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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 가정, 더 이상 선택의 대상이 아니다
일과 가정, 더 이상 선택의 대상이 아니다
  • 문애리
  • 승인 2023.12.11 08: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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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_ 문애리 논설위원 / 한국여성과학기술인육성재단 이사장·덕성여대 약대 교수

 

문애리 논설위원

올해 노벨상 수상자 중 단연 눈에 띄는 분은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클로디아 골딘 하버드대 교수다. 골딘 교수는 성별에 따른 소득과 고용률 격차의 원인을 역사적 관점에서 처음으로 논증한 공로로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불규칙한 직장의 일정을 수용하며 장시간 일한 대가로 높은 보수를 받는 일자리는 주로 남성이 차지하고, 아이에게 급한 일이 생겼을 때 일정 조정이 유연하고 보수가 적은 일자리가 여성에게 돌아가는 기울어진 분업 때문에 소득 격차가 점점 커진다는 것이다. 여성이 출산과 육아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환경이 남녀 간의 성별 격차를 야기한다는 것이다.

지난 9월 한국고용정보원의 ‘직업가치관 검사’ 결과에 따르면, 요즘 한국인은 직업 선택시 ‘일과 삶 균형’(워라벨) 여부를 가장 중요하게 고려한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30~40대 여성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 그들에게 일과 삶은 ‘균형’이 아니라 ‘선택’의 문제다. 여성의 경우, 출산·육아하는 시기와 직장에서 경력을 발전시키는 시기가 겹치기 때문이다. 조직 내에서 성과를 내고 보직자로 승진해야 하는 시기에 아이 양육을 병행해야 한다. 결국 많은 여성들은 일과 육아 중 한 가지를 선택해야만 하는 상황으로 내몰리게 된다.  

수치로도 증명되는 명백한 사실이다. 한국개발연구원이 지난달에 발표한 ‘30대 여성 경제활동참가율 상승의 배경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자녀가 있는 30대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54.5%로, 자녀가 없는 경우(78.7%)보다 무려 24.2%포인트나 낮다. 경제활동참가율의 남녀 격차는 30~40대에 크게 늘어난다. 출산·육아가 주요 요인이다.

특히 과학기술 분야는 특성상 경력 단절 후의 복귀가 쉽지 않다. 전체 과학기술 인력의 경력단계가 올라갈수록 성별 격차가 커지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실제로 과학기술 인력 중 여성 비율은 신규채용 30.7%, 재직 21.8%, 보직·관리직 12.4%, 연구과제책임자 11.9%로 빠르게 줄어든다.

육아와 자녀 양육에 동참하고픈 남성에게도 일과 삶 균형은 쉽지 않은 일이다. 남성은 직장에 육아휴직을 내는 것이 눈치가 보인다. 여전히 우리 사회는 ‘남성은 일, 여성은 가정’을 돌봐야 한다는 전통적 가치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골딘 교수는 한국의 심각한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려면, 기성세대와 남성들의 인식변화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과학기술 분야 육아휴직 제도 도입률은 98.9%에 달하지만 이용률은 13.7~62.3%에 불과하다. 지난달 정부는 출산휴가가 끝나면 상사 승인을 거치는 별도의 절차 없이 곧바로 1년 간 육아휴직할 수 있는 ‘자동 육아휴직제’ 검토를 발표했다. 경제적 이유 등으로 당장 육아휴직을 쓰기 어려운 이들에게만 예외로 ‘미사용 신청서’를 내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반가운 일이다.

다만 기업 등이 가임기 여성 근로자 채용을 꺼리거나 여성 구직자를 차별하지 않도록 하는 제도 보완이 반드시 필요하다. 아이슬란드처럼 부모 쿼터제를 도입하는 것도 한 방안이다. 

무엇보다 자녀 양육은 부모 공동의 책무라는 인식의 전환이 절실하다. 그래야만, 남성은 보편적 생계 부양자, 여성은 보편적 돌봄 제공자라는 역할 구분에서 벗어나 더 많은 선택과 자유를 누릴 수 있다. 누구나 일과 삶을 양립할 수 있도록 조직 문화 개선과 아울러 국가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이 시급하다. 

문애리 논설위원
한국여성과학기술인육성재단 이사장·덕성여대 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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