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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3가에서 만난 ‘언니들’…연구자는 잘 들을 수 있을까 
종로3가에서 만난 ‘언니들’…연구자는 잘 들을 수 있을까 
  • 윤선미
  • 승인 2023.11.06 09: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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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후속세대의 시선_ 윤선미 중앙대 사회학과 박사수료
윤선미 중앙대 사회학과 박사수료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1년, 모두가 마스크로 반쯤 얼굴을 가린 채 만남을 시작했던 서울 종로3가에서의 시간이 벌써 3년차에 접어들었다. 그동안 막달레나공동체에서 한 달에 1~3번 정도 진행하는 정기적인 아웃리치와 부정기적인 인터뷰를 통해 종로3가 ‘언니’들과 만남을 지속하면서 이제 자주 보는 언니들과는 서로 마스크를 썼든 벗었든 얼굴을 알아보고 반갑게 안부를 물을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내가 종로3가에서 만나고 있는 ‘언니’들은 이 지역에서 거리성매매를 하고 있는 중고령 여성들이다. 관련 제도와 논의가 산업화된 성매매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는 한국사회에서 종로3가의 거리성매매는 상당 부분 비가시화 되어 있다. 나 역시 성매매 문제를 공부하고 연구해왔음에도 언론 등 미디어를 통해 뭉뚱그려 재현된 이미지인 ‘박카스 아줌마’ 정도밖에 알지 못했다.

이곳에서 지원사업과 연구를 시작한 성매매여성 지원단체인 막달레나공동체와 부설연구소인 용감한여성연구소와의 만남은 ‘박카스 아줌마’라는 이미지 너머 실제 언니들의 삶의 현장 속으로 나를 이끌어 주었다. 당초 학위논문은 염두에 두지 않고  참여를 시작한 종로3가 거리성매매 현장에 대한 참여관찰과 인터뷰는 지금 나의 박사학위 논문 주제가 되었다.

사회적 소수자들의 경험을 포착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재발견하는데 천착하고 있는 연구자로써 나는 종로3가 현장에 금세 빠져들었다. 그러나 실제 박사학위 논문 주제로 결심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박사학위 논문으로 성매매를 직접 다루는 연구를 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과 더불어 석사학위 논문 작업 당시 참여관찰과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경험하고 고민한 것들의 무게가 너무 무겁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사람들을 만나 그들과의 관계 속에서 연구 자료를 생성하는 한편 관계를 맺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연구인 참여관찰과 인터뷰를 실제 수행하면서 종종 대학원 수업이나 논문에서 배운 것들이 무력하게 느껴지는 순간들을 마주했다. 나의 노력과는 별개로 연구자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을 비롯해서 사회경제적 소수자를 대상으로 한 민감한 주제를 다루는 연구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윤리적 문제와 부딪혔다.

여성학과 구술생애사를 중심으로 한 선행연구에서 내가 부딪혔던 문제들과 비슷한 고민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지만, 연구과정에서 경험한 현실적인 문제를 논문의 정제된 언어 속에서 전면에 드러내는 것은 어려워 보였다. 나 역시 연구과정에서 경험한 좌절과 고민을 ‘연구방법’을 서술한 장에서 약간의 흔적으로 남길 수밖에 없었다.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안고 다시 들어선 현장에서 여전히 나는 고민하고 좌충우돌하는 중이다. 나와 막달레나공동체 활동가 선생님은 언니들에게 ‘뭐 주는 사람들’에서부터 ‘성당에서 나온 언니들’이거나 ‘사회복지사 선생님’ 또는 ‘여성단체 선생님’으로 불린다. 어쩌면 우리의 소속이 어디인지는 언니들에게는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꾸준히 언니들에게 유용할 소소한 물건을 나눠드리고 안부와 근황을 확인하는 사이에 익숙해진 얼굴과 대화들이 라포를 형성할 수 있게 해 주었을 것이다.

물론 라포 형성이 모두 인터뷰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2021년에 진행한 초기 인터뷰에서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본인의 생애를 들려주셨던 ‘이야기꾼’인 언니가 만남의 시간이 쌓이고 가까워지면서 오히려 추가 인터뷰를 거절한 경험은 구술자와 면담자 간의 라포 형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했다. 언니의 이야기를 더 들을 수 없는 것에 대한 아쉬움과 더불어 혹시 언니를 서운하게 한 것은 없는지에 대한 고민을 활동가 선생님과 함께 나누었으나 정확한 원인이 무엇인지는 알기 어려웠다.

다만 추측만이 가능할 것이다. 언니와 가까워진 뒤 알게 된 것은 오랜 시간 알고 지낸 다른 언니들에게도 본인에 대한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첫 인터뷰 당시에는 우리가 언니의 삶의 관계망에 들어있지 않은 ‘타인’들이었기 때문에 부담 없이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주었으나, 이제는 관계망 안에 들어온 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이야기를 들려줄 수 없는 역설이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라포를 구술자와 면담자 간의 마음의 거리라고 한다면 적당한 거리를 어떻게 가늠할 수 있을지, 가늠하는 것이 가능하기는 한 것인지 여전히 어렵다.

연구자에게 듣는다는 것은 중층적 의미를 가진다. 연구참여자/대상자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것, 분석하는 과정에서 연구자의 편의에 따라 목소리를 왜곡해서 재현하지 않는 것 모두 듣는 행위에 포함될 것이다. 

윤선미 중앙대 사회학과 박사수료
중앙대 사회학과에서 「‘집’을 찾는 여정으로서 가출: 청소녀들의 장기 가출 경험 연구」라는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 종로3가의 거리성매매 여성들의 구술생애사로 박사논문을 준비 중이다. 경계에 선 여성들의 삶을 통해 한국사회구조에 대한 질문을 시도하는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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