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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들어 고집 때문에 못 쓸 사람이 되지 않으려면
나이 들어 고집 때문에 못 쓸 사람이 되지 않으려면
  • 김소영
  • 승인 2023.08.14 08: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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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_ 김소영 편집기획위원 /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

 

김소영 편집기획위원

오래전 석사 과정 때 어느 교수님의 종강 파티에서 겪었던 일이다. 처음으로 먹었던첫 코스요리였던만큼 기억에 남는 게 있다. 고량주 몇 잔 마신 교수님 왈, 나이가 들수록 고집이 세져서 못 쓸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나 역시 고량주에 취해서 혼미한 상태였지만 그 말은 아직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나이가 들수록 지혜와 덕이 늘어서 동화책 산신령처럼 될 줄 알았는데 오히려 고집이 늘다니…. 게다가 센 고집 때문에 몹쓸 사람이 아니라 못 쓸 사람이 된다고?

이제 당시 교수님 나이에 근접해가니 얼마나 고집이 늘었는지, 또 그 고집 때문에 얼마나 못 쓸 사람이 되었는지 돌아보게 된다. 근심스럽게도 그 징후가 도처에 보인다. 

첫째, 점점 협상의 기술이 떨어진다. 일이나 인생에서 남과의 협상은 지켜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을 가늠하는 일인데, 버려도 되는 것에 쓸데없이 집착한다. 그리고 정작 지켜야 할 것은 젊은 시절 이상주의에 불과하다는 핑계로 타협해버린다. 지켜야 할 것을 고집하고 버려야 할 것은 타협해야 하는데 말이다. 

둘째, 과학적 음모론에 취약해진다. 학식이 높을수록 음모론을 분간하는 능력이 더 좋아져야 할텐데 오히려 과학의 외양을 쓴 음모론에는 더 쉽게 빠져든다. 전문가란 가장 좁은 범위의 일에 대해 가장 깊이 아는 사람이라는데, 자기 분야를 넘어서는 순간 일반인보다 더 그럴싸하게 논리의 비약을 자초하고 또 그걸 옳다고 고집한다. 

셋째, 새로운 것이 점점 불편해져서 하던 대로 한다. 초짜일 때는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는데, 경험이 쌓이니 검증된 방식으로만 일하고 입증된 성과로만 판단하려고 한다. 익숙하고 편해서 고집하는 거면서 오랜 경험과 지혜라고 정당화한다.(정작 사소한 데서는 새로운 걸 더 찾는다. 회의용 도시락이나 식당은 기를 쓰고 새 걸 찾아본다.)

20년 후에는 주위를 돌아보면 세 명 중 한 명이 노인인 세상이 된다. 정부나 개인한테나 은퇴 후의 쓸모는 국가의 존립과 개인의 인생이 걸린 존재론적 고민이다. 그런데 예전 교수님처럼 지식과 덕망이 높은 분조차 나이 들어 센 고집으로 못 쓸 사람이 될까 걱정하고, 나 자신을 돌아봐도 못 쓸 사람이 될 징후가 널려있는데 세 명 중 한 명이 고집이 세어 못 쓸 사람이 된다면.

대통령, 기업 회장, 대학 총장, 단체장 등 리더들이 고집이 세어진다. 일관성과 추진력을 가지고 일을 밀어붙이는 능력은 산업화와 절대빈곤 극복처럼 우리 사회가 최소한의 합의와 공통된 방향으로 나아가던 압축성장 시절에는 매우 유용했다. 지금처럼 바람직한 사회와 소망하는 미래가 극단적으로 갈리고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사실인지 확인조차 어려운 사회에서 그건 반쪽짜리 리더십에 불과할 것이다. 

나이가 들어서 못 쓸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타협을 통해 지킬 것을 지키고, 자신의 지식과 경험에 현혹되지 않고, 불편한 새로움을 적재적소에서 맞이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물론 한번에는 안될 일이고, 성공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노력을 해야 적어도 나이 들어 못 쓸 사람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김소영 편집기획위원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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