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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심리학자는 있는데, ‘범죄사회학자’는 왜 없을까?
범죄심리학자는 있는데, ‘범죄사회학자’는 왜 없을까?
  • 하홍규
  • 승인 2023.09.15 10: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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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_『사회학으로의 초대』 피터 L. 버거 지음 | 김광기 옮김 | 296쪽 | 문예출판사

모든 문제의 원인·책임을 개인으로 환원해 설명
심리학 시대에 필요한 사회학적 시각과 상상력

이 시대를 심리학의 시대라고 한다. 심리학자가 국민 멘토가 되어 강연도 하고 텔레비전 프로그램에도 출연한다. 흉악한 범죄가 발생하면 기자들은 범죄심리학자에게 먼저 달려가서 인터뷰한다. 범죄심리학자는 범죄를 다루는 TV 예능 프로그램에도 출연해 권위 있는 해석을 제공한다. 

그런데 범죄사회학자는 찾아볼 수 없다. “묻지마 범죄는 정신질환자에 의해 저질러진다.” 범죄자 개인에게서 동기를 찾을 수 없으니 그것은 정신질환의 문제가 돼 버린다. 이제 몇 남아 있지 않은 서점에 가보면 ‘~~~ 심리학’이란 제목을 달은 온갖 종류의 심리학 서적이 눈에 잘 띄는 곳에 멋지게 진열되어 있으나, 사회학 서적들은 쉽게 찾기 어려운 구석에 몇 권이 진열돼 있을 뿐이다. 

되돌아보면 필자는 사회의 갈등과 위기를 극복하고자 했던 많은 이들의 마음을 열광시켰던 사회학의 전성기에 사회학으로 초대받았다. 그 초대에 응했고, 지금까지 사회학을 사랑하며 연구하고 있다. 

 

2017년 8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사회학의 거장 피터 버거(1929∼2017)가 사회학 입문서로 쓴 『사회학으로의 초대』는 1963년에 출판됐다. 이 책은 1977년 한완상 서울대 명예교수(사회학)에 의해 처음 우리말로 옮겨져 소개됐다. 1995년에 사회학 전공자 이상률에 의해 두 번째로 번역돼 출판됐다. 올해 이 책이 버거의 제자인 김광기 경북대 교수(일반사회교육과)에 의해 세 번째로 번역되어 『사회학으로의 초대: 인간주의적 시각』이라는 제목을 달고 세상에 나왔다. 

이 책이 세 번씩이나 번역되어 출판될 만큼의 가치가 있는지 의문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헛된 염려에 불과하다. 책을 손에 잡고 책장을 넘기면 불과 몇 쪽 지나지 않아 곧바로 그 안에 빠져들어 수시로 무릎을 탁 치게 된다. 다른 사회학 개론서에서는 결코 발견할 수 없는 이 책의 그런 매력이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사회학도에게 사회학 길잡이 역할을 수행해왔던 원동력이었다는 데 의문의 여지가 없다. 사회학이라는 학문의 길잡이로서 이 책의 가치에 대해서는 더 말할 것이 없다는 뜻이다. 이 책은 너무나 훌륭하다. 

필자는 모두 심리학의 시대라고 호들갑을 떠는 이 시대에 사회학으로의 초대가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고 말하고 싶다. 그래서 다른 누구도 아닌 김광기 교수의 번역으로 나온 이 책이 바로 지금 여기서 너무나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버거를 마음으로 이해하고 있는 번역자의 정확성, 그리고 부드럽게 흘러가는 문체와 적실한 용어 선택이 분명 새로운 번역본 출판의 필요성을 입증하는 것이겠다. 번역자의 문체는 이 책에서 버거가 가진 의도를 독자에게 보여주는 데 매우 적절했다.

하지만 이 책의 필요성에 대한 나의 강한 느낌은 심리학의 시대에 더더욱 사회학적 상상력이 필요하다는 믿음과 소망에서 비롯된다. 모든 문제가 개인으로 환원돼 설명되고, 모든 문제의 해결이라는 짐도 개인에게 지워지는 시대에, 심지어 사회 또는 사회적인 것은 없다고 강하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힘(권력)을 가진 시대에 버거의 사회학으로의 초대가 어두운 터널의 끝을 볼 수 없는 이들 또는 벼랑 끝에 도달해 더 이상 갈 길이 없다고 여기는 이들에게 전해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함께 희망할 수 있도록 그들도 그 초대에 응했으면 좋겠다. 

피터 버거는 사회학적 의식에 정체폭로적 동기가 내재한다고 주장한다. 그가 폭로하는 사회는 객관적으로 존재하여 육중한 사실성으로 우리 인간을 짓누르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 객관적 실재가 우리 자신이 구성해 낸 것이어서 우리가 느끼는 만큼 그리 견고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에 의해서 충분히 변화 가능하다. 오늘날 우리가 느끼는 절망의 토대는 그리 단단하지 않다. 오히려 불안정하다. 그래서 사회학적 상상력을 갖고 사회학적 시각으로 사회를 바라보면 해방의 전망을 가질 수 있다. 

사회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정체는 만천하에 폭로돼야 한다. 그들은 거짓을 말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그들에게 속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기 기만에도 빠지지 않을 수 있는 사회학적 의식이 필요하다.

 

 

 

하홍규 
숙명여대 인문학연구소 HK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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