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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규의 아나키스트 열전 162] 경제적 착취·사회적 억압 분석하는 새로운 접근 방식 개발한 북친
[박홍규의 아나키스트 열전 162] 경제적 착취·사회적 억압 분석하는 새로운 접근 방식 개발한 북친
  • 박홍규
  • 승인 2023.10.30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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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북친①
머리 북친(1921~2006)의 1990년 모습이다. 사진=위키미디어

20세기 아나키스트 중에서 촘스키 다음으로 많이 소개된 사람은 머리 북친이다. 촘스키 책 중에 직접 아나키즘을 다룬 책은 한두 권에 불과한 것에 비하면 현대 아나키스트 사상가 중에서는 북친이 유난히 돋보인다. 북친은 한국에서만이 아니라 외국에서도 현대 아나키스트 중에서 가장 유명하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아나키스트로 소개되었다고 하기보다 생태주의자로 소개된 측면이 강하다. 우리말로 처음 번역된 그의 책은 『사회생태론의 철학』(The Philosophy of Social Ecology)으로 1997년 문순흥이 번역했다.

그리고 이듬해 내가 『사회생태주의란 무엇인가』(RFemaking Society)를, 2002년에 구승회가 『휴머니즘의 옹호』(Reenchanting Humanity, 1995)를, 2012년에 서유석이 『머레이 북친의 사회적 생태론과 코뮌주의』를 각각 번역했다.

이 책들은 2023년 현재 모두 절판이거나 품절 상태여서 북친에 대한 관심이 식었다고 할 수도 있으나, 학술논문이나 학위논문은 꾸준히 나오고 있어서 북친에 대한 관심이 완전히 사라졌다고는 할 수 없다. 

2차대전 이후 아나키즘을 에콜로지와 결합

그러나 일반인보다는 전문가들에게 더 큰 관심이 주어진 점에서 유감이 아닐 수 없다. 북친은 2차대전 이후 아나키즘을 에콜로지와 결합하여 아나키즘의 사상과 실천을 현대에 부활시킨 ‘사회생태학’의 창설자로 가장 위대한 아나키스트라는 평가를 받지만, 과연 그가 독창적인 사상가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다.

크로포트킨이 19세기 말에 아나키즘에 진화적 차원을 부여함으로써 아나키즘을 갱신한 것처럼, 북친은 아나키즘에 생태적 관점을 부여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는 여전히 크로포트킨을 비롯한 고전적 아나키스트들의 사상에 입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1921년 미국에서 가난한 러시아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초기 몇 년을 산업 노동자로 보냈다. 젊었을 때 그는 마르크스주의에 빠졌다. 처음에는 공산주의자였고 다음에는 트로츠키주의자였다. 허버트 리드(Herbert Read)와 조지 우드콕(George Woodcock)을 읽음으로써 마르크스와 엥겔스로부터 멀어졌고, 60년대에 그는 강력하고 논쟁적인 아나키스트 사상가로 떠올랐다.

그를 유명하게 만든 첫 번째 책은 60년대의 혁명적 낙관주의에서 영감을 받은 에세이 모음집인 『희소성 이후의 사회』(Post-Scarcity Anarchism, 1971)로, 역사상 처음으로 현대 기술에 의해 창출된 물질적 풍요의 전망이 전체 자유 사회를 가능하게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그동안 북친은 환경 문제에 대한 관심을 계속 발전시켰다. 그의 첫 출판물은 환경오염의 사회적 기원을 고찰한 독일어 책인 『위험한 음식』(Lebensgefiihrliche Lebensmittel, 1952)으로 식품의 화학물질 문제에 관한 것이었다. 

“도시의 공기는 사람들을 자유롭게 해야”

그 뒤를 이어 루이스 허버(Lewis Herber)라는 가명으로 발행된 『우리의 합성적 환경』(Our Synthetic Environment, 1962)은 환경오염의 사회적·경제적 기원과 식품첨가물의 문제점을 지적한 책으로,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보다 반년 먼저 나왔다.

이어 도시 생활의 질을 우려한 『우리 도시의 위기』(Crisis in our Cities, 1965)를 썼고, 『도시의 한계』(The Limits of the City, 1973)에서는 현대의 거대도시(메갈로폴리스)와 중앙집중식 계획을 공격하면서 그리스의 폴리스가 가진 인간적이고 민주적인 측면을 현대 도시 생활에 부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도시의 공기는 사람들을 자유롭게 해야 하는 것이지 고통스럽게 해서는 안 된다는 그의 주장은 『도시의 등장과 시민권의 몰락』(The Rise of Urbanization and the Decline of Citizenship, 1987)에서 더욱 잘 반영되었다. 이처럼 인간적 규모, 지역 통제, 분권화를 강조하는 지방자치제가 아나키즘의 근본적인 목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북친의 저술에서 중심 주제가 되었다. 

말년에 미국 독립전쟁과 고대 그리스에서도 아나키즘적 요소를 발견

시민의회는 시민의식과 더불어 자주적 자아를 함양해야 한다고 본 북친이 처음으로 자유 사회는 생태적 사회여야 한다고 분명히 주장한 책은 『희귀성 이후의 아나키즘』에 실은 에세이 「생태와 혁명적 사상」(1964)에서였다. 그는 『생태사회를 향하여』(Toward an Ecological Society, 1980)에서 인간에 의한 자연 지배라는 개념이 남자에 의한 남자와 여자의 진정한 지배에서 비롯된다는 중심 테제를 발전시켰다.

그의 광범위한 작업인 『자유의 생태학』(Ecology of Freedom, 1982)에서 계층 구조의 출현을 보여주고 그 해체를 주장하기 위해 역사와 인류학을 활용했다. 당시 존 클라크는 그 책을 ‘지금까지 나온 아나키스트 사상의 가장 중요한 책’, 테오도어 로작은 ‘우리 세대의 생태 사상에 가장 중요한 공헌’이라고 찬양했으나, 철학과 비판적 사회 이론에 정통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난해하고, 스타일은 때때로 모호하고 반복적이며 접하기 어려웠다.

북친은 보다 접근하기 쉽고 읽기 쉬운 형식으로 자신의 아이디어에 대한 입문서를 작성하여 단점을 해결하려고 『사회생태주의란 무엇인가』를 썼다. 

이 모든 저술에서 그는 유기적이고 생태적인 세계관에 기반을 둔 문화 정치의 형태를 발전시켰다. 그것들은 함께 정치 이론에 대한 독창적인 기여를 형성한다. 과학, 인류학 및 역사. 그가 항상 서로 다르고 종종 양립할 수 없는 전통에서 추려낸 아이디어를 일관된 전체로 짜 맞추는 것은 아니지만, 그는 적어도 야심차지 않다는 비난을 받을 수 없다.

북친의 지적 배경은 매우 광범위하지만 비판 이론과 계몽주의라는 서양 전통에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그는 변증법적으로 생각하고 문화를 이해하는 데 있어 역사의 중심 중요성을 인식한다. 또 독일 상상력과 예술에 대한 실러의 강조와 자의식이 된 자연으로서의 인간 의식에 대한 피히테의 견해를 공유하며 프랑크푸르트학파, 특히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바쿠닌과 크로포트킨의 아나키즘 그리고 『스페인 아나키스트』(1976)를 저술할 정도로 스페인혁명에서 영향을 받았다. 말년에 그는 미국 독립전쟁과 고대 그리스에서도 아나키즘적 요소를 발견했다. 

“아나키즘은 극도로 현실적이며 그 어느 때보다 가능성이 높다”

동시에 북친은 자신을 유토피아적 전통에 당당히 내세웠다. 그에게 유토피아는 꿈꾸는 비전이 아니라, 선견지명의 문제다. 그에게 유토피아적 사고의 힘은 바로 ‘현대 사회의 모든 전제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회의 비전’에 있다. 그것은 구체적인 주장에 대한 열정과 함께 일상의 새로운 대안에 대한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그는 노동이 놀이로 바뀌는 사회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감각과 창의성의 중요성을 강조한 라블레(Rabelais), 샤를 푸리에(Charles Fourier) 및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에게서 특히 영감을 받았다. 따라서 북친은 1968년 파리 학생들의 ‘권력 장악을 위한 상상력’의 외침에 자신의 목소리를 추가하고 일상생활에서 우리의 습관과 인식을 바꾸고자 하는 열망을 상황주의자와 공유했다.

그러나 북친은 그의 유토피아적 영감을 기꺼이 인정하면서도, 아나키즘이 극도로 현실적이며 그 어느 때보다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강조했다. 과거에는 아나키스트가 종종 농촌 마을이나 중세 코뮌에 대한 향수로 가득 찬 외로운 몽상가, 사회적 추방자로 여겨졌지만, 오늘날에는 균형 잡힌 공동체, 직접민주주의, 휴머니즘적 기술, 분권화된 사회가 매우 실용적일 뿐만 아니라 인간 생존의 전제 조건이라는 아나키즘에 직면해 있다고 본 북친의 유토피아적 사고는 인간 경험의 현실에 확고하게 기반을 두고 있다.

미래의 모든 혁명, 일상을 해방하는 것

북친의 가장 중요한 업적 중 하나는 경제적 착취와 사회적 억압을 분석하는 새로운 접근 방식을 개발한 점이다. 그는 고전적 아나키즘 사상가들에게서 볼 수 있는 다소 단순한 국가와 자본주의에 대한 비난을 넘어 계급보다는 ‘위계’(hierarchy), 착취보다는 ‘지배’라는 관점을 중시하고 ‘대중’이나 ‘프롤레타리아트’와 같은 진부한 추상화를 피했다.

그에게 위계는 사회적 조건뿐만 아니라 의식의 상태를 의미하고, 복종과 명령의 문화적, 전통적, 심리적 시스템뿐만 아니라 계급과 국가의 경제적, 정치적 시스템을 포함한다. 

나아가 북친에 따르면 국가는 관료적이고 강압적인 제도의 집합체일 뿐만 아니라, 현실을 지시하기 위한 주입된 사고방식이라는 심리상태이기도 하다. 북친에 의하면 조직화된 폭력의 도구로서의 국가는 프루동과 크로포트킨이 주장한 것처럼 사회에서 갑자기 진화하지 않고, 특정한 사회적 기능의 점진적인 정치화와 함께 등장했고, 두 가지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사회와 맞물려 있다. 그것은 경제를 관리할 뿐만 아니라 정치화하고, 사회생활을 식민화할 뿐만 아니라 흡수한다.

북친에 의하면 미래의 모든 혁명은 국가를 해산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공동체 노선을 따라 사회를 재건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그것은 새로운 아나키즘 제도를 발전시키고 일상을 해방하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북친의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이 개인적인 차원이다.

북친에게 직접행동의 가치는, 사람들이 자신을 자신의 운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개인으로 인식하게 한다는 사실에 있다. 그러므로 혁명은 필연적인 어떤 추상적인 격변이 아니라, 자기활동의 구체적인 형태여야 한다.

박홍규 영남대 명예교수·저술가
일본 오사카시립대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하버드대, 영국 노팅엄대, 독일 프랑크푸르트대에서 연구했고, 일본 오사카대, 고베대, 리쓰메이칸대에서 강의했다. 현재는 영남대 교양학부 명예교수로 있다. 전공인 노동법 외에 헌법과 사법 개혁에 관한 책을 썼고, 1997년 『법은 무죄인가』로 백상출판문화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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