위한 예산이 일부 늘었다고는 하지만, 인재의 유입을 촉진하기에 한계가 있다. 과학기술의 국가적 중요성을 언급해도 인간의 욕망이란 돈이 되고 현실적인 이익이 있는 곳으로 향한다. 의대 쏠림이 심하고 더구나 의대 증원까지 논의되는 상황에서, 과연 우수한 인재와 그들의 부모는 무엇을 보고 느꼈을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직후 과학자들을 만나 국가가 풀어야 할 다섯 가지의 중요한 과제에 대해 과학적 해결책을 요구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 미국의 과학재단(NSF)에 엄청난 규모의 예산을 증액했다. 국가의 지도자가 보여준 이러한 모습에 경탄하면서 그저 멀리서 부러워할 뿐이다. 연초부터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지 생각이 많다.

이강재 논설위원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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