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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보다 더 무서운 인간의 아귀다툼
종말보다 더 무서운 인간의 아귀다툼
  • 오세섭
  • 승인 2023.11.30 08: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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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말하다_『아포칼립스 영화』 오세섭 지음 | 커뮤니케이션북스 | 108쪽

종말을 밝힌다는 뜻의 어원 가진 ‘아포칼립스’
방사능 등 재난을 열 가지 범주로 나눠 분석

인류는 언제나 종말의 시대를 살았다. 예언가들은 항상 종말을 이야기했으며, 종교에서는 심판의 날을 경고했다. 결국 어떤 시대를 살든, 지금이 곧 말세일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인간이 종말을 두려워하는 것은 당연했다. 두려워하였기에 관심을 가졌고, 관심을 갖다 보니 계속 회자됐다. 그리하여 종말은 하나의 콘텐츠로 자리 잡았으며, 종말의 순간을 담은 아포칼립스 영화가 등장했다.

원래 아포칼립스(apocalypse)는 ‘(비밀을) 밝히다’라는 어원에서 시작됐다. 여기서 비밀은 종말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기독교 세계관에서 이러한 비밀을 밝힌다는 건 종말의 때를 밝힌다는 것이며, 종말의 때가 드러나는 순간이 곧 종말이기 때문에, 아포칼립스는 자연스럽게 종말을 의미하는 단어가 됐다.

아포칼립스 영화의 기원은 매우 오래됐다. 일찍이 1910년에 소행성 충돌에 관한 영화 「COMET」이 만들어졌는데, 이 영화는 당시 지구를 향해 날아오던 핼리 혜성에 공포를 느낀 사람들의 심리를 담았다. 1933년에는 「대홍수」라는 영화가 개봉됐다. 「대홍수」에서는 제목 그대로 대지진이 일어나 미국의 서부와 동부의 해안가가 바다에 잠기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렇게 아포칼립스 영화는 절멸에 대한 집단적 공포를 그린다. 범지구적인 위기, 인류 전체의 두려움에 관한 이야기인 것이다. 그러다 보니 아포칼립스 영화에는 당대의 공포가 담겨 있다. 예를 들어,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핵 전쟁으로 지구가 멸망하는 영화가 등장한다든지, 우주 탐험이 시작되면서 외계인 침공 영화가 나타났던 것처럼 말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신종 플루를 겪은 후 「감기」(김성수, 2013)와 같은 전염병 영화가 제작됐는가 하면,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로 인한 방사능 공포가 「판도라」(박정우, 2016) 같은 영화를 통해 나타나기도 했다. 본문에서는 이러한 아포칼립스 영화를 열 가지 범주로 나누어 설명했다. 바꿔 말하면, 인류가 두려워하는 종말의 원인이 열 가지나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일례로, 소행성 충돌이라든지 자연재해로 인한 종말은 가장 오래된 인류의 공포다. 아마도 별똥별이나 지진, 홍수 등은 인류의 인식 범위를 넘어선 대재앙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자연재해의 원인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종교 혹은 예언 아포칼립스가 등장하게 된다. 과학이 없던 시대에 화산 폭발은 신의 노여움이며, 반복되는 홍수는 고대 예언의 실현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이렇게 종교와 예언 아포칼립스는 인간이 구축한 합리성의 빈틈을 파고들었다. 

소행성 충돌이나 자연 재해처럼 외부의 원인에 기인한 아포칼립스 영화가 있는가 하면 핵폭발이나 인공지능의 반란처럼 인간 스스로 자초한 종말을 다룬 영화도 있다. 이런 영화에서는 자신이 만든 것에게 오히려 죽임을 당할 수 있는데도 끝내 그것을 파괴하지 못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비판한다. 

그 밖에도 금세기 들어 치명적인 전염력과 스피드를 갖춘 좀비,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다시 호명된 전염병·외계인 침공·기현상에 의한 종말 영화 등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괴물 아포칼립스 영화도 다룬다.

괴물의 기준은 시대마다 다르다. 대개는 그 시대의 관점에서 흉측하다고 판단한 생명체를 가리킨다. 이런 식으로 배척당한 괴물은 사회 바깥에서 타자로 존재하게 된다. 인간은 이러한 괴물을 혐오하면서도 두려워했다. 상대를 혐오한 만큼 오히려 그들의 복수가 무서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더욱 괴물을 혐오하고 파괴하려 든다. 지금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학살과 비슷한 일이다. 나와 남을 구분한 뒤, 나와 같지 않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을 공격하는 행위는 괴물을 대하는 태도와 다르지 않다.

아포칼립스 영화는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을 다룬다. 그러나 정말로 무서운 건 종말의 사건이 아닐 수도 있다. 때로는 소행성이 충돌하는 것보다도 살아남기 위해 아귀다툼하는 인간의 모습이 더 무섭다. 이렇게 아포칼립스 영화에서는 종말보다 무서운 우리의 본성을 보여준다. 어쩌면 서로의 민낯을 확인하는 순간이 바로 종말일지도 모른다.

 

 

 

오세섭                           
영화 연구자·중앙대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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