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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의 유혹
스토리의 유혹
  • 김재호
  • 승인 2023.11.07 16: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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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브룩스 지음 | 백준걸 옮김 | 앨피 | 246쪽

세계적 석학의 서사비평, 스토리텔링 비판
‘이야기’가 창궐하는 시대의 서사론
서사 분석의 과제, 인문학의 역할

서사학의 고전으로 일컬어지는 『플롯 찾아 읽기Reading for the Plot』의 후속편이라 할 만한 책. 스토리텔링의 힘과 중요성, 그 반대급부로서의 위험성을 문학부터 법률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사례를 들어 통찰한다. 저자는 말한다. “인간은 서사를 통해 현실을 이해하고, 서사를 도구 삼아 의미를 생산한다.” 이야기가 인간 삶의 근간을 이루는 핵심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이야기와 현실 사이에 놓인 경계가 무너졌을 때이다. 특히 마지막 장 ‘법의 이야기, 법 속의 이야기’는 가장 독창적인 대목으로, 사실과 논증만 허락할 것 같은 법률과 재판이 사실은 어느 분야 못지않게 서사와 이야기에 의존하고 있음을 갈파한다. 가장 이성적일 것으로 믿어지는 세상의 모든 ‘사실들’이 실은 그 자체로 하나의 이야기임을 새삼스레 깨닫게 한다.

저자는 인문학이 제공하는 반성적 지식, 즉 경제·윤리·정치의 지배적 서사를 분석하는 작업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고 주장한다. 공적 영역에서 문학 그리고 인문학의 역할은 바로 이런 것이다. 오늘날 미디어와 기업, 정치 등 현실의 상당 부분을 지배하고 있는 서사를 분석하는 과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이야기가 어떻게 사람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세상을 통제하는지 이제 막 분석적으로 규명하기 시작했을 뿐이다. 분석되지 않은 이야기는 신화일 뿐이다. 문학을 포함한 인문학은 세상을 거짓되고 총체적인 시각으로 설명하려는 시도에 맞서, 공적인 저항 도구를 제공해야 한다. 우리 시대의 유해한 신화를 해체하는 방법을 전파해야 한다고 피터 브룩스는 주장한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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