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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크고 좋은 자동차를 ‘욕망’하는가
왜 우리는 크고 좋은 자동차를 ‘욕망’하는가
  • 김재호
  • 승인 2023.10.23 08: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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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인문대학 심포지엄 ‘인간의 욕망’
13명의 교수가 다양한 전공 살려 ‘욕망’ 분석

욕망은 자연스럽지만 과하면 화를 부른다. 때론 죽음에까지 이르게 만들기도 한다. 이게 동서양 고금의 진리다. 예를 들어, 유가의 경전인 『예기』의 「예운(禮運)」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음식(식욕)과 남녀(색욕)는 사람이 가장 크게 바라는 것이며, 죽음과 빈곤은 사람이 가장 꺼리는 것이다.” 지난 13일 서울대 인문대학에서 주최한 ‘인간의 욕망’ 심포지엄은 이 같은 사실을 상기시켰다. 심포지엄은 문학·역사·철학 속에 나타난 욕망을 살폈다. 

먼저 문학 안의 욕망이다. 정길수 서울대 교수(국어국문학과)는 「자유롭지 못한 존재의 욕망: 운영·춘향·초옥의 사랑」을 발표했다. “운영·춘향·초옥은 모두 진실한 마음을 토로하고 사랑의 욕망에 충실했을 뿐이지만 자유롭지 못한 처지였기에 사랑의 ‘범위’를 넘어서는 당대 사회의 문제를 건드리지 않을 수 없었다.” 예를 들어, 조선 시대 고전 소설인 「운영전」(1601년 경)은 13세에 안평대군의 궁녀가 된 운영이 김진사와 사랑에 빠졌다가 결국 자결하는 이야기를 그렸다. 

욕망은 인간만 가진 게 아니다. 김월회 서울대 교수(중어중문학과)는 「호귀(狐鬼)의 욕망: 『요재지이』 속 여우와 귀신의 욕망을 통해 인간이 되고 싶은 여우와 귀신을 살펴봤다. 『요재지이』는 포송령(1640∼1715)이라는 문인이 기이한 이야기 490여 편을 모아둔 소설집이다. 김 교수는 “여우와 귀신의 욕망은 결국 인간 욕망의 투영 결과”라며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여겨온 점을 감안할 때 인간 우월의식이나 인간 중심주의가 부각되거나 강조되지 않는다”라고 설명했다. 즉, 욕망을 긍정하고 삶의 참된 목표인 양 추구했다는 것이다. 

지난 13일 서울대 인문대학이 주최한 ‘인간의 욕망’ 심포지엄이 열렸다. 이날 문학·역사·철학 전공 교수들은 인간의 욕망을 통해 시대상을 그 려냈다. 사진=서울대 인문대학

 

왜 우리는 크고 좋은 자동차를 ‘욕망’하는가

이번 서울대 인문대학 심포지엄 ‘인간의 욕망’을 기획한 이강재 서울대 교수(중어중문학과)는 기획 의도에 대해 “‘노욕’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나이를 들어 더욱 욕심이 많아지는 것을 본다”라며 “‘욕망’은 개인과 사회의 발전에도 중요한 원동력이 되지만 반대로 ‘욕망’이 지나쳐서 개인과 사회가 어려워지는 경우가 있다”라고 말했다.

욕망 중 대표적인 건 물질에 대한 소유욕이다. 역사 속 욕망은 어떠했을까? 고태우 서울대 교수(국사학과)는 「마이카로 향하는 여정: 20세기 후반 한국 자동차 소유 욕망의 전개와 한계」를 발표했다. 자동차 소유 욕망은 △자동차 여행의 확장 △외식 문화의 확대 △쇼핑 문화의 변화를 촉발했다. 

고 교수는 “전기 모터로 작동하는 자동차로 모두 바꾸더라도 더 비싸고 큰 자동차를 살 때 자신의 지위가 향상된다는 믿음, 남들이 구입하니 나도 그 차를 몰아야 한다는 정서가 우리를 지배한다면, 여전히 ‘자동차 사회’는 굳건하게 유지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자동차와 연관된 대량생산과 대량소비가 유지되고, 자동차가 만들어지고 굴러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자원 소모·환경 파괴·인간 및 자연에 대한 착취를 고민하지 않는다면, 탈탄소 체제로의 전환, 기후·생태위기라는 재난을 피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욕망은 이데올로기와도 밀접하다. 노경덕 서울대 교수(서양사학과)는 「스탈린 시대 소련 공산당원의 도덕률과 욕망 문제: 연구사적 접근」을 통해 소련 연구 패러다임과 당원 문제를 네 가지로 분석했다. 

 

이데올로기와 공산당원의 욕망 관계

첫째, 전체주의는 공산당원의 개성과 개인적 욕망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은 채 그들을 중앙당의 이념과 정책을 군중에 주입하고자 작동하는 집단주의적 성향으로 묘사했다. 둘째, 푸코주의는 중앙당의 이념과 담론 체계에 대한 당원의 자발적인 수용과 참여를 강조한다. 특히 그들은 자기 파괴적 성찰과 욕망 억제를 통해 사회주의 체제의 이상적 리더상을 실현하고자 하는 인물들이다. 노 교수는 “중앙당과 당원이 이념적 욕망으로 합일돼 있다고 믿는 전체주의론과 푸코주의를 핑계로 소련 중앙당이 당원의 충성도와 도덕성에 대한 끊임없는 감찰 행위를 펼쳤으며, 그것이 결국에는 숙청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을 쉽게 설명하지 못한다”라고 비판했다. 

셋째, 수정주의는 공산당원을 산업화된 근대 서양 사회의 엘리트와 비교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공산당원들이 개인적 이익 추구를 그들의 욕망 리스트 중 윗자리에 놓는 ‘합리’적 인간이라는 것이다. 넷째, 신전통주의는 당원의 경력과 일상 속에 남아있는 전통의 요소를 부각시킨다. 당원은 단순히 근대 산업 사회의 ‘합리’적 인간도 아니었고, 동시에 공산주의 담론 체계에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종속된 수동적 인간도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노 교수는 “당원을 서방, 또는 다른 사회의 엘리트와 비교 가능한 일반적 인간형으로 바라보는 수정주의와 신전통주의의 경우는 소련 체제 존속 70년의 기간 동안 당원이나 열성분자들이 남겨놓은 수많은 이념 지향적인 텍스트의 존재를 설명할 수 없다”라고 지적했다. 

욕망은 철학의 영원한 주제이다. 강성훈 서울대 교수(철학과)는 「플라톤과 욕망의 다면성」을 통해 플라톤에 대한 오해를 비평했다. “‘이성과 욕망의 이분법’이나 ‘욕망의 경멸’과 같은 구호는 플라톤의 생각을 잘 대변하는 것이 아니다. 플라톤은 욕망의 경멸자인 만큼 욕망의 숭배자이기도 하고, 그가 보기에 이성과 욕망은 이분법적으로 구별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동전의 양면과 비슷한 성격을 가진 것이다.” 강 교수는 플라톤을 인용하며 “좋음에 대한 나의 생각은 나조차도 모르는 것일 수도 있고, 더 나아가 내가 좋다고 생각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사실은 나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라며 “좋음에 대한 생각의 이 모든 복잡함과 다면성은 바로 우리가 갖는 욕망의 복잡함과 다면성의 다른 모습일 따름이다”라고 말했다. 

 

욕망은 이성과 대비되는 것 아냐

‘섹슈얼리티’는 욕망 중에서 가장 주목받는 분야다. 도승연 광운대 교수(인제니움학부·철학)는 「푸코의 자기 배려의 윤리: 성적 욕망의 계보학을 넘어서」를 발표했다. 도 교수는 “푸코가 주목하는 성적 욕망은 성(sex)과는 다른 것이며, 성적 욕망은 다양한 문화적·제도적 장치에 의해서 구체화되는 사회적·역사적 산물로서 경험되는 것이라고 본다”라며 “성적 욕망에 대한 특정한 방식의 해석과 이해라는 지식의 효과를 통해 개인을 정상, 혹은 비정상의 성적 주체로 인식하게 하는 인식과 경험의 작용이야말로 권력-지식의 작동임을 주장했다”라고 분석했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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