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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규의 아나키스트 열전 168] 제임스 스콧 “농경화는 인류에게 완전한 재난이었다”
[박홍규의 아나키스트 열전 168] 제임스 스콧 “농경화는 인류에게 완전한 재난이었다”
  • 박홍규
  • 승인 2023.12.18 08: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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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 제임스 스콧 1
올해 86세의 노학자 제임스 스콧

코로나19를 극복하는데 자본주의보다는 공산주의식 독재가 훨씬 효율적이었다고 평가된 탓인지, 공산주의의 재래를 주장하는 논자들이 없지 않다. 가령 스웨덴 룬트대학교의 인간생태학 교수인 안드레아스 말름(Andreas Malm)은 『코로나, 기후, 오래된 비상사태』(Corona, Climate, Chronic Emergency)에서 러시아의 1917년 전후 위기 및 격동을 수반한 볼셰비키 혁명의 역사적 조건을 현재의 기후위기와 동일시하면서, 기후위기는 생태적 지향의 독재를 통해 구할 수 있는 기회라고 보는 생태적 전시 코뮤니즘을 주장한다. 

그는 “아나키즘의 알파와 오메가:국가가 문제이며, 국가 없음이 해결책이다”(162쪽)라고 하면서 펜데믹 상황에서 국가를 부정하는 아나키즘의 상호협력 활동 같은 것은 큰 의미가 없었다고 비판하고 사회주의적 계획경제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도 궁극적으로는 국가 없는 사회를 지향하기 때문에 이러한 말름의 주장은 반드시 옳지 않다. 게다가 아나키즘은 국가 소멸만을 목적으로 삼지 않는다. 사실 현존하는 다양한 억압적 제도 가운데 국가는 가장 약한 제도에 속하는 것일 뿐이다. 아나키즘의 주요 목표는 국가만이 아니라 모든 억압적인 권력 구조의 철폐다.

코로나19의 발생 원인은 ‘농경의 배신’

코로나19의 발생 원인에 대해 여러 견해가 있지만, 내가 깊이 공감하는 것은 제임스 스콧이 말하는 ‘농경의 배신’이다. 농경 자체는 완전한 인공생태계로, 채집경제에 견줘 밀집해서 사는 초기 농부들의 생활양식이 끌어들인 진드기와 곤충부터 쥐와 고양이, 참새와 비둘기에 이르기까지 많은 종이 전염병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인간에게 특히 적합한 미생물로 인한 모든 전염병은 실제로 지난 1만 년 동안에만 발생했고, 그중 많은 수가 지난 5천 년 동안에만 발생했다.

따라서 수천 년 전에 전염병을 일으킨 조건과 21세기에 발생하는 현상(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현재의 유행성 질병 등) 사이에는 명백한 유사성이 있다. 현저하게 다른 점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세계 인구에 영향을 미친 범위, 규모 및 속도다. 이는 인간 중심의 산업자본주의 문명, 특히 최근의 ‘세계화’ 때문이다.

스콧은 『농경의 배신』에서 인류가 수렵·채집민의 유목생활에서 농경에 의존하는 영구적 정착생활로 이행한 것이 진보, 문명과 공공질서, 건강 증진과 여가라는 혜택을 주었다고 본 종래의 문명사를 완전히 뒤집어 도리어 농경화가 인류에게 완전한 재난이었다고 주장한다. 최근 유발 하라리가 농업을 인류 역사상 최대의 사기사건이라고 본 것과 통하는 이야기다.

그러나 스콧은 역사를 ‘길들이기’ 과정이라고 보는 점에서 하라리와 다르다. 처음에는 불, 이어 식물과 가축, 그리고 국가의 국민과 포로, 마지막으로 가부장제 가정 안에서의 여성 등을 길들이는 과정이 역사라는 것이다. 특히 국가의 형성과 유지 및 운영에 반드시 필요한 조건들은 소수의 지배층을 제외한 다수 국민에 대한 자유의 제한, 실질적 삶의 질 악화 내지는 생존 자체의 위협이었다고 본다.

 ‘농자천하지대본’이라는 말도 국가 통치술을 감추기 위한 꾸밈말이었을까?

특히 쌀, 밀, 보리 등 소수의 곡물들이 인류 대부분의 주식이 될 만큼 주요 작물로서 광대한 경작지에서 집중적인 노동력 투입을 통해 재배되어온 까닭은 안정적인 조세 수입과 인력 동원을 전제로 해야만 성립될 수 있는 국가의 강제 때문이었다. ‘농자천하지대본’이라는 말도 그런 통치술을 감추기 위한 꾸밈말이었을까? 홉스와 로크 같은 사회계약 이론가들이 너무도 소중하게 생각한 국가의 비전이라는 것도 마찬가지였을까? 그렇다면 동서양의 학문이라는 것은 모두 국가주의의 변주에 불과한 것이었을까?

스콧은 더 나아가 국가가 유발한 빈곤, 세금, 속박, 전쟁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변방으로 도주한 정치적·경제적 난민, 즉 비국가적 민족을 야만인 등 부정적으로 보기는커녕 ‘길들이기’에서 벗어나 수렵·채집민의 전통을 잇는 건강한 인류로 긍정한다.

“나는 예일대 교수가 아니라, ‘양봉인’”

『농경의 배신』은 예일대 정치학부 교수인 제임스 스콧이 2017년 81살에 쓴 60여년 연구의 총결산이라고 할 만한 대저다. 그는 정치학자이자 인류학자이고 예일대 농학부의 공식 창시자이자 저항 연구의 비공식 창시자다. 그는 46에이커, 즉 6만평 정도의 농장에서 소와 닭과 벌을 반세기 이상 키우며 살고 있는데, 이러한 농장 경험이 학문의 바탕이 되었음은 물론이고 평생 농사를 지었기에 학문도 조금은 나은 것이 되었다고 말한다. 

그는 무엇보다도 자신의 양털깎기 실력을 자랑하며 저서에도 ‘예일대 교수’가 아니라 ‘양봉인’이라고 쓴다. 그 100분의 1인 600평 밭을 감당하기도 힘든 나에게는 놀라운 일이지만, 1년 내내 잡초와 씨름하며 기껏 푸성귀만 가꾸고 열댓마리 닭을 가둬놓고 키우는 신석기인인 나와 달리 그는 구석기인처럼 동물들을 그냥 방목하니 더 건강할 것 같기도 하다. 농장에 있는 그의 집이 19세기 초에 지어진 고저택인 점도 스무평 내 집과 비교할 수 없다. 그러나 무엇보다 다른 점은 나도 ‘농부’라고 자처하고 싶지만 흉내만 내는 것 같아 부끄러워 못 쓴다는 점이다.

스콧은 1936년생이니 올해 86세의 노학자다. 뉴저지주 시골 마을인 마운트홀리에서 의사의 아들로 태어나 필라델피아 외곽의 퀘이커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고, 1958년에 윌리엄스칼리지를 졸업하고 1967년 예일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위스콘신대에서 정치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반전운동에 적극 참여했고, 1972년 최초의 저서인 『정치적 부패 비교』를 냈다. 

1970년대 후반에는 학자에게는 ‘경력을 죽이는’ 짓에 불과한 2년간의 현장조사를 위해 가족과 함께 말레이시아의 마을로 갔다. 이는 그가 정치학자로서는 보기 드물게 인류학적 조사를 했음을 뜻한다. 인류학과 아나키즘의 연관은 스콧만이 아니라 아나키즘 역사에서 자주 눈에 띈다.

고전적인 보기는 19세기의 크로포트킨과 르클뤼이고, 현대에도 클라스트로나 데이비 그레이버 또는 브라이언 모리스를 비롯한 여러 사례에서 볼 수 있다. 인류학은 사람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살아왔음을 보여줌으로써 아나키즘의 기본 원칙을 확인시켜 준다. 그래서 자본주의는 많은 시스템 중 하나일 뿐이며 다른 시스템과 마찬가지로 다른 것으로 대체될 수 있음을 인류학은 보여준다.   

전근대 소농경제를 이상적인 유토피아로 보지 않아

말레이시아에서 현장 조사를 한 스콧은 베트남에 관심을 가지고 농민들이 권위에 저항하는 방식에 대한 두 번째 저서인 『농민의 도덕경제』를 1976년에 발표했다. 농민들의 ‘도덕경제’라는 전통적 형태의 경제적 연대가 식민지 이후 자본주의 시장원리가 도입되면서 무너지고 국가정치로 점점 통합되는 과정을 비판한 이 책은 30년이 지난 2004년에 스콧의 저서로는 처음으로 우리말로 번역되었지만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다. 유교주의자나 소농주의자들이라면 전통 경제를 도덕적이라고 보는 듯한 스콧의 견해에 솔깃할 수도 있었는데 말이다. 

그러나 스콧은 전근대 소농경제를 이상적인 유토피아로 보지 않았다. 소농중심의 공동체는 평등주의적이지 않았고, 생존을 위해 자율성은 쉽게 포기되었다. 마을의 유지를 위해 노동력이 필요하고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도덕경제가 필요한 것이었다. 즉 도덕경제란 유교 등의 이데올로기나 이타주의 등의 인간본성론 따위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농경사회가 마을 단위로 생존하기 위해서 필수불가결의 생존 장치였던 것이다.

그가 말하는 도덕경제란 크로포트킨이 말한 마을공동체의 상호협력과 품앗이 등을 통해 모든 가족의 기본적 생존을 유지하는 것으로, 지배층도 그러한 최저한의 기본적 생존을 뺏지 못했다. 상호협력은 나도 남처럼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에 남을 도와주는 ‘상호’의 협력에 불과하지 무조건의 이타심에서 나오는 일방적인 도움의 배품이 아니다. 

스콧에 의하면 동남아시아의 농민들은 자신들의 생존윤리에 따른 도덕경제가 붕괴될 때 정부와 자본에 저항했다. 우리의 동학농민전쟁도 그러한 도덕경제의 파괴에 대한 저항이었고, 따라서 국가의 완전한 전복과 파괴가 아니라 도덕경제의 복원을 목표로 삼았다고 볼 수 있다. 도덕경제는 제국주의 침략에 의해 파괴되어 자금의 토대이자 방편이던 토지와 노동은 상품으로 바뀌었다.

국가가 농민을 착취하고 세금이라는 명목의 강제 수탈을 위한 중앙집권 체제가 형성되어 전국적으로 토지조사가 이루어지고 부동산 등기제도에 의해 부자의 소유권은 확인된 반면 빈곤 농민들의 삼림과 공유지는 국가의 소유로 넘어갔다. 

박홍규 영남대 명예교수·저술가
일본 오사카시립대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하버드대, 영국 노팅엄대, 독일 프랑크푸르트대에서 연구했고, 일본 오사카대, 고베대, 리쓰메이칸대에서 강의했다. 현재는 영남대 교양학부 명예교수로 있다. 전공인 노동법 외에 헌법과 사법 개혁에 관한 책을 썼고, 1997년 『법은 무죄인가』로 백상출판문화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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