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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석의 여자
운전석의 여자
  • 김재호
  • 승인 2023.11.07 13: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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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리얼 스파크 지음 | 이연지 옮김 | 문예출판사 | 392쪽

〈더 타임스〉 선정 “전후 가장 위대한 영국 작가 50인”
뮤리얼 스파크가 꼽은 자신의 최고작

여성 서사의 전형성을 비트는 미스터리 스릴러
그리고 여성과 삶에 대한 서늘한 아이러니를 품은 11편의 중단편

『운전석의 여자』는 닮은 소설을 찾기 힘든 기이한 소설이다. 그저 ‘여성이 주인공인 미스터리 스릴러’라고 말할 수 있을 뿐, 그 외의 모든 전형성은 비껴간다. 전후 영국의 최고 작가 중 하나로 손꼽히는 뮤리얼 스파크가 이 소설을 자신의 최고작으로 꼽은 이유는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 어떤 해석도 거부하는, 위태롭지만 거부할 수 없는 욕망의 소유자인 주인공 리제에게서 자본주의와 가부장제를 동시에 감당하며 살아가야만 하는 여성의 실존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표제작 〈운전석의 여자〉는 출간 후 50년이 훌쩍 지났지만 여전히 독자에게 서늘한 긴장감을 안긴다. 아니, 오히려 여성 서사가 특정한 방식으로 정형화되어가는 요즘, 작품이 전하는 긴박감은 더욱더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운전석의 여자』에 실린 11편의 중단편은 그 자체로도 매혹적인 이야기다. 스파크 특유의 익살 섞인 시니컬한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절로 빠져들 수밖에 없는 그런 이야기 말이다. 그러나 여기에 담긴 의미를 적극적으로 해석할 때, 작품을 읽는 재미는 배가된다. 수십 년 전 출간된 스파크의 작품이 지금 번역되어 소개되는 것의 의의는 바로 여기에 있다. 스파크의 여성 인물들은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어딘가 낯선 방식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펼쳐낸다.

내내 독자의 기대를 배반하는 방식으로 전개되는 그녀의 작품은 독자에게 말끔히 해석되지 않는 잔상을 남겨 그 의미가 무엇일지 고민케 한다. 여성 서사의 범람이라는 환영할 만한 현상이 전형적 서사의 확립으로 굳어지고 있다는 인상이 드는 요즘, 스파크의 작품은 매끄럽게 해석될 수 없는 기괴함으로 여성 서사에 다시금 생기를 부여한다.

〈운전석의 여자〉에 나오는 ‘Q 샤프 장조’라는 표현은 줄곧 스파크 작품의 특징을 절묘하게 포착한 말로 여겨졌다. 존재하지 않는 음계인 Q 샤프 장조로 연주되는 다채로운 여성 서사에 주목해보자. 동시대의 여성 서사와는 또 다른, 색다른 문학적 쾌감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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