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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직업교육에 대한 비전 제시와 실천이 절실하다
고등직업교육에 대한 비전 제시와 실천이 절실하다
  • 김명환
  • 승인 2023.11.20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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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논평_ 김명환 서울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김명환 서울대 교수

한국인 최초로 수학의 노벨상이라는 필즈상을 받은 허준이 교수가 작년 서울대 후기 졸업식에서 한 축사를 동영상으로 본 많은 이들은 감탄한다. 가슴이 뭉클할 만큼 진지하고 정직하며 감동적인 축사였다. 그런데 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주변 지인이나 학생들에게 노동자 출신인 천현우 씨의 책 『쇳밥일지』에 나오는 전문대학 졸업식 축사도 함께 보라고 권한다.

천현우 씨는 한국폴리텍대학을 나온 청년 노동자로 온갖 고생을 겪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전문대학을 졸업하고 사회로 나아가는 젊은이들에게 진솔한 조언을 해주고 있다. 『쇳밥일지』를 통독한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현재 한국 대학 생태계가 처한 위기에 대한 언설은 넘쳐나지만, 정작 전문대학 재학생을 위한 ‘고등직업교육’의 개혁을 위한 비전 제시는 눈에 띄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전문대학 학생들은 4년제 일반대학 재학생보다 사회경제적으로 불리한 처지인 경우가 많아서 더욱 세심한 정책과 지원이 필요한데도 사각지대에 방치되어 있는 셈이다. 

‘고등직업교육’이라는 개념은 고등교육 연구와 담론에서 전문대학 교육의 성격을 규정하기 위해 오래전부터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지만 법률적으로 정의된 정식 용어는 아니다. 「고등교육법」의 관련 조항을 살펴보면, 제37조는 산업대학, 제55조는 기술대학에 대한 규정을 담고 있다. 전문대학에 대한 규정 제47조에 “전문대학은 사회 각 분야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과 이론을 가르치고 연구하며 재능을 연마하여 국가사회의 발전에 필요한 전문직업인을 양성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한편, 고용노동부 산하에 있지만 전문대학과 유사한 한국폴리텍대학은 「국민 평생 직업능력 개발법」에 법률적 근거가 있다. 한국폴리텍대는 1968년 중앙직업훈련원으로 출범했다가 1998년 기능대학 24개와 직업전문학교 21개의 통합을 통해 학교법인 한국폴리텍대학으로 출범했다.

「국민 평생 직업능력 개발법」의 제2조(정의) 5항(“기능대학이란 「고등교육법」 제2조제4호에 따른 전문대학으로서 학위과정인 제40조에 따른 다기능기술자과정 또는 학위전공심화과정을 운영하면서 직업훈련과정을 병설운영하는 교육·훈련기관을 말한다.”)이 폴리텍대의 법적 규정이며, 이 조항에 따를 때 폴리텍대는 전문대학의 범주에 속한다. 

이처럼 관련 법률을 잠깐 살펴봐도 ‘고등직업교육’이 법률 용어로 채택되어 있지 않음은 물론이고, 산업대학·전문대학·기술대학·기능대학 등의 규정이 상당히 혼란스럽다는 사실이 확인된 장기적으로 이들 대학의 규정과 상호관계를 사회적 공론화를 통해 재조정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한국이 세계 10위권의 경제 강국으로 진입한 빛나는 성공의 배후에는 열악한 여건에도 불구하고 높은 수준의 숙련도와 창의성을 발휘한 우수한 노동 인력의 큰 역할이 있었다. 또 지난 코로나19 대유행의 위기에서도 대한민국은 대기업부터 중소제조업에 이르는 산업 생태계가 건재한 상태에서 민첩하게 대응함으로써 유럽처럼 마스크 부족이나 생필품 대란을 겪지 않았다. 그만큼 전통적인 제조업의 기술혁신과 우수 인력 양성은 안정적인 경제 발전에 결정적이다. 이를 위해 각종 전문대학과 한국폴리텍대의 역할이 중요한 것이다. 

대부분이 사립대인 전문대학의 절반 정도가 비수도권에 있고, 지역의 4년제 사립대학 역시 비수도권 전문대학들과 함께 큰 위기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4년제 사립대와 전문대학의 교육 프로그램이 잘 구분되어 분담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특히 지난 10년 이상 4년제 사립대들이 살아남기 위해 인기학과와 유망한 실용전공 위주로 학제를 개편함으로써 전문대학의 영역을 침범하여 일반대학과 전문대학의 구분이 많이 무너진 상태다. 많은 수의 지역 사립대와 전문대학이 학령인구 급감 속에 모두 살아남기 어렵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런 위기의 가장 큰 원인은 물론 정부 정책의 부재다. 현재 전문대학의 심각한 위기에 비해 고용노동부 산하의 한국폴리텍대는 고용보험기금의 안정적인 지원을 받고 있어 기자재·실습시설 등의 교육 환경에서 다른 전문대학에 비해 훌륭한 여건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주무부처가 고용노동부가 관리하는 한국폴리텍대와 교육부가 관리하는 전문대학 사이의 장벽을 허물고 상호 협력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동시에 교육부 산하 전문대학의 교육 여건을 개선하는 노력이 절실하다. 

이 과정에서 ‘고등직업교육’의 개념과 위상을 재정립하고 관련 법률을 정비하는 동시에 산업정책, 인력수급정책 등의 관점에서 특정 전공의 교육과정이 2년·3년·4년 중 어디에 해당하는지를 정확히 평가하여 지역의 전문대학·폴리텍대가 수행할 고등직업교육을 현실에 맞게 재편할 필요가 있다.

특히 고등직업교육기관의 특성상 재교육기관·평생교육기관으로서의 역할도 강화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사실상 경쟁력을 상실한 지역의 한계사학도 과감하게 ‘고등직업교육’의 범주 속에서 구조조정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전문대학 졸업생들이 열악한 근로조건과 저임금에 시달리는 현실을 단기간에 극복할 수 없는 상황에서 ‘고등직업교육’을 받는 학생들의 전면적인 무상교육을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고등직업교육의 무상화는 날로 심각해지는 사회 양극화를 완화하는 훌륭한 정책수단이 된다.

동시에 인구 급감의 현실 속에서 우수한 해외의 젊은이들을 유학생으로 받아 잘 교육시켜 국내 제조업에 정착하게 함으로써 경제활동인구 위축과 전반적인 고령화 추세라는 사회적 위기 극복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고 본다. 해외 우수 인력 유치는 첨단분야나 국가전략산업만이 아니라 산업 생태계를 유지할 제조업 분야에서도 꼭 필요하다. 

김명환 서울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현재 전국교수노동조합 부위원장을 맡고 있다. 서울대 교수협의회 부회장과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인문정책특별위원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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