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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에 살고 정치에 죽는다
정치에 살고 정치에 죽는다
  • 신희선
  • 승인 2023.11.27 08: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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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_ 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신희선 숙명여대 교수

‘한국 사회를 믿을 수 없다.’ 20대의 두 명 중 하나가 그렇게 보았다. 통계청의 2023년 사회조사 결과는 각 세대별 사회에 대한 불신의 정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10대 41.6%, 20대 46.8%, 30대 45.4%, 40대 43.3%, 50대 40.5%, 60세 이상은 37.9%로 나타났다. 특히 20대의 한국 사회에 대한 인식은 고령층과 비교해 볼 때 편차가 뚜렷하다.

청년세대가 당면한 불안정한 미래, 불평등한 삶의 조건에 대한 절망을 분명하게 읽을 수 있다. ‘위기 상황에 도움을 받을 곳이 없다’고 응답한 비율도 조사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한다. 사회구성원 간의 유대와 지지, 공동체에 대한 신뢰가 취약해 각자도생으로 귀결되는 한국 사회의 민낯이 드러난 셈이다.

한국의 사회신뢰도는 영국의 레가툼연구소(Legatum Institute)가 발표한 ‘2023 번영 지수’에서도 바닥권이다. 전 세계 167개국을 대상으로 교육·보건·안전·안보·국가경영 등의 다양한 지표를 평가한 한국의 종합 순위는 29위였다. 그 중 교육에 대한 접근, 인적자본과 같은 교육 항목은 싱가포르에 이어 2위인데 반해 사회적 자본 지수는 107위로 나타났다.

실상 사회적 자본만이 아니라 정치권에 대한 신뢰는 114위, 사법 시스템에 대한 신뢰는 155위로 더 밑바닥이었다. 사회적 자본지수와 국가 투명성이 높은 국가로 꼽히는 덴마크·노르웨이·스웨덴과 비교해 볼 때, 한국의 사회적·공적 신뢰도가 하위권인 이유는 민주주의가 부실한 정치 때문이다.

사회적 갈등과 위기를 증폭시키는 반동적이고 퇴행적인 정치에 그 원인이 있다. 총선이 내년으로 다가오면서 포퓰리즘에 기댄 헤푼 말들이 남발되고 있다. 책임정치는 ‘아무 말 대잔치’에 밀려난 지 오래다. 지역에 가서는 지방을 살려야 한다며 국가균형발전과 지방분권을 말하고, 돌아서서는 ‘메가시티’를 들먹이면서 그렇지 않아도 거대한 서울의 영토를 더 확장하겠단다.

내년도 연구개발비 예산을 대폭 삭감해 놓고도, 과학기술인들이 모인 자리에서는 선진 과학강국을 위해 마음껏 연구할 수 있도록 전폭 지원하겠다고 말한다. ‘긴축재정’을 강조하던 정부가 관변단체 지원액은 늘리고 대통령 해외순방 비용은 역대 최대 규모를 보여주었다.

자연파괴의 주범이라며 1회용품 사용금지를 외치던 환경부는 손바닥 뒤집듯 규제 조치의 백지화를 천명했다. 미래를 내다보며 결정돼야 할 국가 정책이 정치적 필요에 따라 달라지면서 갈팡질팡 엇박자다. 무릇 신뢰에 기반한 것이 정치인데 통치만 존재한다.

20대의 한국 사회에 대한 불신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직면한 중요한 문제가 여기에 있다. 교육·출산·보육·주거·노후가 위태롭고, 외교·안보도 불안하기 짝이 없는 현실에 대한 우려다. 이념·계층·세대·젠더를 갈라치면서 적대와 분열로 시들어가는 한국 민주주의 실상을 비춰준 것이다.

정치권은 선거 때가 되면 표를 의식해 혁신위원회와 비상대책위원회를 내세워 포장했지만 진정 정치를 혁신하고 변화를 보여주었던가? 최고 권력만 바라보고 이해득실로 움직이는 여당이나 무엇 하나 새로움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거대 야당도 매한가지다. 말로만 국민을 위한다고 했을 뿐 자신들의 이익 앞에 국민은 늘 껍데기였다. 

변혁이 필요하다. 미래 세대의 마음이 떠난 한국 사회에 혹시 지금이라도 정치가 무얼 할 수 있다면, 그것은 당리당략에 물든 정치판을 바꾸는 일 뿐이다. 권력을 장악한 특권층의 마음대로 재단되고 있는 지금의 정치를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면 결국 정치인에게 초미의 관심사인 선거가 기회다. 내년 총선이 새로운 변화를 만들도록 ‘슬기로운’ 유권자가 되어야 한다.

지금부터 정치인들이 쏟아내는 무수한 말에 귀를 열고 맥락을 헤아려 들어야 한다. 국민의 필요를 과연 잘 알고 있는 사람인지, 희망을 주는 사회를 만들어 갈 사람인지, 실천을 통해 바른 정치를 보여줄 사람인지, 눈을 크게 뜨고 살펴야 한다. 정치에 살고 정치에 죽기 때문이다.

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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