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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시대의 대학
100세 시대의 대학
  • 손화철
  • 승인 2024.01.02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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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_ 손화철 논설위원 / 한동대 글로벌리더십학부 교수·기술철학

 

손화철 논설위원

오늘날 대학의 역할은 무엇인가? 중세 유럽의 대학은 왕이나 귀족을 보좌하는 전문가를 기르는 곳이었다. 그 결과 혈통으로 얻은 권력과 물리적 힘으로만 돌아가던 세상에서 법학·신학·의학·철학 분야의 지식과 지혜가 일정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혈통에 따른 권력이나 물리적 힘의 시절이 지나니 대학은 한동안 스스로 권력이 되었다. 좋은 혈통이나 재산에 더해 학벌도 힘의 조건이 되었다. 대학은 이른바 ‘상아탑’을 자처하며 지식을 독점하고 그 “지식이 곧 힘”이라 하였다. 대학이 일정한 희소가치를 유지하는 동안에는 입신양명과 신분 세탁의 통로가 되었다.

고등학생들의 80% 가까이가 대학에 가는 오늘, 한국의 대학은 이전처럼 희소성으로 가치를 삼기 힘들다. 여전히 건재한 대학 서열화를 부정할 수 없지만, 정작 입학 후에는 어디서나 얻을 수 있는 지식을 배우고 가르친다. 이제 대학은 시장에서 써먹을 최소한의 능력을 키우는 곳, 혹은 조금 나은 밥벌이를 위해 거쳐 가는 곳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수들이 끔찍이도 싫어하는 표현대로 “대학은 이제 인력 양성소가 되었다.”

좋건 싫건 대학이 인력양성소가 되었다는 증거는 곳곳에 흔하다. 대학은 기업이나 정부에도, 학생에게도 큰소리를 칠 수가 없다. ‘곧장 현장에 투입할 수 있는 인력’을 요구하는 그 기업과 정부에 학생이 취업하길 원하니 말이다. 대학은 지식의 산실이 아니라 용역 기관이 되어 갑질을 당하고, 학생도 졸업장을 취업의 도구로, 인턴 경험을 수업을 대체할 학점으로 바꾸어 버린다.

그 와중에 대학 교육은 온갖 방법론의 유행을 따라 춤추며 묘한 방식으로 획일화된다. 과거에는 영어로 하는 강의, PBL, 현장실습이 대세였다면 요즘은 여기에 융합교육과 인공지능이 더해졌다. 이것저것 배워서 합쳐보라는 요구에 기초지식이 필요하다고 답하니, 그건 인공지능으로 학습하라 한다. 인공지능이 영어·수학·코딩을 가르치고 상아탑은 이제 박물관에 모시면 된다. 어차피 커다란 시장의 작은 부품으로 쓰다 버릴 인력을 누가(무엇이!) 가르치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런데 불행 중 다행인가. 과거의 영화까지는 아니더라도 대학이 그 가치를 주장할 작은 공간이 남아 있다. 바로 100세 시대의 도래와 정신없는 직업 전환이 불가피한 변화의 환경이다. 인공지능에 넘어가게 생긴 단순 지식의 습득으로는 급변하는 세상과 환경, 직업에 대응할 수 없다. 이전 인류가 겪지 못한 시대를 살 우리 학생들에겐 배움을 넘어 배우는 능력이 필요하다. 잘 배우려면 스스로 생각하고 제대로 물어야 하는데, 이는 특정 기능과 지식을 익히고 외우고 연결하는 것으로 얻을 수 없다.

지식 독점의 향수를 극복해야 하지만, 널려 있는 지식을 아무나 갖다 쓸 수 없다는 것도 기억해야 한다. 하물며 좋은 지식을 판별하고 건설적으로 조합하는 일은 더 어렵다. 스스로 생각하고 제대로 물으며 창의적인 대안을 내는 능력은 얕은 지식을 마구 섞는 것이 아닌 책 한 권을 깊이 읽는 것에서 나올지도 모른다.

이제 대학이 살길은 젊은이를 한낱 수단과 대상으로 취급하는 시대의 관성에서 벗어나 100살까지 살아야 할 그들의 삶에 집중하는 일이다. 변하는 세상에서 존엄한 삶을 사는 데 필요한 학문적 기초가 무엇이며, 그것이 어떻게 길러지고 전수되는지 고민해야 한다.

손화철 논설위원
한동대 글로벌리더십학부 교수·기술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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