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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오늘도 질문한다
그래서 오늘도 질문한다
  • 강재린
  • 승인 2023.11.13 08: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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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후속세대의 시선_ 강재린 이화여대 철학과 박사수료
강재린 이화여대 철학과 박사수료

“철학을 왜 하게 되었나요?” 

철학과 내에서도 가끔 듣는 질문이지만, 세상에 철학을 하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인지 학교 밖에서 이런 질문을 받는 경우가 많다. 질문을 하면서 사람들은 철학을 전공하고 싶었으나 취업이 어려울 것 같아 선택하지 못했다는 고백을 하기도 하고, 철학이 이 시대에 무슨 쓸모가 있는지 모르겠다며 은근히 무시하기도 한다. 그들의 숨은 의도와 상관없이 나는 이 질문을 받을 때마다 철학을 공부하게 된 좀 더 멋들어진 이유를 만들어야 하는 건 아닌지 고민하게 된다. 

나는 ‘나’를 찾기 위해서 대학원에 진학했다.-나는 오랫동안 남들도 다 이런 이유로 대학원에 진학하는 줄 알았다- 나는 오랜 시간 내가 ‘나’를 연기하고 있다는 기분을 떨치기 어려웠는데, 철학을 공부하면 ‘온전한 나’를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낭만적인 이유로 공부를 시작해서일까? 나는 공부를 하는 내내 어려움을 겪었고, 여전히 겪고 있다.

‘나는 누구인가’는 철학의 오래된 질문이라 금방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철학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미궁에 빠졌다. 철학자들이 개념 만드는 것을 어찌나 좋아하는지 그들의 개념을 익히면 익힐수록 나의 질문은 점점 아득해져만 갔다.  

석사 수료 후 혼돈의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학과 행사를 준비하며 거의 20년 전에 퇴임하신 선생님을 인터뷰할 기회가 생겼다. 선생님께 제일 처음 드린 질문은 “철학 공부를 계속하다 보면 답을 찾을 수 있나요?”라는 질문이었다. 선생님께서는 60년 정도 철학을 하셨고, 아직도 매일 공부하고 계시니 이미 깨달으신 것이 있을 거라는 기대에서 던진 질문이었다. 그런데 선생님은 나를 미궁에서 꺼내줄 실타래 따위는 없음을 선언하는 듯한 답을 하셨다. “철학자들이 답을 말해주지는 않지. 아무리 들여봐도 거기엔 답이 없어.” 

선생님 입에서 다음 문장이 나오기 전 그 잠깐 동안 ‘60년을 저렇게 매일 공부하셨는데도 답이 없다 하시면, 내가 이걸 하는 게 맞나?’라는 의문이 스쳤다. 그러나 선생님의 다음 문장 때문에 나는 아직도 철학을 공부하고 있다. “철학은 답을 찾는 과정이지.”  

사실 선생님의 대답은 새로운 게 아니었다. 많은 철학자가 이 비스름한 이야기를 남겼고, 철학과에서는 흔히 유행처럼 회자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런데 왜 이 말이 그날은 다르게 들렸는지 모르겠다. 노학자의 생생한 육성은 그동안 내가 잘못된 개념을 가지고, 잘못된 질문을 던지고 있었음을 일깨워주었다.

‘온전한 나’라는 개념에 대한 나의 잘못된 전제를 검토하며, 나는 내가 나를 연기한다는 기분에 더 이상 사로잡히지 않게 되었다. 질문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상황이 달라지지 않아도 꽤 많은 문제가 해소된다. 그리고 제대로 된 질문을 했을 때 ‘진리’라고 여길만한 것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철학을 가르칠 때 시간을 들이는 부분도 ‘질문하기’이다. ‘어떤 전제를 가지고 질문을 했는지’, ‘자신이 언어로 표현한 문장이 진짜 의도한 내용이 맞는지’를 함께 검토하다 보면, 아이들의 관심을 이해할 수 있게 되기도 하고, 아이들 스스로도 자신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갖게 된다. 철학을 공부하며 질문을 할수록 스스로에 대해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내가 품고 있는 질문이 맞는 질문인지 확인하는 과정은 지난하겠지만, 언젠가 우리의 질문이 우리가 도달하고자 하는 곳에 데려다 줄 것을 믿는다. 

강재린 이화여대 철학과 박사수료
이화여대 철학과에서 「프래그머티즘에 기반한 ‘대화적 자아(dialogical self)’ 개념의 철학교육 적용가능성」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고등학교 철학 교과서(경기도교육청) 집필진으로 참여했으며, 이화여대 철학연구소에서 철학교육프로그램 운영업무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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