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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D 예산 논란과 과학기술 인재 양성
R&D 예산 논란과 과학기술 인재 양성
  • 이강재
  • 승인 2023.10.23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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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_ 이강재 논설위원 /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이강재 논설위원(서울대)

중국의 전국시대 이야기로 시작하자. 연나라가 왕의 잘못으로 국가적 혼란에 빠졌고 제나라의 침략으로 거의 망할 지경에 이르렀다. 이후 새로 왕이 된 소왕은 책사인 곽외와 국가를 부흥시키기 위해 인재를 모을 방법을 상의하였다. 곽외는 과거 천리마를 구하려던 한 임금의 이야기를 해준다.

사람을 시켜 천리마를 구하는 과정에서 죽은 천리마의 뼈를 오백 금이나 되는 큰돈을 주고 사자, 사람들은 임금이 정말로 천리마를 원한다고 믿게 되었다. 당연히 좋은 천리마를 가진 사람이 임금을 찾아왔다. 

이야기의 결론은 이렇다. 곽외가 자신을 먼저 후하게 대우할 것을 권하였고 소왕은 그렇게 했다. 그 후 더 좋은 인재가 연나라로 모여들었고, 연나라는 많은 인재를 바탕으로 나라를 다시 일으켜 제나라에 대한 복수에 성공하였다.

“매사마골(買死馬骨, 죽은 말의 뼈를 산다)”이라는 유명한 이야기이다. 인재를 얻기 어려움과 인재를 얻는 방법을 말할 때 등장한다. 국가에 필요한 인재가 어떤 자질을 가져야 하는지는 시대와 역할에 따라 다르다. 물론 이 이야기도 모든 상황에 적용할 수 없다. 분명한 것은 가까이 있는 사람을 제대로 대우하지 않으면 훌륭한 인재가 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최근 R&D 예산에 대한 논란을 보면서 떠올랐던 옛이야기이다.

현재의 과학기술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존중하고 대우하는 모습이 정말 중요하다. 국가의 미래를 책임질 젊은 세대의 선택과 관련이 있다. 인간은 누구나 부귀해지고 싶은 욕망이 있다. 아무리 책임감과 사명감이 중요해도 ‘열정페이’를 강요해서는 진정한 인재를 모으기는 어렵다.

나는 인문학 전공자로서 학술지원 예산이 부족한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넉넉한 연구개발 예산과 학문후속세대에 대한 지원이 많아 보여 과학기술계를 부러워했다. 하지만 과학기술 R&D 예산에 대한 논란을 보면서 우리나라가 정말로 과학기술을 중시하는지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모든 예산 편성은 해당 부처와 기획재정부의 협의를 먼저 거치는데, 여러 부처에 걸쳐 있는 R&D 예산도 마찬가지이다.

다만 그 이후 과학기술인이 참여하는 헌법기관인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에서 논의를 거쳐 정해지면, 기획재정부의 역할은 상대적으로 적다고 알고 있었다. 나는 이것을 과학기술인에 대한 국가의 존중으로 받아들였다.

이제 그러한 생각이 깨졌다. 오랜 논의를 거쳐 정리된 예산안에 제동이 걸렸다. 세입의 감소와 재정 적자 때문이라고 하는데, 전체 예산이 증가한 것을 보면 꼭 그런 것도 아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R&D 카르텔”이라는 말이 등장했다. 시작은 최고통치권자의 언급이지만, 누군가의 그릇된 인식과 기획재정부의 입김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의구심이 있다. 당장 내년 R&D 예산의 감축도 걱정이지만, 과학기술 예산에 대해 예측이 불가능해졌다는 점이 더 걱정스럽다.

거대한 국가의 살림을 하니 당연히 세입을 고려하여 세출을 생각해야 한다. 이때 어디에 우선순위를 둘 것인지가 중요하다. 과학기술을 중시하지 않겠다는 선언처럼 보이는 점도 걱정스럽다. R&D 예산에 대한 논란이 현재 과학기술인의 만족도를 떨어뜨리면 필연적으로 과학기술에 인생을 바치겠다는 인재의 유입에 어려움이 생긴다. 결국 국가의 미래 경쟁력이 약해질 것이 분명하다. 이번 논란이 젊은 과학기술인에 대한 지원을 늘리겠다는 것으로 쉽게 해결될 수 없는 이유이다. 천리마를 구했던 옛이야기가 떠오른 것도 이 때문이다.

이강재 논설위원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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