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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는 혼자 하는 게 아니다’라는 조언
‘공부는 혼자 하는 게 아니다’라는 조언
  • 이지현
  • 승인 2023.10.23 08: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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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후속세대의 시선_ 이지현 이화여대 철학과 박사과정

 

이지현 이화여대 철학과 박사과정

대학원에 입학한 후 숱하게 들었던 조언 중 하나는 ‘공부는 혼자 하는 게 아니다’라는 말이다. ‘함께 공부하기’의 의미를 깨닫게 된 계기가 세 번 있었다. 첫 번째는 강의와 스터디 그룹에서다. 그 시간 동안의 토론과 의견 교환은 날것의 생각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주었고 논리적으로도 정교하게 다듬어 주었다. 그 경험을 통해 나는 더 나은 생각에 이르기 위해서는 서로의 생각이 필요하기에, 그래서 함께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두 번째 이해는 인문학도인 내가 한동안 신경과학 랩미팅에 참여한 경험을 통해 얻게 되었다. 그 랩의 구성원들이 연구를 함께 해나가는 방식은 단독연구에 익숙한 나에게 너무도 신선했다. 그 랩의 구성원들은 마치 축구선수들처럼 각자의 포지션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예를 들어 프로그래밍을 잘 짜는 사람, 설문지 내용을 잘 구성하는 사람, 통계분석을 잘하는 사람이 있어서 각자의 특기를 동원해 랩의 모든 연구에 참여한다. 오래전 일이지만 여전히 각자의 특기로 하나의 연구를 수행하는 방식은 인상 깊게 남아있다. 철학은 그런 방식으로 연구할 수 없는 걸까?

함께 공부하기에 대한 나의 세 번째 이해는 ‘투고 세미나’라는 모임을 통해서 형성되었다. 이 모임은 같은 과의 박사논문을 쓰는 몇몇 학생으로 구성되었다. 주목적은 각자의 연구 진행 상황과 학술지에 투고하는 과정을 공유하는 것이다. 신기하게도 각자의 세부 전공이 다르다. 나의 주 관심사는 인식론/심리철학인 반면 다른 친구들은 예술철학·철학교육·현상학·미디어철학을 연구한다.

이 세미나는 현재 3년차인데 그동안 얻은 게 너무 많았다. 진지한 마음으로 연구하는 동료를 얻었고, 연구 분야가 다르지 않았더라면 접할 일이 없을 것 같은 내용·관점·접근방법, 그리고 우리 사이에 묘하게 겹치는 연구 주제들이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또한 공부하며 겪는 어려움의 종류가 꽤 다양하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 어려움 가운데서도 학문을 포기하지 않는 그들의 열정은 좋은 자극이 되기도 한다.

때때로 우리는 중요한 발표를 앞두고 있을 때 모임에서 리허설을 한다. 그러면 다른 구성원들이 문제를 지적하고 좀 더 강조했으면 하는 부분이나 보완 방향을 제안하는 피드백을 준다. 나도 올해 한국철학자연합 학술대회의 발표를 앞두고 이 과정을 거쳤다. 

세미나에서 한 리허설을 통해 많은 부분이 보완되었고, 실제 발표에서 나는 혼자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 발표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발표 곳곳에 친구들 각각이 기여한 부분이 반영되어 있어서 그랬나 보다.

이 모임이 준 또 다른 유익은 앞서 걸어가는 친구를 보며 박사 논문을 쓰는 과정, 심사 과정, 그리고 그 이후를 어떤 식으로 해 나가는지 간접 경험을 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이 모임은 ‘함께 공부하기’를 이전보다 더 깊게 체험하게 해주었다. 

정리하면, 함께 공부하기의 세 번째 의미는 연구하는 삶을 함께 살아낸다는 것이다. 연구하는 삶 속에서 각자의 어려움은 있지만 서로에게 버팀목이 되고 응원해 주는 그런 의미의 함께하기다. 
대학원생으로서의 삶은 늘 어려웠다. 생활은 불안정하고 미래는 불확실한데 공부할 때마다 스스로의 한계와 마주하니 자존감이 바닥을 치는 날도 많았다. 그러나 달리 보면 그 덕에 겸손해질 수 있었고 타인의 소중함도 깨달았다. 공부는 혼자 하는 것 같지만 실상 다른 이들의 의견도, 다른 이들의 특기도 필요하고, 또한 이 지난하고 고통스러운 과정을 견디기 위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동료도 필요했다. 나는 그저 운이 좋아 이런 소중한 경험과 버팀목이 되어 준 동료를 얻은 것 같다.

그렇지만 이게 운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 대학원에 들어오면 풍성한 의미의 함께 공부하기를 누릴 기회가 있기를, 연구가 꼭 외로운 일만은 아니고 함께할 때 더 좋은 성과가 있을 수 있음을 경험할 기회가 주어지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이지현 이화여대 철학과 박사과정
이화여대 철학과에서 「실험철학의 한계와 확장: 고유명사의 지시를 중심으로」라는 제목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같은 대학원 철학과에서 박사과정 수료 후 현재는 다른 사람의 마음에 대한 지식과 지각 경험의 인식론적 역할에 관해 박사논문을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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