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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 철학 대 대륙 철학
분석 철학 대 대륙 철학
  • 김재호
  • 승인 2023.09.26 16: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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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체이스·잭 레이놀즈 지음 | 이윤일 옮김 | b(도서출판비) | 463쪽

“분석 철학과 대륙 철학의
대립의 기원과 차이”

이 책은 오스트레일리아 소장 학자들인 제임스 체이스(James Chase)와 잭 레이놀즈(Jack Reynolds)가 영미 분석 철학과 유럽 대륙 철학이 20세기 초부터 지금까지 서로 대립하고 소통하지 못했던 저간의 사정을 여러 측면에서 탐구해나간 Analytic verus Continental(Acumen, 2011)을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철학의 방법과 가치에 관한 논변들’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데, 우리말로는 『분석 철학 대 대륙 철학』으로 옮겼다.

분석 철학자들에게 대륙 철학은 쓸데없이 철학사에 집착하고, 이상한 은유로 장황하게 알쏭달쏭한 말을 길게 늘어놓거나, 심지어 기본적인 논리적 규칙조차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로 보이기 십상이다. 그래서 분석 철학자들은 대륙 철학을 논리적 엄밀성을 결여한 아마추어 철학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여긴다.

한편 대륙 철학자의 눈으로 볼 때 분석 철학은 대단히 딱딱하고 무미건조한 철학이다. 논리적 엄밀성과 확실성을 강조하다 보면, 인간의 따뜻한 감정과 풍부한 정서가 개입될 여지가 별로 없어지기 때문이다. 인간의 생생한 삶과 현실을 도외시하고, 윤리적 열정이나 실존적 열정은 찾아볼 수 없으며, 정치적으로는 부당한 현실을 고착화하고 불의에 눈감는 보수주의 철학으로 생각했다.

영미 분석 철학과 유럽 대륙 철학은 이렇게 오랫동안 서로 상대방 철학에 대해서 무심한 눈길을 보냈거나, 때로는 심각하게 적대적인 관계를 맺어왔다. 이러한 경향은 우리나라에서도 전공자들 사이에서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저자들은 이 책의 제1부(1~6장)에서 대륙 철학과 분석 철학의 분열이 20세기 초 후설과 프레게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보고 있다. 이후 러셀 대 베르그손, 카르납 대 하이데거, 프랑크푸르트학파 대 논리 실증주의 및 포퍼, 그리고 라일, 에이어, 스트로슨 등과 메를로-퐁티, 장 발 등 프랑스 및 독일 철학자들 간의 루아요몽 회합, 데리다 대 썰 간의 대결을 통해 양 전통 간 고착되어 가는 분열의 역사적 전개 과정을 그려낸다.

제2부(7~14장)에서는 분석 철학과 대륙 철학의 핵심적인 방법론상의 차이를 다룬다. 분석 철학은 사고 실험 및 반성적 평형 방법, 자연화하기 책략, 최선 설명 추론 등을 주요 방법론으로 사용하고 있음을 밝힌다. 이에 반해 대륙 철학은 역사성의 긍정과 그것의 철학적 우선성을 주장하는 ‘시간적 전환’, 선험적 추리(논증)의 수용, 상호 주관성 중시, 정신에 관한 반표상주의, 상식과 철학적 방법을 제휴시키려는 데에 대한 경계심, 과학에 대한 비판적 태도, 철학과 예술과의 친연성, 윤리-정치적 문제에 대한 ‘반이론적’ 태도 등을 그 특징으로 하고 있다는 점을 밝혀준다.

제3부(15~20장)에서는 두 전통의 이런 방법론적인 차이가 존재론, 시간론, 정신 철학, 윤리학, 언어 철학 등 세부 주제에 적용되었을 때,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지를 보여주는 데 주력한다.

결론으로서 저자들은 분석 철학-대륙 철학의 분열은 여전히 고착되어 있고 아직도 진행 중이라는 점을 확인하며 아쉬움을 토로한다. 그러면서 화해 가능성으로서 소위 종교 철학의 ‘약한 불가지론’의 입장을 원용하며 양 전통이 상대방의 회의론적인 눈을 통해 자기 자신의 전제들을 돌아보며 다원론적인 가치를 모색해 보기를 제안하고 있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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