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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인문학, 소수 연구자 악전고투…이공계 인재도 참여할 수 있어야”
“디지털 인문학, 소수 연구자 악전고투…이공계 인재도 참여할 수 있어야”
  • 임효진
  • 승인 2023.12.12 08: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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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디지털 인문학대회
국내 디지털인문학 연구는 연구 인프라·연구비·연구자의 필요성 등 한계를 지니고 있다. 지난 2일 서울대에서 열린 2023 디지털인문학대회는 유튜브와 줌으로 생중계됐다. 사진=디지털인문학협의회

디지털인문학 연구를 위해 인프라·연구비·연구자의 필요성이 절실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일 한국디지털인문학협의회는 「데이터와 인문학: 디지털 인문학의 다면적 양상과 효과들」이라는 주제로 2023 디지털인문학대회를 서울대에서 개최했다. 이날 한국의 디지털인문학 연구자들은 미래를 고민하는 자리를 가졌다.

박진호 한국디지털인문학협의회 회장(서울대 국어국문학과)은 “디지털인문학은 디지털 기술을 인문학 연구에 활용하고 디지털 전환이 인간의 삶에서 갖는 의미를 연구하는 비교적 새로운 분야”라며 “서양에서는 벌써 수십 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데, 한국에서는 최근에야 주목받고 있다”라고 밝혔다. 디지털인문학은 디지털 환경과 데이터 처리 기술을 매개로 수행하는 새로운 방식의 인문학 연구이다. 

데이터 리터러시·역사지리정보시스템 다뤄

한국디지털인문학협의회는 이번 정기 학술대회를 통해 △데이터 리터러시 △인공지능 △빅데이터 기반의 인문학 교육 △역사지리정보시스템(HGIS) △개방형 링크드 데이터 등을 매개로 최근 급격히 변화하고 있는 디지털인문학 연구와 교육의 외연을 조망함으로써 한국 디지털인문학의 현황과 담론을 살펴봤다.

박 회장은 “이번 학술대회는 한국에서 디지털인문학을 선도해 온 한국디지털인문학협의회가 세대교체와 국제화에서 뚜렷한 변화와 성장을 이룬 시점에서 개최된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다”라고 말했다.

디지털과 인문학을 둘러싼 변화에 체계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2015년 5월 한국디지털인문학협의회가 발족했다. 올해 7월 오스트리아 그라츠에서 열린 세계디지털인문학연합 학술대회와 회의에서 공식회원인 ‘CO’(Constituent Organization)로 선정됐다. 

인문학 내부에서부터 필요성 느껴야

박진호 회장은 “현재 한국의 디지털인문학은 인문학 배경을 가진 소수의 연구자가 스스로 디지털 방법을 익히고 데이터를 구축해 가며 악전고투하고 있다. 이공계 분야의 참여가 아직은 저조하고 연구비나 프로젝트도 적은 편”이라며 “다양한 연구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이공계 분야의 인재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라고 말했다.

디지털인문학 분야에서 선도적인 연구 업적을 내는 국가의 상황을 보면 인문학자뿐 아니라 이공계 분야의 배경을 가진 연구자도 적극 참여하고 연구 인프라를 조성하기 위해 꽤 큰 규모의 연구비가 투입되고 있다. 사용하는 디지털 방법론은 상당히 세련되고, 빅데이터를 활용한 연구도 많이 나오고 있다.

한국도 연구 단계가 초기이기는 하지만 디지털과 인문학이 함께 발전하기 위한 중요한 기점에 서 있다. 박 회장은 “이상적인 연구는 인문학 내부로부터 필요를 절실하게 느껴 그 필요에 부합하는 디지털 방법을 찾아서 활용하는 것”이라며 “현재 인문학 연구자 대부분은 자기 연구에서 디지털 방법과 관련하여 어떤 필요가 있는지 정확히 찾아내는 데 어려움이 있다. 상대적으로 디지털 방법에 밝은 연구자들은 연구 주제와 방법에서 최적의 조합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미국·영국처럼 사기업 연구비 가능할까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한 명의 연구자가 인문학적 소양과 디지털 방법 양쪽을 다 잘 아는 방법도 있다. 인문학과 디지털 방법론 두 분야의 연구자가 협력 연구를 하는 방법이 있지만 현재로서는 둘 다 효율적이지는 않다.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다각적인 모색이 필요하다. 인문학에 투입되는 국가 R&D 예산도 너무 작다.” 박 회장은 “미국·영국처럼 사기업에서 엄청난 연구비를 쾌척해 주면 고맙겠지만, 한국은 실현 가능성이 높지 않다”라며 “디지털인문학 연구자들 스스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고안하거나, AI 등의 첨단 기술에 인문학 도메인 지식을 활용함으로써 AI 모델의 성능이 더 향상되면 이공계 인재들과 협업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업에서 제품이나 서비스를 고안하는 데 인문학적 소양과 통찰이 중요하다는 말은 하지만 실제 적용되는 사례는 많지 않다. 인문학 연구자도 공허한 구호만 남발하기보다 좋은 사례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 그래도 디지털 방법의 문턱이 점점 더 낮아지고 있는 것은 희망적이라고 밝혔다. 

철학·지리학·문헌정보학 등 다양한 발표

이번 디지털인문학대회는 철학·역사학·문학·종교학·영화미디어학·어학·지리학·문헌정보학 등 개별 인문학 분야에서 디지털 인문학적 문제의식을 적극적으로 전개 중인 연구자들이 발표를 진행했다.

세션 1 ‘데이터 처리 기술을 통한 인문 지식의 확장 방안’에서 함형석 전남대 교수(철학과)가 「인도 논서(śāstra) 문헌군 TEI 인코딩 전략」, 장문석 경희대 교수(국어국문학과)와 홍종욱 서울대 인문학연구원이 「한국 근대학술의 디지털 아카이브 구축: 진단학보를 중심으로」를 발표했다. 

세션 2 ‘인공지능 기술의 발달과 인문학의 위상 재설정’은 김종우 연세대 한국기독교문화연구소 전문연구원이 「인간과 유사한 인공지능에 관한 소고: 융합 연구의 필요성을 중심으로」, 김지훈 중앙대 교수(공연영상창작학부)가 「매개(mediation)에서 미디어(media)로: 비판적 디지털 미디어 연구와 생성형 AI」를 발표했다. 

세션 3에서는 ‘빅데이터를 활용한 융합 교육의 설계와 운영’에 대해 홍진호 서울대 교수(독어독문학과)가 「인공지능과 스토리텔링」, 남호성 고려대 교수(영어영문학과)가 「자연과학과 언어학」을 발표했다. 

세션 4 ‘인문학 연구에 접목가능한 디지털 기술 및 활용 방안’은 실제 인문학 자료를 대상으로 디지털 인문학에서 역사지리정보시스템과 개방형 오픈 데이터 기술 적용이 갖는 의미에 관한 내용이 발표됐다. 김현종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인문지리학과)은 「생성형 AI의 한국 역사지리 지식과 AI 역사지도 제작 가능성 모색」, 박진호 한성대 교수(문헌정보학과)는 「기타로 오토바이를 타자: 링킹 데이터, 무엇을 어떻게 연결하는가?」를 발표했다. 

임효진 객원기자 editor@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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