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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문화 120
황해문화 120
  • 김재호
  • 승인 2023.09.12 16: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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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얼문화재단 | 501쪽

다중재난 시대에 정의로운 전환을 모색하며
- 계간 『황해문화』 발간 30주년 특집호

『황해문화』가 첫발을 내디딘 1993년은 전 지구적으로, 그리고 국내적으로 격변의 시기였다. 당시는 100년 넘게 세계를 분할해온 주요 세력 중 하나였던 사회주의체제가 몰락하고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본격적으로 전개되던 때였다.

또한 당시는 민주화 이행의 기쁨이 민주화운동 내부의 분열과 패퇴, 수구 보수 세력의 연이은 집권에 따른 좌절감으로 퇴색하던 시기였다. 이런 가운데 탈냉전으로 표현되는 새로운 세계 문명의 창도는 인천을 비롯한 각 지역 시민들의 자발적이고 구체적인 실천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통찰이 지난 30여 년 동안 『황해문화』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꿋꿋하게 전진해올 수 있었던 길잡이였다.

2006년 50호를 발간하면서 『황해문화』는 “이제 성장도 정리도 끝난 포스트모던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세간의 시대 인식에 거슬러, 우리에게는 여전히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근원적 난제들을 인식하고 해결해야 할 과제가 남아 있음을 명시한 바 있다.

그것은 시대적인 혼돈의 와중에 섣부른 판단과 명령을 내리기보다 그 혼돈의 상황을 직시하고 그 속에 담긴 “불행과 고통과 갈등과 비명”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 우리가 감당해야 할 책무라는 『황해문화』의 자세였다.

2018년 100호를 발간하면서 『황해문화』는 “통일과 평화 사이”에서 ‘황해’의 위상에 대해 질문한 바 있다. 이 질문은 지난 70여 년 동안 한국 사회를 질곡에 빠뜨려온 분단과 전쟁의 엄중함을 기억하면서도 섣부른 통일과 평화에 대한 기대를 경계하기 위함이었으며, 진정한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그 주체와 장소, 방법에 관해 더 깊이 숙고해야 함을 일깨우기 위함이었다.

그것은 황해라고 하는 ‘주체’, 곧 열강들의 틈바구니에서 지난 근현대를 살아온 주변부의 작은 지역의 시민들이, 황해라고 하는 ‘장소’, 곧 분단과 냉전의 경계이면서 동시에 섬과 섬, 항구와 항구, 지역과 지역을 잇는 그리하여 하나의 세계와 다른 세계가 교류하고 어울리는 곳에서, 황해라고 하는 ‘방법’, 곧 중앙집권적이지 않은 자율적인 변방성, 폐쇄적이지 않은 개방성, 선형적이지 않은 횡단성을 바탕으로 대안적인 통일-평화의 기획을 모색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선언이었다.

이제 『황해문화』는 이전의 성과의 무게를 실감하면서, 비상한 마음가짐으로 ‘전 지구적으로 사고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자’는 창간사의 다짐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을 확인하면서도 오늘날의 시대적 상황을 고려해볼 때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함을 새삼 절실히 깨닫는다.

그것은 이제 너무 익숙해진 위기라는 말로도 제대로 형용하기 어려운, 절박하고 다중적인 재난의 먹구름이 현재와 미래의 세계를 뒤덮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황해문화』 120호는 이런 측면에서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기 위한 발판을 놓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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