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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바비즌
호텔 바비즌
  • 김재호
  • 승인 2023.09.19 15: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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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나 브렌 지음 | 홍한별 옮김 | 니케북스 | 416쪽

해방된 여성성에 바치는 신전 바비즌은 단순한 호텔이 아니라 ‘운동’이었다!
“실비아 플라스, 그레이스 켈리, 존 디디언, 앨리 맥그로, 몰리 브라운…
바비즌은 새로운 여성들의 시대에 탄생한 당대의 산물이자 다가올 시대의 전조였다!”
20세기 여성의 야망과 급변하는 뉴욕에 관한 다층적인 사회사

20세기 초반, 1차대전과 여성참정권 획득은 여자는 가정에 머물러야 한다는 오래된 논리를 무너뜨렸다. 1920년대 미국 각지의 젊고 야망 있는 여성들은 꿈을 좇아 전후 건설 붐으로 초고층빌딩이 들어서고 있던 뉴욕으로 몰려들었다. 당연히 머물 곳이 필요했다.

그들이 원했던 곳은 불편한 하숙집이 아닌 남성들이 이미 누리고 있는 것들, 즉 날마다 집안일을 봐주는 사람들이 있고 문화 프로그램도 운영하며 운동 시설과 개인 식사 공간까지 갖춘 그들만의 거주용 호텔이었습니다. 투숙객의 신원을 보증하는 추천서를 요구하며 남성 출입을 엄격하게 통제한 여성 전용 호텔 바비즌은 자유를 누리고 싶어 하는 젊은 여성들과 보수적인 부모의 우려를 절충하는 해답이었다.

게다가 이 호텔에는 배우, 모델, 가수, 예술가, 작가 지망생이 가득했고 일부는 이미 유명인이었다. 배우 그레이스 켈리에서부터 타이태닉호 생존자이자 여성참정권론자 몰리 브라운, 디자이너 벳시 존슨, 작가 존 디디언과 실비아 플라스까지 이곳을 거쳐 간 유명인은 일일이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다.

『호텔 바비즌―여성의 독립과 야망, 연대와 해방의 불꽃이 되다』는 뉴욕에서 가장 유명한 여성 전용 호텔이 1927년 처음 지어졌을 때부터 2007년 수백만 달러 가치의 콘도미니엄으로 재개장하기까지의 역사를 뒤쫓는다. 뉴욕 배서 칼리지에서 국제학, 젠더, 언론학을 가르치는 저자 폴리나 브렌은 다양한 관계자와 직접 인터뷰하고 사적인 편지를 검토하고 당대에 작성된 문헌과 기사를 동원해 시대상을 고증함으로써 입체적인 드라마를 그려낸다.

눈앞에서 보듯 정밀하게 묘사된 금주법 시대의 주류 밀매점, 주가가 폭락하고 자살이 이어지던 검은 목요일, 직장 동료들끼리 고발을 서슴지 않던 매카시즘의 시기, 여성에게 주어진 제한적인 자유와 뒤이은 반작용 등이 이어지는 정치?사회적 맥락에 출판과 패션, 영화와 광고업계의 뒷이야기가 얽힌다.

근시용 안경을 썼던 그레이스 켈리와 울다가 프로필 사진을 촬영한 실비아 플라스, 백만장자와 미녀들이 가득한 파티 이야기가 흥미를 끄는가 하면, 인물마다 서로 다른 기억과 말하지 못했던 비밀이 드러나고 시간이 흐른 후의 비극이 충격을 주기도 한다. 사회학 연구와 역사적 기록, 다중 시점의 단편소설, 가십 칼럼이 뒤섞인 이 책은 이 호텔을 거쳐 간 여성들의 역사이자 20세기 맨해튼의 역사이며 무엇보다 우리가 잊고 있던 여성의 야망 이야기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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