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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자치 트릴레마 그리고 스위스의 길
지방자치 트릴레마 그리고 스위스의 길
  • 이광훈
  • 승인 2023.11.17 10: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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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말하다_『스위스 모델』 이광훈 지음 | 388쪽 | 문우사

한국의 지방자치, 제도·리더십의 ‘탈동조화’
리더십·제도·자원 선순환 관계가 성공 요인

한국은 지금 산업화와 민주화를 넘어 양자 간 선순환을 통한 질적 도약을 요청하고 있다. 패스트 팔로워를 넘어 이제는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개척하는 퍼스트 무버가 되어야 하는 거대한 전환에 직면해 있다. 

중진국 함정을 극복하고 선진국으로의 도약을 위해서는 당대의 내·외부적 도전과 위기를 극복한 나라들의 국가운영 ‘모델’을 참조해 볼 필요가 있다. 그간 우리 사회의 담론 장에서는 다양한 자본주의 체제 관점에서 미국식 시장경제 모델과 독일식 사회적 시장경제 모델은 물론 복지국가 차원의 노르딕 모델 등이 백가쟁명의 논의가 펼쳐져 왔다. 이 책은 피상적인 ‘신화’로, 심지어는 잘못 알려져 온 스위스 모델에 대한 상식과 오해를 불식하고 미래 한국의 지속가능 발전에 필요한 시사점을 탐색하기 위해 저술됐다. 

그러면 왜 스위스 모델인가? 스위스가 국제적으로 주목받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글로벌 시장의 경쟁 속에서 이룩해 낸 월등한 경제적 번영과 국가경쟁력·혁신 성과 때문이다. 또한 전 세계적으로 지방자치 연구자나 실무가가 지방자치의 준거 혹은 롤 모델로 스위스를 꼽는 데 주저하지 않고, 일반 시민들도 스위스의 ‘동화’를 꿈꾸며 찬사를 보낸다. 

국가운영의 중심 축이 지역 수준의 분권적인 자치에 기반하고 있는 스위스는 지역적 자치단위의 자율성이 극대화되어 있다. 이로써 국가적 차원의 통치권력이 상대적으로 약함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경쟁력 제고와 높은 수준의 경제 성과와 국민 행복을 이룩해 내어 소위 ‘스위스 패러독스’로 일컬어지며 일견 역설적인 성공 모델로 손꼽히고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스위스 ‘성공신화’가 우리나라의 학계는 물론 일반 시민에게 얼마나 제대로 알려져 있는가? 정말 스위스의 지방자치제도를 직수입하면 이 땅에도 지방자치의 ‘천국’이 펼쳐질 수 있을 것인가? 선진국의 ‘좋은’ 제도를 들여와 우리 것으로 소화해 보려 했던 많은 개혁의 시도들이 ‘의도하지 않은 결과’로 종국에는 용두사미식으로 귀결되는 것을 너무나 자주 목도해 온 우리의 지난 기억을 소환해 본다. 그렇다면 스위스 지방자치 제도의 시공간을 초월한 한국적 맥락의 착근화 혹은 토착화 가능성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론은 타당하다.

2022년 스위스 연방 의회와 이그나치오 카시스 대통령(아래)이다. 사진=위키피디아

우리나라의 경우 오랜 중앙집권 국가의 역사를 경험해 오다가 지방자치 제도가 위로부터 아래로 이식됐다. 자치 관련 법제화로 공식적 제도가 도입된 이래 지방의회·지방자치단체장 등 리더십의 선출과 교체가 이루어져 왔다. 그러나 선출된 리더는 지방자치의 성공적인 제도화에 기여하기보다는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며 교체되기를 반복해 왔다. 제도와 리더십의 이러한 ‘탈동조화(de-coupling)’는 지방자치의 유무형적 토대가 되는 자원의 부족과 밀접한 상관관계를 가진다. 부족한 자원은 제도-리더십의 탈동조화를 초래함과 동시에 탈동조화된 제도-리더십은 다시 자원의 고갈을 심화시키는 악순환의 고리를 구조화시킨다. 이러한 지방자치의 트릴레마, 즉, 리더십-제도-자원의 3요소 중 어느 하나를 추구하려다 보면, 다른 두 가지를 이룰 수 없는 삼각 딜레마 상황의 악순환 고리는, 제도-리더십-자원 간 상호 구축(驅逐) 효과를 파생시킴으로써 부정적 피드백이 반복돼 결국 지방자치의 위기가 고착화되고 만다.

스위스 지방자치 제도의 심층적 기저에 존재하는 작동원리는 무엇인가? 다시 말해, 제도의 기반이 되는 자원은 무엇이며, 제도의 생성·지속·변화 과정에서 행위자의 리더십은 어떠한 영향을 주고받는가? 스위스 지방자치의 성공 요인으로서 리더십과 제도와 자원 간에는 선순환 관계가 존재함을 이 책은 다양한 실증자료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특별히 향후 인구 규모의 급감이 예상되는 우리나라에게는 다가올 ‘양적’ 인구 위기 속에서 인적자원의 ‘질적’ 혁신을 일구어내는 데 스위스 모델이 참조 사례가 될 수 있다. 무엇보다 제도의 총체성을 고려한다면, 단순히 관련 법제의 모방을 통한 유사 제도 동형화에 그칠 위험성을 경계할 필요가 있음을 이 책은 강조하고 있다.

 

 

 

이광훈 
강원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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